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 ‘평양’, ‘아리랑’, ‘진달래’ … 휴대전화가 바꿔놓은 새로운 세상 2017년 4월호
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3
‘평양’, ‘아리랑’, ‘진달래’ … 휴대전화가 바꿔놓은 새로운 세상
북한의 가계당 한 달 생계비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평균 50~100달러임을 감안한다면, 한 대에 300달러가 넘는 휴대전화는 고가의 사치품에 속한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이미 북한주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휴대전화는 지난 3월을 기준으로 북한에 450만 대가 넘게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인구구조로 볼 때 어린 연령층을 제외하면 국민 대다수가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맞먹는 높은 보급률이다.
무엇보다 장사를 하려면 휴대전화 보유가 필수적이다. 개중에는 집을 팔아서라도 휴대전화를 장만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휴대전화는 주민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한 사람의 상인이 2~3대의 휴대전화를 보유하는 경우도 점점 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휴대전화가 장사를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오락이나 학습용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젊은 층 대다수는 이러한 목적으로 휴대전화를 보유한다. 예를 들어, 순천시와 같은 중소도시 중학교의 한 학급당 학생이 35명이라면, 이중 5명 정도가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다. 대도시는 한 학급 당 약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평양시의 경우 학급의 절반가량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 학생들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북한도 남한 못지않게 휴대전화의 종류나 형태, 가격 등이 천차만별이다. 우선 형태에 따라 크게 피처폰과 스마트폰 두 종으로 분류된다. 피처폰은 바형의 ‘막대기폰’을 시작으로 슬라이드형의 ‘밀대폰’, 폴더형의 ‘접이식(폴더형)’ 형태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은 ‘타치폰(터치폰)’ 혹은 ‘지능형 손전화기’로 불리며, 기종도 다양해 해마다 신기종을 선보이고 있다. 피처폰의 경우 지금까지 10여 개의 기종이 출시되었다면, 스마트폰은 그보다 더 많은 17개의 기종이 출시되었다. 최근에는 ‘평양’과 ‘아리랑’을 비롯해 ‘진달래’가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북한 지능형 손전화기(스마트폰), 현재 출시 기종만 17개
‘평양’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해도 크고 무거워 휴대하기 불편했다면, 지금은 배터리 충전기도 탈착형이 아닌 일체형인 데다 크기도 작고 가벼워 휴대가 편리해졌다. 또한 휴대전화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도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며, 외부 정보도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외국도서를 비롯하여 핵과 관련된 군사기술정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정보가 휴대전화에 내장되어 있다. 내장된 정보는 경우에 따라 유료로 판매되기도 한다. 보안기술 또한 남한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음성인식은 물론 홍채인식과 지문인식 기능까지 시도된 전화기가 출시될 예정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의 스마트폰 기술이 남한과 비교해 2년 정도 밖에 뒤쳐져 있지 않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도 해마다 새로운 형태의 휴대전화 기술을 시장에 선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기종이 다양하여 판매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물론 북한이 아직 자체적인 기술을 보유하여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는 중국에서 수입해 통신체계를 북한에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종전에는 중국제를 그대로 들여와 브랜드만 국산으로 바꾸어 판매했다면 최근에는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종이 다양한 만큼 가격도 각기 다르다. 피처폰은 통상 120달러에 중국에서 수입해 와 350달러에 판매한다. 최근에는 800달러가 넘는 스마트폰이 시중에 출시되었는데, 이는 중국에서 한 대당 300달러 이하로 들여온 것이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의 2~2.5배에 국내에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300달러 이하로 들여와 한 대당 800달러 넘게 팔아
휴대전화도 비싸지만 통화비용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 사회주의체제의 원칙에 의해 기본요금(통신량)은 저렴하게 책정하였지만, 기본제공량 200분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대해서는 달러나 위안화로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상당히 비싸다. 따라서 장사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고가의 통신료를 지불해야 한다. 대포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북한 내 장마당의 매대에서는 시간당 전화요금을 파는 경우도 등장하였다. 돈주가 상품을 도매로 사와 소분해서 소매로 비싸게 팔 듯 전화요금도 마찬가지다. 돈주가 많은 시간을 한꺼번에 사서 5분, 10분씩 필요한 사람에게 분할해 비싸게 파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통신 분야 혁명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일단 배달문화가 확산됐다. 이는 식당의 음식배달에서부터 지역 내 택배, 국제택배에 이르기까지 유통의 혁명을 가져왔다. 최근 시·군까지도 장거리 버스노선이 연결되어 일반인도 장거리 이동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되었는데, 승객보다 짐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추세라고 한다. 장거리 버스가 많아짐에 따라 차장이나 운전수들이 짐의 수송을 맡아서 해주기 때문에 사람이 굳이 동승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운송이 점차 여객중심에서 물류중심으로 변화되면서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아예 5t부터 최대 20t짜리 트럭을 구입하여 기관 이름을 걸고 물류만 전문 운송하는 개인물류 운송업자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장사꾼이 현지에 가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하게 된 이유는 휴대전화의 보급에 있다. 또한 휴대전화의 보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일상품에 대해 전국적으로 동일한 가격이 형성되도록 하는 ‘일물일가’의 법칙에 기여하였고, 이러한 원리는 궁극적으로 상품가격 안정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식량가격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신의주, 평양, 혜산 등 지역별로도 큰 차이가 없다. 즉 휴대전화의 보급이 통신의 혁명, 물류 가격혁명을 비롯하여 이동통제, 정보통제가 완화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더 나아가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은이 /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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