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8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옆에서 듣고 있어요! 2017년 8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78

옆에서 듣고 있어요!

지난 달 북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북·중 접경 지대에 나온 조카 녀석의 전화였다. 첫마디부터 이상했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서울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순간 황당해서 “너 지금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하니?”라고 물었는데, 전혀 근거 없는 물음은 아니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있었던 탈북민 모임에서 최근 입국한 조카 녀석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너무 반가워 그와 반나절 이상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고향 소식을 들었다. 주로 조카에 대한 말을 많이 물었다. 헤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조카 녀석의 친구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전해준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삼촌이 보내준 돈이 있어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조카는 지금 ‘얼음’(북한에서 마약을 일컫는 속어)에 빠져 가정파탄의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나는 속이 덜컥했다. 생활에 보태라고 보내준 돈이 결국은 젊은 조카를 위기에 몰아넣은 것 같아서였다. 황당했다. 살라고 보내준 돈이 결국은 죽으라고 보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뜬금없이 돌아오라니?”

이러한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조카 녀석과의 통화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조카는 히죽히죽 웃는 목소리로 ‘얼음’을 하는 건 치료의 목적이니 이따금 피곤하거나 몸이 무거울 때면 하는 것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카에게 “그 따위로 살겠으면 다시는 내게 전화하지 마라!”라고 격한 심정으로 오금을 박듯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뜬금없이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말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녀석이 하는 말이 참 가관이었다. 말의 억양이나 톤까지 아주 진중했다.

“듣기로는 요새 남쪽에서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렇게 고생할 바에 왜 타지에서 힘들입니까? 돌아오시는 것은 어때요?”, “너 그게 진심이냐?” 어처구니없어 한 마디 묻자 “내가 언제 실없는 소리 하는 거 봤소? 가족이 어찌 죽을 때까지 얼굴도 못보고 삽니까? 그러니까 제발 마음 접고 돌아오세요.”

나는 머리를 스치는 또 다른 생각에 잠깐 여유를 두고 한마디 했다. “그래 알았다. 생각해 보마. 네가 약을 끊는다면 대답을 줄게”, “끊겠소, 삼촌만 돌아온다면.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반역자’ 삼촌을 둔 내가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산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니 생각하고 말고 없이 당장 돌아오세요.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거기서 얹혀살면서 그러세요. 만약 안 온다면 삼촌은 더는 내 삼촌이 아녜요”

전화는 끊겼다. 다시 걸어 봐도 전원마저 끊겨있는 상태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여태껏 먹고 입고 쓰는 것까지 아껴가며 알뜰히 모아 돈을 보내줬더니 결국 돌아온 대접이 이런 거란 말인가? 한참을 망연자실했다.

나는 다시 조카의 친구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만났다. 그는 통화내용을 듣고 나서 그게 조카의 진심이 아닐 것이며 아마 옆에서 담당보위원이 전화를 걸라고 요구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해는 가는 말이었으나 시원히 소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껏 보내준 돈만 해도 얼만데, 은혜도 모르고 반역자라니? 나는 별의별 욕을 다 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조카의 친구 말처럼 상황이 그랬다면 보위원이 24시간 계속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법인데 해명 전화나 문자 하나라도 줄 수 없었나? 국경에서의 전화여건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잠시 잊고 서운함에 든 생각이지만 솔직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후 조카에게서는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도 처음과 달리 그 일을 잊으려고 했고 흘러가는 날짜와 함께 마음도 안정되어 갔다. 그렇게 전화통화를 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던 7월 초에 조카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실적 때문에

통화내용은 이러하다. 조카 친구의 말이 정확했다. 담당 보위원의 실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으로부터 탈북자 가족을 귀환시키는 데 대한 지시가 최근 국가안전보위부 지령으로 하달되었는지, 이를 집행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담당 보위원들이 형식적으로라도 해당 전화내역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보위원이 옆에서 통화 내용을 저장하는데 삼촌은 눈치도 없이 ‘얼음’ 이야기는 왜 하냐며 되레 나를 질책한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네가 얼음을 하지 않았으면 그런 말이 왜 내 입에서 나왔겠냐”라고 하자 “알았소. 이제는 끊었으니까 마음 놓고 돈이나 보내줘요”라고 한다.

조카와의 통화는 왜 매번 끝나면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북한의 현실이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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