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채상덕, 김경진 2017년 10월호
이달의 인물
채상덕, 김경진
채상덕 선생, 남만주 항일무장투쟁 선봉에 서다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채상덕(蔡相德, 1862~1925) 선생을 2017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황해도 출생으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통군부 총장, 대한통의부 부총장, 의군부 총장을 역임하며 만주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선생은 1910년대에 독립의군부가 와해되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로 망명하였고, 1922년 대한통군부 총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통의부의 부총장으로 선임되어 이주한인사회를 복원하고 만주 한인의 삶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통의부 내에서 이념과 노선의 갈등이 발생하여 복벽주의 계열 인사들이 1923년 통의부를 이탈하여 대한의군부를 조직했고, 선생은 대한의군부의 총재로 추대되었다.
1924년 항일무장투쟁을 주된 노선으로 하는 참의부가 성립되자 선생은 자신의 제자와 부하들을 참의부에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그러나 1925년 3월 밀정 이죽파가 참의부의 회의 장소를 일제의 초산경찰대에 밀고하여 일본 경찰이 이곳을 기습 공격하였고, 많은 참의부원들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생은 비통함에 젖어 제자 이수홍에게 독립군이 되어 자신의 의지를 이어 줄 것을 당부하고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남기고 독약을 마셔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1995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백마고지 탈환의 결정적 리더십, 김경진 소령
1952년 10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철원평야 서북단의 백마고지에서 치열한 고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고 하루 평균 5만발 가량의 포탄이 작렬한 전투로, 세계 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진일퇴의 혈전이었다.
1952년 10월 11일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제2대대장인 김경진 소령은 사단장으로부터 불과 1시간 전 제1대대가 물러났던 정상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역습을 감행한다. 그는 고지 정상의 중공군이 진지보강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최전방으로 나아가 부하들을 독려하며 진두지휘했다. 김경진 소령은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부하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육박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뒷전에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상 20m 앞까지 진격한 김경진 소령은 최후의 돌격사격을 감행하던 중 적의 박격포탄에 의해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용맹한 솔선수범은 당시 상황을 목격한 대대원들의 전투의지를 불살라 과감한 돌격으로 이어지게 했고, 결국 백마고지를 탈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54년 6월 25일 정부는 김경진 소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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