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뜨락또르 운전수보다 못하다고?” 2017년 3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73
“뜨락또르 운전수보다 못하다고?”
함경북도 회령에서 왔다는 이 사람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웃자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이 사람은 말하는 내내 진중했다. 회령 여자가 신랑감 고르는 기준에 관한 이야기여서 웃을 만한데도 이 사람은 ‘뚝바위’처럼 무뚝뚝하게 말했다. 함경북도에서는 말이 없고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을 ‘뚝바위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을 두고 한 말 같다. 그의 말씨는 무뚝뚝했지만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다.
회령시 어느 집에 고운 딸이 있었단다. 옛날부터 북한 회령은 미녀가 많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고장이다. 산이 좋고 물이 맑아 그런지, 아니면 바람세가 좋아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회령여자’는 ‘곱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옛날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다. 잘 먹고 자라야 미모도 곱게 유지되는 것이지, 노동당 세월 70년이 가난밖에 가져다 준 것이 없어 지금은 미녀 찾기가 ‘북데기 속에서 낟알 찾기’라는 것이다.
해가 쨍쨍하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오후에 미녀 딸을 둔 노파가 마당에 나와 빨래를 널고 있는데 웬 사내를 대동한 동네 중매쟁이가 간들거리며 들어섰다. “무슨 일이요?” 하고 주인집 노파가 물으니 중매쟁이가 해쭉 웃으며 “이 총각 연이와 맞세우려는데 어떻소?” 하더니 집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단다. 방에 들어와 앉으며 주인 집 노파는 총각이란 작자를 올려보고 내려보았다.
“직업은 대학 교원입니다” … “날래 나가우!”
생김새는 그런대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목청도 걸걸한 게 사내답긴 하다만 딸을 굶겨죽이지 않으려면 무슨 일을 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서 “직업이 뭐요?” 하고 물었다. 사내는 우쭐해서 “대학 교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마 그때 옆에 앉은 중매쟁이도 ‘텔레비전 한 대 값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매를 잘 서면 양복이나 가전제품 하나쯤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물건이 아닌 돈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라고 생각했는지 환히 웃었다. 그러나 주인 노파의 얼굴에는 대뜸 실망의 표정이 어린다. “엊저녁 아랫동네 뜨락또르(트랙터) 운전수도 딸을 달라기에 단박에 퇴자를 놓았는데 대학 선생 같은 게 내 집 문턱을 넘다니, 날래 나가우! 누굴 굶겨 죽이려고?”하며 당장에 쫓아냈단다. “제가 뜨락또르 운전수보다 못합니까? 난 대학 선생이란 말이요.”라고 총각이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것이 요즘 북한의 혼인 풍조다. 가장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이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다. 왜냐하면 한 달 월급으로 쌀 1kg 값 정도 밖에 못 받고 장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뜨락또르 운전수가 훨씬 낫다. 운전수는 운수기재를 가지고 있으니 밀수꾼들 짐만 실어도 한 달에 쌀 1kg이 아닌 먹고 살 충분한 양을 끌어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북한 경제가 거덜이 날 대로 나서 주요 주민통치 체계인 식량공급도 못하는 식물경제로 전락한 형편이니, 옛날처럼 국가공무원이 고학력자라고 해서 대우를 받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요즘 북한 사회를 보면 그야말로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있다. 재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 가치까지 계산한다. 이러한 풍조는 무너진 북한 경제로부터 산생된다. 겉으로는 나선 경제특구 건설이니 신의주 경제특구 건설이니 해도, 사실상 그것은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을 수거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민경제 활성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또한 군비에 들어가는 자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풍부한 광물을 생산하는 주요 광산은 물론 국토의 양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의 어장마저 중국이나 대만에 팔아넘기면서까지 통치자금 마련에 치중하는 정권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북한이라는 나라를 현재와 같은 독재국가로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것밖에는 없다.
백두산이나 낙동강보다 더 부러운 한라산 줄기?
주택이나 도로 건설을 할 때도 주민들로부터 돈을 거두어들여 각종 자재를 마련하고, 학교에서도 각종 명의로 학부형들에게 부담을 지워 집집마다 아우성이다. 상황이 이러니 ‘돈 잘 버는 사람’을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북한 당국은 ‘백두산 줄기’와 ‘낙동강 줄기’를 핵심군중으로 운운하지만 주민들은 뒤에서 코웃음을 친다. 백두산 줄기는 항일무장투쟁을 거점으로 한 김일성 빨치산 부대 출신을, 낙동강 줄기는 지난 6·25전쟁 때 낙동강까지 내려왔다가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거나 친척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주민들이 선호하는 줄기는 1990년대에 새로 생긴 ‘한라산 줄기’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민 가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요할 때마다 달러나 인민폐(위안)를 보내주는 가계 수입원의 원천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주민의식 변화가 일어나는 거대한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남쪽의 발전된 사회로부터 형성된 한라산 줄기를 부러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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