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0월 1일

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 결혼식도 실리적으로! 2017년 10월호

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9

결혼식도 실리적으로!

최근 북한의 결혼식 상차림. 정면에 결혼 축탑 대신 화려한 꽃장식이 있으며, 닭이 아닌 꿩이 놓여 있다. ⓒ연합

최근 북한의 결혼식 상차림. 정면에 결혼 축탑 대신 화려한 꽃장식이 있으며, 닭이 아닌 꿩이 놓여 있다. ⓒ연합

9월에 접어들면 북한도 결혼식 시즌에 들어선다. 주로 봄과 가을에 혼례를 치르는 관행이 있는데 이는 계절의 청아함과 따스함, 상쾌함 외에도 가을철 수확으로 알곡이 무르익어 그 풍요함에 물가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또한 대소사용으로 쓰이는 과일 등이 풍성하고 온도가 선선해 음식을 보관하기에 적절하기도 하다. 날씨가 선선하면 3~4일전부터 음식장만을 해도 보관이 가능하다.

사실 1980년대만 해도 북한 주민은 냉장고 없이 잘 살아왔으며 1990년대에도 일부 간부집과 무역일꾼의 집을 제외하고는 냉장고를 보유한 주민이 드물었다. 2000년대에도 ‘돈주’와 일반 주민 사이에 냉장고를 갖춘 집들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전력난으로 사용빈도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결혼식을 비롯한 환갑, 돌잔치 등 대소사는 부득이 이른 봄과 늦가을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상차림 준비부터 손님접대 음식에 이르기까지 북한 여성은 대소사를 치를 때마다 그 후유증이 만만치가 않아 몸살을 앓지 않는 주부가 없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결혼식 상차림이다. 주부들은 탑처럼 쌓아 올릴 떡을 준비하기 위해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미리미리 제분을 해 놓는다. 또한 넓적한 돼지갈비 판대기를 구입해 상의 좌우를 장식할 준비를 마친다. 이때 과일은 필수 항목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닭 두 마리다. 큰 닭을 구매해 끓는 물에 튀기고 푹 삶은 뒤 빨간 고추를 물려 결혼식상 정면에 놓는다. 이 밖에도 상차림 가운데 놓을 ‘결혼식 축하’ 상과자와 술, 사탕 등 형편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장만한다.

2008년 결혼식 상차림 1세트에 500달러 지불한 돈주

그러나 2010년 전후로 상차림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나나를 비롯한 파인애플 등 수입과일이 결혼식 상에 오르면서 상차림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열대과일은 물론 외국산 술도 등장했다. 2008년 당시 신의주에 살던 어느 돈주는 결혼식 상차림 한 세트를 아예 무역일꾼에게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당시 상차림 한 세트 가격은 500달러였다.

이와 같이 결혼식 상에는 닭 대신 꿩이, 사과 대신 파인애플이 올라왔다. 평양 대평 술과 개성 인삼 술도 대소사용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수입산 와인이나 캔맥주가 상차림의 필수 주류로 떠올랐다. 또 설탕으로 장식한 결혼식 축탑이 없어지고 화려한 꽃다발이 등장했다. 이에 결혼식용 상차림에 필요한 것들을 판매하는 전문 상품 매대가 장마당에 등장하기도 했다.

상차림의 수준과 함께 결혼 예복수준도 덩달아서 올라갔다. 남자 정장은 그대로지만 여자 한복은 원단과 디자인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 한복은 종합시장에서 최저 30달러에서 최상 150달러에 달한다.

결혼식 문화는 유행으로 번졌다. 특히 인생 대사인 결혼식에 유행을 무시하는 부모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돈주라도 한 번의 상차림에 그렇게 많은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냐는 실리주의적 경제관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상차림에 쓸 돈이면 차라리 자녀들의 살림에 보태자는 것이다.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했던 전통적 관념의 변화였다.

실리를 추구하는 관념은 결혼식 상차림의 대여 방식으로 반영되어 종합시장에 등장했다. 대소사에 필요한 상차림을 종합시장 식품 매대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식품 매대에서 취향과 기호에 따라 물품 선택이 가능하다.

임대료는 일반적으로 해당 상품 판매가격의 10%다. 예를 들어 임대한 양에 판매단가를 곱하여 총합을 산출하면 임대비용은 총합계의 10%가 된다. 식품 임대는 보통 10시간이며 한복만 대여할 경우 24시간이다. 식품은 최고급 상품도 임대가 가능하지만 한복만은 최고급 임대가 불가능하다. 한복에 흠집이 생기면 재임대가 불가능하며 판매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고급 한복을 임대해야 할 경우 하자가 발생하면 소비자는 한복 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격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 30~50달러 선에서 한복을 임대한다. 결혼식 상을 장식할 꽃은 종합시장 꽃 매대에서 구입한다. 결혼식 상을 꽃으로 장식하는 문화는 5년 전부터 유행되어 대중화되었다.

결혼 상차림 대여 10시간, 한복 임대는 30~50달러 선

그러나 ‘결혼식 상에 꿩을 놓느냐, 닭을 놓느냐’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즉 가난한 사람은 닭을 놓고 돈 있는 사람은 꿩을 놓는다. 다만 꿩과 닭은 임대가 없다. 현재 북한 시장에서 닭 한 마리 가격은 1만5천 원, 꿩 한 마리 가격은 3만 원이다. 닭은 물로 튀긴 후 익혀서 상에 올리지만 꿩은 털이 붙은 채로 놓는다. 꿩을 놓아야 결혼 상차림을 잘 차렸다는 평가를 받는데 꿩을 닭처럼 삶아 놓으면 식별이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을철에 들어서면 결혼식 상차림 임대는 상인들에게 좋은 수익 사업 중 하나다.

한편 결혼식장도 임대를 한다. 개인 식당이나 국영식당을 결혼식장으로 예약하여 그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결혼식장 임대는 중산층부터 가능하다. 일반 주민은 지금도 자택에서 진행한다. 따라서 보통 북한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 집에서 상을 받은 뒤 신부를 데려가는 형식때문에 예식에 하루가 소요되지만 지금은 3시간 이내로 단축되었다. 결혼식장 식당을 임대하는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한 평양시에는 결혼식 전문식당이 들어섰지만 지방도시에는 전문식당이 없다. 대신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면 상차림과 함께 장소를 대여할 수는 있다. 결혼식 시간을 3시간 예약하고 1~2시간 연장할 경우 그 비용은 따로 지불해야 한다. 또 지금은 양가가 합동해서 결혼식을 올려 비용을 절약한다. 양갓집에서 따로따로 결혼식을 올리면 비용도 시간도 두 배로 들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오는 하객들 또한 시간이 단축된 결혼식을 원한다. 이제는 시간을 절약하는 간편함이 모두 돈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리주의적인 결혼식 관념이 바로 시장 아이템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은이 /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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