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5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 北 | 잘린 허리로 혼자 일어설 수 없다 2017년 5월호

박계리의 스케치 北  65

잘린 허리로 혼자 일어설 수 없다

김봉준, , 테라코타, 2009

김봉준, <누운 소>, 테라코타, 2009

미술가 김봉준 선생을 찾아갔던 날에 비가 내렸다. 선생의 작품들은 ‘신화미술관’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시실 안에 놓여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가기 전 바깥마당에는 작품 <누운 소>가 놓여 있었다.

작품 속 소는 허리가 잘려 있었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체념의 눈빛이 아니었다. 혼자는 일어설 수 없으니 손 내밀어 달라는 삶의 의지가 눈빛에 가득했다. 이 눈빛에 서린 삶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아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TV를 켜면 연일 전쟁의 공포가 보도된다. 선제타격을 이야기하고 미사일이 발사되며 항공모함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그래서일까, 잘려진 허리를 하고 누워있는 소 조각상의 모습은 지금 이 땅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잘려진 허리로는 혼자 일어설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아픈 대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작가의 작업실에서 문득 깨닫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눈빛은 어떨까? 생명에 대한 간절한 갈망으로 가득할까?

아닌 것 같다. 정치의 계절. 우리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무수한 정책들은 유권자들의 촉수를 예민하게 하지만 그 모든 정책들은 결국 ‘살아있는’ 생명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는 것 같다. 너무 오래 아파서일까?

김봉준, 생명의 소중함과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다

미술가 김봉준은 분단과 통일을 화두로 오랜 작업을 하다가 평화와 생명, 공존으로 자신의 지향이 확대되면서 현재는 신화의 세계로까지 나아가 있다.

그의 고민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개발해야 할 이용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서양의 근대주의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동양의 자연관은 우주관과 접목되어 있었다. 이러한 우주관 속에서 인간은 다른 동식물처럼 자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미물에 불과하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묵상을 통해 공존에 대해 배우곤 했다.

김봉준은 이러한 시선이 잘 드러나는 것이 예로부터 존재했던 토템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물에도 고귀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음으로써(특히 인간과 가까웠던 동물들에) 형성된 토템신앙은 고대 신화의 세계를 다시 호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중심적 태도가 만들어낸 환경의 파괴와 자살률 최고치라는 위기의 시대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그의 반성은 우리에게 우주와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 관점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렇다. 모든 생명에는 존중받아야 할 영혼이 있다. 우리가 전쟁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DMZ 평화굿랑>이라는 작품에는 이러한 작가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갇힌 공간 DMZ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와 이 공간에서 죽어간 전쟁 희생자들을 굿판을 벌여 위로하고 있었다.

피리 소리로 신을 호출하고, 샤먼이 매개자가 되어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靈)들을 위로한다. 이 영혼들은 여전히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정전 상태로 살아가는 한반도의 모습이 불안해서 차마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잘려진 허리와 한반도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갇힌 공간 DMZ에 생식하는 생명체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공존의 가치를 염원하고 있었다.

생명체들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한가? 평화는 어떻게 오는가? 잘려진 허리로 인해 일어설 수 없는 누운 소의 눈망울은 그 답이 쉽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의 눈빛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평화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 다시 폭력으로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는 영원히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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