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하나의 중국’ 흔드는 트럼프, 의도는?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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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흔드는 트럼프, 의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미·중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2월 1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만, 우리가 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어 “미국은 중국의 통화 평가절하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남중국해 대형 요새 건설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중국은 이런 것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을 비난했다. 트럼프는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우리를 전혀 안 도와준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주요 현안들을 트럼프 당선인이 모두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의 작심 발언은 중국이 미국에 협조하지 않으면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나?”
중국 정부는 트럼프가 제기한 ‘하나의 중국’ 원칙 폐기 가능성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전 세계 어떤 사람, 어떤 세력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손하려 시도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한다면, 결국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격이 될 뿐”이라면서 트럼프 당선인을 비난했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도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의 핵심 이익에 관한 문제”라면서 “건강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정치적 기초가 방해와 간섭을 받을 경우 양국 관계의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발끈한 이유를 알려면 ‘하나의 중국’ 원칙이 나온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이후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내전을 벌였다. 내전 결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승리해 본토를 차지했고, 중국을 건국했다. 패배한 장제스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주해 역시 중화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웠다. 중화민국이 바로 대만이다.
이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통일을 위한 ‘국시’(國是)의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대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지만 중국이 1971년 10월 유엔에 가입하면서 유엔 총회의 투표결과에 따라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유엔에서 퇴출됐다. 각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면서 대만과는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미국도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 이후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고,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역대 미국 정부는 이후 이 원칙을 양국 관계의 기초로 인정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수교하는 국가들도 예외 없이 이 원칙에 따라 대만과 단교했다. 미국과 대만은 이후 상대국 수도에 대사관 성격의 대표기구를 두고 비공식적으로만 접촉하거나 왕래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대만을 압박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양측의 민간기구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는 1992년 11월 홍콩에서 회담을 갖고 이른바 ‘92공식’(九二共識)이라는 합의를 도출했다. 92공식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중국이 92공식,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라는 것은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역대 대만 총통들이 92공식을 인정한 것과 달리 지난 5월 취임한 차이잉원 총통은 92공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놀랍게도 트럼프는 지난 12월 2일, 단교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차이 총통과 전화통화를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은 대만 총통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도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두 지도자의 전화통화는 미국과 중국 관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만 총통이 해외순방에 나설 때도 미국은 경유지 착륙만을 허용해왔다.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이 1995년 재임 시절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국가 정상이 아닌 개인 신분으로 갔어야만 했다. 미국이 그동안 이런 태도를 보여온 것은 자칫하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가 차이 총통과 전화통화를 한 것은 단순히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된 전략적 행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중국과의 무역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말을 해왔다. 트럼프는 취임 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해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트럼프 차기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게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 인정하는 제스처 통해 중국에 경제적 양보 요구?
하지만 중국이 이를 거부할 경우 트럼프 차기 정부로선 대응할 카드가 필요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만 카드’가 안성맞춤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미래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대만을 자국 영토로 여겨왔고, 대만의 독립을 지원하는 미국의 어떤 조치에도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이러한 중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제스처만을 보여도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트럼프가 중국과의 현안을 언급하면서 북핵 문제를 거론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북핵 문제와 연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그동안 북핵 문제가 매우 심각하며 이를 풀기 위해서는 중국의 입장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대선 후보 시절 북핵 문제 및 중국과 관련된 발언들은 “북한 문제는 중국이 풀어야 한다.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엄청난 압력을 가할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파워를 갖고 있다.”, “중국은 겉으로는 북한을 제재한다고 해놓고 옆방에선 북한과 함께 낄낄거리면서 비웃고 있다.” 등이다.
트럼프의 지적처럼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비판하면서도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우려해 미국의 독자제재는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제재에도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언급하면서 북핵 문제를 거론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로 중국을 압박할 방안으로 대만 카드까지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중국’ 원칙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핵심 중의 핵심 이익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끝낸 1972년 ‘상하이 공동성명’에서도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며 양안(兩岸 : 중국과 대만) 문제는 외부 간섭 없이 해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중국은 이 원칙을 미·중관계의 ‘정치적 기초’로 규정해왔다. 트럼프가 단순한 ‘엄포’를 넘어 정책 변화를 추진한다면 미·중은 전면대결 양상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 취임 이후 양안관계가 최악이라는 점도 폭발력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중국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기하고 대만과 새로운 관계 설정에 나선다면 미국과 대만을 향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기한다면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수복할 가능성도 있다.”고 위협한 것도 중국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할 경우 중국 정부가 가장 먼저 대응할 보복 수단으로는 무역과 투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 됐기 때문에 무역과 투자 부문에서 충분하게 미국을 견제할 수 있다. 중국은 캐나다·멕시코에 이어 미국의 세 번째 수출대상국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양국 간 교역 규모는 5,990억 달러(698조 원)에 달하고, 이중 미국 기업이 중국에 수출한 금액은 1,160억 달러(135조 원)다. 중국에 각종 제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미국 기업들의 일자리는 67만8천 개이며, 중국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미국 근로자를 더하면 중국 관련 일자리가 100만 개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반독점법 등을 활용해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차별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퀄컴은 지난해 중국 당국에 반독점범 위반 혐의로 9억7,500만 달러의 벌금을 낸 바 있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1조1,200억(2016년 10월말 기준)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도 문제다. 이는 해외 미국 국채의 20%에 달한다. <인민일보>가 최근 1개 면을 할애해 미국의 국채 문제를 비판한 것도 중국을 압박한다면 국채를 투매해 미국 경제를 뒤흔들겠다는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해서도 경제·군사적으로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양안 핫라인 단절, 대만 농산물 검역 강화, 자국 관광객 대만 여행 축소 등 경제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최근 대만과 남중국해 주변 상공을 반복적으로 선회 비행한 것도 일종의 위협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중국 인민해방군이 남중국해에서 미국 해군의 수중 드론을 나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만 국방부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2020년까지 대만을 무력 침공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고 작전계획을 완벽히 수립할 것을 인민해방군에 지시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입법원(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미 육군은 물론 해·공군력에서 대만을 압도하고 있다. 또한 수시로 대규모 병력과 각종 최신 장비를 동원해 대만 상륙 작전 훈련을 실시해왔다.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을 겨냥해 1,500기에 달하는 탄도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대만 문제로 미·중 격돌하면 북핵 해결은 더 어려워져
중국 정부는 또한 이란 카드를 미국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협력을 중심으로 이란과의 관계를 꾸준히 격상해왔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됐으며, 이란이 수출하는 석유의 1/3을 수입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란을 통해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이란 제재를 강화하려는 트럼프에게 어깃장을 놓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중국 정부는 대만 카드에 맞서 북한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중국은 이미 미국이 우리나라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발해왔다는 점을 볼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제재 결의 이행 거부, 기존 대북제재 준수 거부 등을 고려할 수도 있다.
아무튼 미·중관계가 악화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만 카드를 실제로 꺼내들 경우 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 불똥이 한반도에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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