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류협력, 北주민 인식변화 효과있다 … ‘수혜자는 주민’ 되도록 치밀한 설계해야 2017년 4월호
통권 400호 기념 특집 | 위기도 기회다 … 새정부, 돌파구를 찾아라!
교류협력, 北주민 인식변화 효과있다
‘수혜자는 주민’ 되도록 치밀한 설계해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남북관계에서 각종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전개된 악화일로의 남북관계는 박근혜 정부 4년차 들어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 간 인적·물적 교류는 단절됐고 안보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으며,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이후 대북 투자, 인도적 지원은 물론 남북한 간 사회·문화 교류 대부분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북정책으로 제시한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상생의 상징이자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까지 폐쇄되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현재는 모든 것이 꼬일 대로 꼬여 매듭을 쉽게 풀기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남북관계),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동북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북방경제) 등으로 요약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면서 통일기반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공약으로 밝혔지만, 이는 이른바 ‘대북원칙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이 원칙론의 최대 약점이자 한계였다. 결국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을 비롯한 거듭된 도발에 다음 행보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고 강경책으로만 대응하다가 가시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핵무력 강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기 시작한 전환기였다.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려면 높은 수준의 균형감각을 갖고 외교를 펼치는 동시에 남북관계를 세심하게 관리해야 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 새정부 남북관계 시험대
어쨌든 차기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로부터 매우 어려운 대북정책 여건을 물려받게 됐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을 제어할 수 있는 외교적·정치적 장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차기 정부는 험난한 문제를 유산으로 안고 출범하게 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직면할 현안들만 봐도 하나 같이 만만치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중단시키는 것을 포함해 사드 문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은 그야말로 난제 중의 난제다.
특히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차기 정부 초기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드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제재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남북관계가 새정권 초기부터 좌초될 수도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개성공단은 기적과 같은 공간이었다. 개성공단의 실체를 알면 알수록 상상 이상의 가치에 놀라게 된다. 남북한 모두 개성공단에서만큼은 평화와 번영의 꽃이 만발하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을 새로운 기회의 땅, ‘블루오션’으로 간주하며 앞 다퉈 진출했다. 실제 가시밭길과 같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125개의 입주기업과 수천 개가 넘는 협력기업들이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생존을 뛰어 넘어 도약을 꿈꿀 수 있었다. 북한의 도발이 끊이질 않았지만 남북한 근로자들은 생산활동에 전념했다. 언젠가는 경제협력이 정치군사적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도 놓지 않았다. 사실 남한과의 경제협력 규모와 이익이 압도적으로 컸다면 북한의 군사적 도발 횟수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에 남북한 양측 당국이 너무 깊숙하게 관여하게 되면서 초래된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발전속도를 크게 제한했고, 마침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와 가치만을 놓고 본다면 개성공단은 즉각 재가동되어야 마땅하다. 개성공단의 무한한 경제적 가치 외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건설적인 통일모델 창조, 안보의 방파제 역할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1년째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을 다시 살리기 위한 현실적인 도전과제들은 만만치가 않다. 핵심 걸림돌은 역시 북핵 문제다. 북핵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핵과 개성공단 문제를 병행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팽하다.
핵문제는 현실적으로 대북제재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취해진 유엔안보리 차원의 다자적 제재와 미국, EU, 일본 등 개별국가 차원의 독자적 금융 및 무역 제재들은 기업들의 대북투자 위험성을 크게 높여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핵문제로 인한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고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국내외 바이어들이 입주기업들과 선뜻 거래에 다시 나설지도 불투명하다. 그리고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수용할 것인지, 협상을 시작할 경우 어떤 재가동 조건을 내걸지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결국 개성공단 재가동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북한의 협력을 견인하려는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외교가 중요하다. 이는 아마 차기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과거 북한의 제1~3차 핵실험 이후 유엔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만큼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가 개성공단의 특별한 가치와 역할 등을 인정하고 남북통합 비전과 철학을 갖고 주변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인데, 차기 정부가 임기 초기에 한·미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핵문제는 곧 북한의 체제 문제고, 이 체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개성공단 사업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개성공단은 안정된 일자리 제공, 자본주의 매커니즘 체득, 소득 보장을 통한 삶의 질 개선, 생계보장 등을 통한 북한 주민 인권 증진에도 기여함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삶의 질 개선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런 변화가 북한 체제변화 요소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핵문제 해결 압박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유입되는 현금이나 각종 물자들이 핵개발에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신뢰할만한 관리통제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개성공단 재가동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우리 국민들의 의지다. 다수의 국민들이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수단으로 개성공단의 가치와 역할을 지지하는 여론을 결집시킨다면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은 다시 극적인 회생의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개성공단 재가동이 당장 어렵다면 초기에는 제재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남북 교류협력의 단절 기간이 꽤 길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협기반은 거의 붕괴 상태에 놓여있다. 따라서 초기에는 제재 변수의 고려 이외에도 경협기반 복원을 위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북한 내 취약계층을 겨냥한 대북지원을 제공하면서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더라도 핵·미사일 개발 비용으로의 전환 우려를 충분히 고려해서 투명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 및 붕괴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남북한 간 교류·협력을 재개하기보다는 북한을 더욱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 심화, 미·중관계 등 국제질서의 급변 등을 감안했을 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추구함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자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분명한 점은 남북대화의 단절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핵을 가진 북한이지만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지극히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김정은을 대화상대로 인정해야
우선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상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은 중·장기적 과제인 반면 남북한 사이의 평화와 공존은 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가치로 남북관계 정상화 및 발전의 가장 중요한 토대다. 남북한 간 평화와 공존을 이룩하고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존중하고 이에 기반해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북한 정권에 대한 강제적 교체에 보다 비중을 둔다든지, 흡수통일 의도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이나 정책의 공개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요건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은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이다.
상대방을 인정하게 될 경우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가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도 대북제재와 동시에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대북제재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핵 활동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완화를 맞바꾸는 데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어 북한이 원하는 평화체제 전환과 우리가 원하는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적어도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 그리고 낮은 단계의 경협은 재개되어야 한다. 다만 이런 교류협력에 따른 수혜자가 북한 주민이 되도록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북한 당국의 핵보유 의지를 당장 꺾을 수는 없지만 북한 주민들과의 중단 없는 교류협력 확대는 북한 내부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면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산출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자가 확고한 비전과 철학을 갖고 국민과 주변국을 설득하려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핵문제는 곧 북한의 체제 문제이고, 이 체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대화와 적절한 교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적절한 수준의 교류협력은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킴과 동시에 주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북한체제 변화 요소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핵문제 해결 압박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도 우리 국민들의 의지다. 다수의 국민들이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북한 문제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차기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다시 극적인 복원의 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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