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 北 | 전쟁의 땅에서 전쟁의 삶을 찍다 2017년 8월호
박계리의 스케치 北 68
전쟁의 땅에서 전쟁의 삶을 찍다
사비나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미술가 이부록의 작품 앞에는 젊은이들이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1,500명 정도나 관람한다고 하는데 대단한 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 내에도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실내에 머그샷(Mug Shot)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쟁 파병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설치된 공간에는 다음과 같은 매뉴얼이 붙어 있었다.
매뉴얼 : 인간불법측량대 앞에 당신의 신체를 올려놓은 뒤 카메라 타이머 속의 시간의 빛을 10초간 통과시킨다. 인화지 위의 기록물, 아주 잠깐 동안 벌어진 일
전쟁터로 나가기 직전 이 곳에서 머그샷을 찍는 장소였던 것이다. 머그샷은 일종의 속어로, 영어권에서 사람의 얼굴을 뜻하던 은어 머그(Mug)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할 경우 구치소 등에 수감되기 전에 찍는 사진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종의 기록 사진인데, 이부록의 작업에서는 전쟁터로 나가기 직전 인증샷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는 공간으로 동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전쟁 파병 인증샷’을 찍고 미술관을 나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전쟁 파병 인증샷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이 작업은 우리의 일상이 전쟁터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작업은 우리의 일상이 휴전 상태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휴전 상태란 전쟁이 종료된 상황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전쟁이 잠시 멈춘 곳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상정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전쟁 파병 인증샷’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인증샷 퍼포먼스의 이미지 중 많은 수는 머그샷 앞에서의 표정이 심각하지 않았다. 전쟁터로 나가기 전 찍는다는 설정 앞에서 심각하고 긴장된 표정을 연출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젊은 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그들은 기꺼이 긴 줄을 서서 인증샷을 남겼으며, 일상이 전쟁터라는 설정이 익숙한 것인지 그리 놀라지 않고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6천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전쟁 파병 인증샷’을 남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거운 질문을 계속 던져 주고 있었다.
취업 전쟁이라는 생존의 전쟁을 치러내고 있는 이들에게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의 삶은 전쟁이라는 화두를 이미 일상에 체화해 놓은 듯 했다. 그 일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머그샷의 기록을 그들은 돈을 주고 남기고 있었다.
인증샷을 찍은 관람객에게는 또 하나의 미션이 주어지게 된다. 일명 <스티커 프로젝트, Sticker Project>다. 픽토그램에 전쟁의 알레고리를 덧씌워 변형시킨 사람 이미지를 스티커로 제작해 참여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받은 스티커를 그려진 이미지와 어울리는 자신의 신체 부위에 붙이고, 일상의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은 작가에게 보내지고, 사진 결과물은 전시장 모니터를 통해 다시 관람객들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스티커 사진을 통해 전시 체제의 풍경으로 변질된 일상을 증언하며, 개인의 일상 속에 유포된 잠정적인 전쟁의 계기들, 즉 전쟁의 전조들을 채집한다. 분단체제의 온갖 이념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부품화되고 소외된 상징의 여러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부록의 작품에 참여한 관람객들의 사진 작품들은 우리 일상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참여자들의 진지한 사진들이 나에게 ‘일상의 부재’와 ‘냉소적 즐거움’에 대해 질문하게 했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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