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and the City | 평양에 ‘웰빙’ 바람이 분다 2017년 3월호
N.K and the City 6
평양에 ‘웰빙’ 바람이 분다
지난 2012년 10월 16일 평양시 낙랑구역에 준공된 ‘통일거리운동센터’에는 북한 주민의 체력단련과 건강증진을 돕기 위한 각종 운동기구들과 치료설비들이 갖춰져 있다. 당, 군대, 인민무력부 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준공식에서 드러나듯이, 센터 건립은 김정은 정권의 역점사업 중 하나였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통일거리운동센터는 매일 천여 명의 시민들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전해진다. 오전에는 주로 노인과 어린이를 비롯한 주부들이, 정오부터 오후 2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사무원들이 즐겨 찾는다. 일요일이나 명절에는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까지 연장운영을 하고 있다.
통일거리운동센터, 1일 천 여명 방문할 정도로 문전성시
3층으로 된 센터는 수영장과 ‘건강운동실’ 등 피트니스 시설과 더불어 ‘건강회복실’이라는 이름의 치료·미용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1층에 있는 수영장에는 수중초음파 설비가 구비되어 있는데 주민들의 호응으로 늘 만원을 이룬다고 한다. 매 층에는 피트니스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데 운동
복을 제공한다. 특징적인 것은 센터 내에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진단에 따른 ‘운동지시표’에 따라 트레이너의 조력 하에 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러닝머신(트레드밀)과 사이클 등 각종 근육단련 기구들이 갖춰져 있는 피트니스 시설은 한국과 흡사한 모습이다. 3층에는 탁구장이 마련돼 있는데 탁구선수 출신들의 전문적인 코칭 하에 탁구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여성들은 소위 ‘조화로운 몸매’에 관심이 많다고 하며, 이를 위한 ‘다기능답보기’, ‘발판진동기’ 등의 기구가 젊은 여성부터 중년 여성까지 고루 인기가 많다고 한다. 몸매와 더불어 미용과 부인과 치료를 위한 ‘건강회복실’도 2층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피부의 노화를 막고 주름을 펴는 피부 관리 시설은 물론 유선증 등 부인과 질환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여성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건강회복실’에는 의대 출신의 전문연구사가 근무하면서 센터 이용객들의 혈압과 맥박 등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체질 등에 따라 피트니스의 메뉴를 짜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부인과 관련 치료 및 예방 외에도 심장질환 및 비만환자들의 운동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통일거리운동센터’는 피트니스와 뷰티, 치료 및 재활을 혼합한 종합건강 및 요양서비스 시설의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체육에 대한 강조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며 이는 주로 국방력과 노동생산성을 강화하는 것과 관련되었다. 보다 넓게는 농민적, 혹은 전근대적 시간관념과 생활태도를 근대적인 의미의 규율된 신체로 전환시켜가는 근대화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강조된 것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냉전시대 체제경쟁의 차원에서 강화된 엘리트 체육교육, 즉 체육정치의 일환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북한의 관련 법령에도 이 같은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국가는 체육을 대중화, 생활화하여 전체 인민을 노동과 국방에 튼튼히 준비시키며 우리나라 실정과 현대 체육기술 발전추세에 맞게 체육기술을 발전시킨다.”(사회주의헌법, 제55조) / “정상적인 체육활동은 근로자들의 질병을 미리 막고 출근율을 높여줌으로써 생산능률을 훨씬 높이게 한다.”(광명백과사전, 2011)
따라서 북한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체육에 대한 강조는 주민의 건강과 여가의 관점보다는 정치적 혹은 이념·사상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체육의 ‘대중화’와 ‘생활화’는 앞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그것처럼 노동과 국방의 강화와 연관된 활동으로서 규율되고 훈련된 신체의 형성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평양의 일상 … ‘노동’과 ‘집단’ 대신 ‘여가’와 ‘개인’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제창된 ‘사회주의문명국’ 노선에서 언급되는 체육에 대한 강조는 이와는 사뭇 다른 성격과 양상을 띠고 있다. 통일거리운동센터가 펼쳐 보이는 평양시 주민들의 일상 풍경에는 노동과 집단의 의미 대신 여가와 개인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물론 김정은의 ‘사회주의문명국’ 담론에도 신체단련을 통해 건전한 사상과 도덕적 풍모를 단련한다는, 소위 북한판 ‘지·덕·체’론이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습관화된 이데올로기적 어법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통일거리운동센터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과 국방, 정치와 사상, 그리고 도덕과 연결되었던 ‘정치적’ 체육은 ‘평양 주민’이라는 특권적 주체들의 취향과 욕망을 타깃으로 한 여가·서비스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통일거리운동센터는 김정은의 통치방식이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지난 시대의 방식에서 벗어나 ‘탈정치적 정치’의 면모를 보이는 어떤 징후적 공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양이라는 도시적 특징과 ‘웰빙’을 욕망하는 특권적 주체라는 통치대상의 특수한 조건에 반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타 도시에 대한 정치와 비교할 때 그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김정은 시대의 통치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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