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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and the City | 동원된 여가, 유희의 정치 2017년 1월호

N.K and the City 4

동원된 여가, 유희의 정치

지난 2014년 6월 24일 이 문수물놀이장에서 북한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연합

지난 2014년 6월 24일 <조선중앙통신>이 문수물놀이장에서 북한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연합

세상에 화려함과 사치함을 자랑하는 호화상점이 아무리 많다고 하라.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한줌도 못되는 부유계층의 향락과 치부를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그러한 것을 인민의 것, 인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우리 식의 호화상점!”

– “여기서 사회주의문명강국의 미래를 본다.” <노동신문>, 2016년 4월 21일자

노동신문에 게재된 이 표현들은 분명 과거 노동자들의 ‘소박하고 알뜰한 생활’을 강조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레토릭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호화로운 경관과 치솟은 마천루를 배경으로 체육과 여가, 놀이와 유희의 세계에 인민들의 몸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지난날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론’의 이데올로기적 흔적과 결합해 극단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곳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는 모습은 김정은이 상상하는 문명한 낙원의 초상이다.

이 여가와 유희는 동원되는 유희이기도 하다. 국가적 시책을 달성했다고 평가된 주민들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오락을 즐기도록 하면서 이들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먼저 맛보았다.”고 광고하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인공위성 발사에 공로가 있다고 평가 받은 과학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오락시설을 즐기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정일영, “김정은 시대의 국토건설 전략에 관한 연구,” 통일부)

능라도에 새겨진 인민사랑의 서사?

<KBS> ‘남북의 창’을 통해 비쳐진 북한의 TV속 모습은 이를 압축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평양에 들어선 항공관광시설 ‘미림항공구락부’에서는 관광용 경비행기로 평양의 주요 명소를 40분 간 돌아보는 관광 코스를 개발해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고, 김정은이 10차례나 현지지도를 하면서 완공시켰다는 ‘미림승마구락부’를 들어 “자본가 계급이나 즐기는 승마가 북한에서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동물원과 박물관 등이 새로 건설돼 아이들을 위한 ‘문명낙원’과 김정은의 ‘인민사랑의 정신’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레저와 소비가 연관된 시설 및 기획들은 김정은 시대를 재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으로서 북한의 현실과 미래를 향한 서사를 이루고 있다. 그 어법 또한 금욕적이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했던 지난 시대의 엄숙함에서 보다 유머러스하고 다소 경박한 낙관주의적 어조로 대체되고 있다. 능라도에 관한 서사의 재구성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능라도에 새겨진 것은 선대로부터 내려온 ‘모든 인민에게 사회주의 부귀를 내려주려는 지도자 동지의 인민사랑의 결과물’로서, 이에 대한 경외심은 서사의 필수적 요소이다. 또한 동시에 능라도는 실제로 재개발의 과정을 겪는다. 돌고래 수족관과 물놀이장이 조성되고 유원지와 소규모 골프장이 건설되었다. 워터슬라이드는 물론 비치발리볼장과 농구 및 배구장도 건설되었다. (R. Winstanley-Chesters, “Spaces of leisure,” Sino-NK)

어두침침한 이념, 명랑한 세계와 접합되는 그 기묘함

금욕적이고 소박한 노동자들이 일궈가는 조국은 퇴조하고, 레저와 소비 공간의 결합을 통한 다양한 일상의 실천들이 북한의 새로운 발전의 표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와 여가는 더 이상 도덕적인 비판의 대상도 아니요, 평양의 몇몇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생활양식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레저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북한 당국이 레저 시설 전체가 “모든 인민에게 열려있다.”고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에서 허락되는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형식과 내용이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난 시대에 여가와 소비가 노동으로 대표되는 조직화된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의 일부로서 존재했다면, 이제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공간이자 실천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이념의 차원으로 보면 김정은 시대로의 권력 이전이 북한의 국가전략과 노선의 핵심적인 정치적·군사적 철학기반의 변화까지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면면히 이어져오는 ‘병진노선’의 어두침침함과 단단함, 그리고 거대함이 온갖 색깔과 웃음으로 가득한 명랑한 세계와 기묘하게 접합하는 것이 김정은 시대를 특징짓는 모습이다.

따라서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와 소비, 유희와 오락을 둘러싼 재현-동원-정치의 계열들이 지난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이 젊은 지도자 집단의 통치의 정신구조 혹은 멘탈리티(govern-mentality)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갖게 될 것이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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