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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 권병덕, 김형우 2017년 3월호

이달의 인물

 

민족대표 권병덕,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포하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권병덕(權秉悳, 1868~1943) 선생을 2017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충북 청주 출신인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선생은 18세경 동학에 입도한 후 1894년 손병희와 함께 6만 명의 교도를 이끌고 동학혁명에 참여하였다. 1908년 손병희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천도교를 일으키자 이에 입교하여 전제관장, 이문관장 대리, 금융관장, 보문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광무황제 국장 참배를 위해 1919년 2월 25일 상경한 선생은 천도교 지도자인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등과 함께 3월 1일 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참여하기로 하였다. 2월 27일 최린, 오세창 등과 함께 김상규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서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민족대표로서 서명하고 날인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경 인사동 태화관에서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들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만세를 삼창하였다.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들은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경시청총감부에 구금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천도교 종리원의 서무와 주임을 거쳐 중앙교회 심계원장, 감사원장, 선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부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김형우, 살신성인 군인정신 월암리의 빛으로!

국가보훈처는 김형우 해병대 삼조를 3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김형우는 해병 독립 제5대대 분대장으로 1951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김포지구 월암리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독립 제5대대는 육군 제1사단의 작전지시에 따라 월암리에 정찰대 본부를 두고 개성 방면의 철저한 수색을 감행하며 장애물 설치, 진지보강 등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수색작전은 긴박한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미 제1군단장 및 육군 제1사단장으로부터 거듭된 특별지시가 내려왔다. “수색정찰의 철저 여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티끌만한 움직임도 놓치지 마라!”

1951년 7월 23일 2개 소대로 편성된 정찰대는 개풍군 월암리 지역에서 1개 연대병력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이에 김형우는 결사대에 자원하여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접근해 총격전을 벌인 끝에 본대의 철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결국 실탄이 떨어졌고, 김형우와 5명의 결사대원은 마지막 수류탄을 던져 15명을 사살한 뒤 돌진하여 육박전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김형우는 끝내 최후를 맞았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정찰대의 퇴로를 열어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한 김형우와 결사대의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빛으로 남아 군인정신의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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