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이렇게 빠르다니! 2017년 10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9
이렇게 빠르다니!
남과 북의 격차는 철도를 통해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남한에 온지 10년이 됐지만 지금도 열차를 이용할 때마다 문득문득 그 차이를 느낀다. 그동안 지하철, 경전철로부터 시작해 KTX, 무궁화호, 새마을호, ITX청춘2층열차 등 다 타봤다. 다만 아직까지 자기부상열차를 타보지는 못해 기회가 되면 조만간 꼭 타볼 생각이다.
자기부상열차가 지난해 인천공항철도 구간에 개통되어 참 다행이다. 왜냐하면 북에서 살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남한에서는 자기부상열차가 경부선을 달린다고 본의 아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밤마다 몰래 듣던 대북방송에서 자기부상열차에 대한 소개를 들었었다. 그때 잘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심리전 차원에서 과장된 것인지는 아리송하지만 어째든 내가 거짓말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듣는 이들이 믿든 말든 경부선에 세계 최초로 자기부상열차가 운행되고 있다고 냅다 우겨댔다. 대북방송에서 들었다고 할 수도 없고 남한에 가본 중국 화교들한테 들었다고 했다. 그제야 “이야! 남조선 애들 머리 좋다야. 원래 조선 민족이 머리야 좋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제대로 못해서 그렇지…” 하며 푸념했다.
북에서는 자기부상열차를 ‘자기방석열차’라고 했는데 실물은 볼 수 없고 과학도서에나 소개된, 언젠가는 인류가 도달할 문명으로 환상처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것이 남쪽에 개통됐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도를 펴놓고는 통일이 되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자기방석열차가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던 때가 엊그제 같다.
비행기처럼 생긴 KTX, 서울–부산 2시간 반 놀라워
하지만 남한에 와서 보니 경부선에 자기부상열차가 없었다. 그 대신 비행기처럼 날씬하게 생긴 KTX고속열차가 달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기부상열차인줄로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부산에 가려고 서울역에서 철로를 내려다보니 두 줄의 레일이 침목 위로 뻗어간 것이 여느 철로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동체처럼 생긴 열차는 다름 아닌 KTX고속열차였다. 선로에서 다른 점은 레일과 레일을 볼트 너트로 이은 연결 틈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레일 한 개 길이가 북한에 비해 몇 배 긴 것인지, 아니면 매끈하게 잘 이어붙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더라도 레일의 열수축 현상은 어떻게 방지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열차를 타면 연결 틈을 지날 때 ‘탕- 탕 … 타다당탕탕-’ 하고 장단 맞춰 울리는 차바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가 없어 객실이 조용하긴 해도 기차를 탄 흥취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점은 아쉬웠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불과 2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놀라웠다. 평양을 떠난 열차가 동해안으로 가로질러간 다음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함흥을 지나 신포나 북청까지 갈만큼의 거리다. 북한의 “붉은기”호 전기기관차의 정상운행 속도로 11~12시간 걸린다. 그러나 정상운행은 옛날이고 지금은 그 거리를 가는데 2~3일은 보통이다. 전력사정이 더 심각한 겨울철엔 일주일 걸릴 때도 있다. 더 멀리 혜산이나 청진까지 가려면 보름이 걸리기도 한다.
북한 전기철도 정격전압은 직류 3,300V인데 800V이하로 떨어지는 때도 있다. 그 상태로 운행하면 과부하로 기관차에 무리가 발생해 견인전동기가 타버릴 수 있어 기관사들은 열을 식히려고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 때 속도는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저전압 상태에서 열차가 내리막에 접어들면 기관사들이 목숨을 건 도박을 한다. 제동용 공기압축기를 최대한 돌린 다음 출발해서 내려가다가 압축공기가 거의 빠지면 열차를 멈추고는 한참 압축기를 돌려 제동공기를 보충하고 출발한다. 그러다가 자칫 제동장치가 풀려버려 내리막을 쏜살같이 달리다가 기차가 산 밑으로 떨어져 수백 명이 생명을 잃는 사고가 속출한다. 남한 같았으면 기관사에게 그런 위험한 운행을 강요할 간부도 없을 것이고 제 목숨 내걸고 조종석에 앉을 기관사도 없을 것이다.
북한 열차 기관사는 매번 목숨 건 도박에 나선다
간혹 전력공급이 정상일 때도 선로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노반이 불안정하고 레일을 제때에 교체하지 못해 열차가 정상속도로 달리지 못한다. 탈선 사고가 비일비재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열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여행이 말 그대로 지옥이다. 고급 간부들도 열차를 타고 출장 갈 때면 고역이다. 설 자리도 모자라 다투는 일반객들과 달리 전용 침대칸에 타기는 하지만 난방이 되지 않아 이불을 몸에 감고 며칠씩 가야 한다. 그래서 자동차로 가는 것을 선호하지만 기름 사정도 어려워 어지간히 높은 직위가 아니면 누릴 형편이 못된다.
승강대까지 꽉 찬 객차에 들어갈 수 없어 지붕에 타고 가다 수천볼트가 흐르는 전차선에 머리가 닿아 죽는 사람들, 창유리가 부서지고 없는 창문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 승강대 발판 밑에 웅크리고 탔다가 떨어져 죽던 아이들, 지금도 그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하루빨리 북한에도 변화가 도래해 경의선으로 부산~신의주행 고속열차가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남한에도 기본철도 노선에 자기부상열차가 개통되어 통일 후 고향 지인들에게 “내가 뭐랬어. 남쪽은 오래전부터 자기부상열차가 다녔다니까”하고 오래전의 거짓말을 변명해 봤으면 좋겠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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