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 북한에서 불붙은 주방 혁명 2017년 8월호
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7
북한에서 불붙은 주방 혁명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북한의 장마당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발전했다. 특히 ‘유행’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면서 소비문화가 싹트고 있다. 아울러 인기상품도 주기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주민의 단순한 소비욕구조차 외부세계와 연동되어 반응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물결을 북한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민의 도덕적 관념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집단주의에 입각한 획일성과 검소함이 고상함과 도덕적 품성을 상징했다면, 지금은 유행을 좇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부르주아적 소비행태가 오히려 ‘깨어있다’는 평을 얻는다. 인기상품이 기존의 낡은 도덕적 관념을 밀어내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기상품을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지가 큰 자랑거리다. 최근 북한에서는 유행을 좇는 사람들을 ‘세이코(SEIKO)’라고 부른다. 여기서 ‘세이코’는 일본제 손목시계 브랜드로 희소하면서도 독특하며 유명한 사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인기상품이 소득과 비례하여 빈부계층을 극명히 가르는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때로는 상층부의 소비행태가 당국의 통제대상이 되지만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북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0년 평양을 중심으로 대중의 인기상품이 된 믹스커피는 북한의 전통적인 손님맞이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젊은 청춘의 데이트에도 커피가 등장하는가 하면 농촌에도 머지않아 커피마시는 문화가 전파될 기세다. 과거 간장과 된장이 식생활문화에서 1순위였다면 이제는 그 자리를 믹스커피에 내주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평양 부유층 중심으로 ‘웰빙’ 주방상품 대인기
특히 최근에는 평양시 부유층을 중심으로 주방 인테리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득에 따라 인테리어가 각이하며 소득이 높을수록 서양식을 모방한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의자가 동반된 식탁을 선호한다. 바꿔 말하면 전통적인 ‘앉은 밥상’은 고소득층일수록 기피하고 있다.
북한의 소득수준은 음식소비 유형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데 보통 3단계라고 한다. 첫 단계는 ‘배부른 식사’, 두 번째 단계는 ‘영양 식사’, 세 번째 단계는 ‘장수 식사’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는 ‘웰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유층일수록 세 번째 단계인 장수 식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에 관한 상품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그릇소독기(식기세척기)의 인기가 높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식사 후 그릇을 씻은 후 멸균 소독을 하여 건강을 지키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여성들의 지위가 확연히 변하면서 북한 사회의 인기상품은 주로 여성이 사용하는 상품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중국 단둥에 나오는 북한 무역업자들은 그릇소독기를 주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릇소독기를 주문하는 대상은 대부분 여성으로 상류층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가격은 중국 단둥에서 무역일꾼들이 700위안에 사서 평양에 들여가면 적어도 2천 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평양과 가격만 합의되면 대량으로 구매해가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이제 북한에서 집 꾸리기는 주민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인민반 회의를 해도 사람들은 회의보다는 그 집안의 집꾸리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충분한 재력이 없어도 6개월이면 금방 따라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기도 하다. 사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북한에서의 리모델링이라면 부엌의 가식장(나무로된 찬장)을 없애고 주방 벽을 타일로 붙이는 수준이었다.
전자레인지에서 식기세척기로 유행 넘어가
그러다가 관심이 주방기구들로 옮겨갔다. 중국에서 밥가마(전기밥솥)와 채(菜)가마(전기후라이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윰가마(알류미늄 밭솥)와 무쇠가마가 없어졌다. 함경도 지역은 취사용 연료가 나무여서 무쇠가마를 사용했으며, 평안도 지역은 연탄을 사용하고 있어 알류미늄으로 만든 윰가마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윰가마는 여성들을 매우 피곤하게 만든다. 자주 닦아야 하며 화력이 조금만 세도 밥이 금세 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들은 시간을 벌어야 했다. 돈벌이가 바빠 윰가마를 닦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밥가마가 인기를 끌었다. 개중에는 아내들이 게을러진다고 전기밥가마를 못 사게 하는 소위 ‘나쁜 남편’들에 대한 이야기도 화제였다.
이와 동시에 북한에서는 큰 사발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중국에서 수입한 작은 사기그릇을 쓰기 시작했고 상층부 사이에서 전자레인지가 유행했다. 주로 식은 음식을 데우거나 빵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지금은 그릇소독기로 유행이 넘어가고 있다.
주방용품은 경제수준의 향상과 함께 히트 상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 주방은 여성이 주로 차지하는 공간이며 부엌의 정돈과 음식 솜씨를 두고 여자의 인품을 평가하는 과거 인습도 여전히 남아있어 주방꾸리기에 인기상품을 갖추려는 경쟁을 더욱 부축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은이 /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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