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5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누구는 있어서 냅니까?” 2017년 5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53

누구는 있어서 냅니까?”

지난해 4월 새 학기가 시작된 북한 학교의 교실 모습 ⓒ연합

지난해 4월 새 학기가 시작된 북한 학교의 교실 모습 ⓒ연합

 

북한의 교단을 떠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20여 년 세월 동안 몸담았던 교단에서의 추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낭랑하던 운동장과 교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속에는 공부를 잘해 늘 칭찬받던 아이, 착하고 옷차림이 단정해 학급의 모범이 되던 아이, 성적은 조금 떨어져도 작업(노동)을 착실하게 잘했던 아이, 장난이 심해 늘 주의를 받던 아이 등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만만치 않다. 성격이 천태만상인 개인이 모여 학급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이뤘으니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감정에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 이따금 제자들의 정든 얼굴을 그려볼 때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르다가도 더 잘 대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떠오르기도 한다.

탁월한 성적의 모범생, 급격하게 추락한 이유는?

북한에서 교편을 잡았던 시간 동안 만난 학생들 중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아이들이 몇 있다. 1996년도에 맡은 학급 학생 중에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머리가 비상한 아이가 있었다. 어찌나 공부를 잘하는지 한 과목도 어려워하는 과목이 없었다. 그 학생은 왜소한 체격에 조용한 성품을 가진 아이였다. 학급에서 크게 나서지 않고 키도 작았지만 아이들이 함부로 따돌리지 못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학과경연에 그 학생이 빠지면 안 될 정도로 학급 평균점수를 좌지우지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담임과 학급의 자랑이었던 이 학생이 2학년 2학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몸이 좋지 않아도 숙제를 안 해온 적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각 과목 쪽지시험에서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학생에게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보였다.

담임인 나는 학생을 불러 개별 면담을 시도했지만, 원래 성격이 조용하고 묵직한 편이라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며칠 안 가 또다시 숙제를 해오지 않는 현상이 반복됐다. 학급 임원들이나 그 학생과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을 통해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아도 이렇다 할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가정방문을 가기로 했다. 사실 난 가정방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 호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가정방문이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생 지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방문했다. 집에 찾아가 학생의 상태를 알려주고 부모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야 그 학생의 변화가 십분 이해되었다.

한 마디로 부채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돈 문제로 부부 간에 다툼이 잦고 채권자들이 매일같이 집에 들이닥쳐 아이의 학업과 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부모님은 아이를 앉혀놓고 “너는 가정 사정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라고 안심시켰지만 이미 그러기는 어려워보였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돌아서며 후회했다. 교사인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아이에게 신뢰를 보내고 위로하는 것도 한 순간뿐일 것이라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학과경연에서도 이상 현상은 여실히 나타났다. 늘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의 성적은 떨어져만 갔고, 다른 학생들은 그 아이를 더 이상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철옹성으로 여기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꾸리기 자재와 꼬마계획, 사회적 지원금 등 모든 면에서 학급의 골칫덩어리로 변했다.

자식 문제니 빚을 내서라도 내야죠

담임이 학생을 감싸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의 북한 학부모들은 1970~1980년대의 학부모들이 아니다. 경제난을 겪으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맛보았기에 어느 누구를 동정할 처지가 못 된다.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선생님, 사는 형편은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누구는 있어서 냅니까? 자식 문제니 빚을 내서라도 내야죠.”라고 말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 학생의 성적은 중하위권으로 떨어졌고,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해 군에 입대했다. 사실 북한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이 드문 경우는 아니다. 졸업 때까지 성적은 괜찮았는데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어 스스로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 출신성분이 좋지 못해 일찍이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 등 수없이 많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소학교에서 저학년 때는 중위권에 머무르다가 4학년부터 급격히 성적이 오른 학생이 있었다. 알아보니 엄마가 장사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개별지도(개별과외)도 받게 되어 성적이 오르기 시작한 경우였다. 이 학생은 졸업 때까지 개별지도를 멈추지 않더니 평양에 있는 김책공대에 진학했다.

집안 분위기나 경제적 환경이 아이들의 심리 상태와 학업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북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사회구조는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부모의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경우 개인의 능력 여하와는 관계없이 회생이 불가하다는 점에서 남한과 확실히 다르다. 충분히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더 이상 발전이 어려운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고 아른거리는 학생도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던 학생인 것 같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던 그때 그 학생은 지금쯤 북한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까?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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