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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 이소응, 이기협 2017년 1월호

이달의 인물

이소응 선생, 의병장으로 항일투쟁 선봉에!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춘천 의병장 습재 이소응(李昭應, 1852~1930) 선생을 2017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춘천 가정리의 고흥 유 씨 집안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특히 제천 의병장 의암 유인석 선생과는 동문 선배이자 동지인 동시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기대며 일생동안 항일투쟁 등 활동의 궤적을 함께하였다.

선생은 1876년 개항 때 최익현 선생 등 화서학파 동문들과 함께 반대 상소를 올려 일제의 침략성을 규탄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그 성명을 드러냈다. 그 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선생은 의암 유인석의 권유로 의병 대열에 동참하여 1896년 춘천 의병장에 올라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선생은 부족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지평군수를 찾아가 원병을 요청하였으나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이때 의진의 동향을 살피던 경군과 일본군은 비가 내려 의병이 화승총을 쓸 수 없게 된 틈을 노려 일제히 공격하였다. 의병은 춘천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선생은 유인석 의진의 도움으로 탈출한 후 1896년 이들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1900년 유인석과 함께 귀국한 뒤 원주에 정착하여 후학을 양성하고자 하였으나 일제의 갖은 핍박으로 궁핍하게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의 핍박으로 더 이상 국내에 머무를 수 없게 되자 1911년 서간도에 다시 망명하여 철저하게 ‘수의(守義)’ 생활을 고수하다가 심양 북방의 먼 외각 강평현에서 1930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국내외를 무대로 남긴 족적과 활동은 항일독립과 민족자존의 구현을 위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목숨 건 사명감 대한민국 창공 지킨 이기협 대령

국가보훈처는 ‘이기협’ 공군 대령을 1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8일, 당시 이등상사였던 이기협은 미 군사고문단의 L-5 연락기 2대가 여의도기지에 방치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전시에 아군기 한 대라도 더 보존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적의 대공포 위협을 무릅쓰며 수원기지에 연락기를 무사히 안착시키는 전공을 세운다.

이로 인해 리더십을 인정받은 그는 1950년 9월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F-51 전투기조종사 전환교육을 받고 강릉 제10전투비행단에 배속되어,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한 1951년 8월의 항공지원 작전,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파괴 작전 등에 편대원으로 참가했다. 같은 해 3월 송림 공업도시 폭격, 8월 평양 대폭격, 송림제철소 폭격 작전 등 6·25전사에 빛나는 주요 전투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기협은 6·25전쟁 중 그칠 줄 모르는 사명감으로 F-51 전투기 총 144회, 경항공기 100여 회의 출격을 통해 적 전방 증원 차단, 핵심시설 파괴, 후방보급로 차단 등 어느 누구보다 큰 전공을 세웠다. 1955년 4월 이기협은 미국에서 전투기 조종 교육을 받던 중 안타깝게도 사고로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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