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이상정, 이순호 2017년 4월호
이달의 인물 | 이상정, 이순호
이상정, 한·중연대로 새로운 독립운동 노선을!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청남 이상정(晴南 李相定, 1896~1947) 선생을 2017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917년 이후 대구 계성학교와 정주 오산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20년대 초반 평안도 등에서 교사로 재임하면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한 후에는 중국 허베이성 등지에서 풍옥상 군 참모부의 막료로 근무하였으며, 1940년대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과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임되면서 임시정부에 본격 참여하였다. 1942년 임시의정원에서 ‘임시정부 승인에 관한 건’과 ‘행동준승 9개 조항 취소 건’의 대표제안자로 나섰다. 이 시기 선생은 한·중 간 평등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제대로 된 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광복군의 자주적 활동을 위하여 9개 준승의 취소를 주장하였다.
1945년 2월 선생은 신한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개혁과 독립운동자대표회의 소집을 주장하며, 독립운동 노선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군에서 활동하며 한·중연대 강화 및 해방 이후 중국 지역의 한인 귀환에 힘쓰다 1947년 귀국하였으나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정부는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군사전문가인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죽음 불사한 투혼으로 고지 사수, 이순호 소령
국가보훈처는 이순호 육군 소령을 4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이순호는 제7사단 제3연대 제3대대 제9중대장으로 강원도 양구의 1090고지(크리스마스 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크리스마스 고지는 국군 제7사단이 담당한 전선 중 최북단에 위치한 곳으로 상대의 주요 저항선인 어은산에 이르는 통로상의 요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어은산 일대에 포진하고 있던 중공군 제204사단이 기습 공격하면서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가 발발했고 300여 발의 공격준비사격을 집중한 후 파상공세를 감행해왔다. 중대는 포병 지원 아래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밀려 고지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거듭되는 적의 포위와 압박으로 중대의 후미마저 차단당하자, 위기를 직감하고 모두를 위해 목숨을 던지기로 결심한 이순호 대위는 일부 병력과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대위는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투혼을 불사르다 흉부로 날아든 총탄을 맞고 결국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제11중대는 역습을 감행, 포위·섬멸에 나섰고 고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부상당한 상태에서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죽음마저 불사한 이순호 대위의 전공을 기려 1952년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는 한편 육군 소령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