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어요 | “처형·고문·납치·실종 … 북한 인권범죄 지도 만듭니다” 2017년 10월호
만나고싶었어요 |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처형·고문·납치·실종 … 북한 인권범죄 지도 만듭니다”
Q.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A. 3년 전인 2014년 9월 서울에 설립했습니다. 탈북민 연구원을 포함해 남북한, 영국, 캐나다, 미국까지 5개국 출신 20~30대 8명이 주도했고, 국제법, 형사법, 인권, 지역학, 북한연구, IT 등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내외에서 참여해주셨습니다.
설립 계기는 그해 봄 공개된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였어요. 유엔은 북한에서 벌어져온 인권 문제의 면면이 중대 국제범죄 중 하나인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죠. 또한 정권 책임자들과 중대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이들이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국제보편적 접근법인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문제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가해자 책임추궁 문제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배·보상과 회복 지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의 현 상황과 앞으로 통일 과정을 생각해볼 때 불가결한 방향이기도 하고요.
필요성에 공감하고 참여할 전문가들을 국내외에서 모으는 일 못지 않게 후원할만한 곳들을 찾는 것도 관건이었습니다. 구체적 사업들을 기획해 몇 곳에 후원을 요청했는데, 설립 반 년만인 2015년 봄부터 미국의 국제민주연구소(NDI)와 전미민주주의기금(NED)에서 후원하기 시작했어요. 3년 사이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주시는 분들도 늘어 지금 국제자문위원들은 과테말라, 독일, 미국, 코소보, 크로아티아, 태국에도 있죠.
Q. ‘전환기 정의’ 개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A. 단체명을 처음 들으면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분들을 종종 만나요. 약간 풀어서 체제전환기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실무작업을 하는 곳이라고 소개하거나, 우리 사회가 여러 번 경험한 역사청산 또는 진실규명위원회를 예로 들면 더 쉽게 이해하시고요. 설립 계기나 사무국을 서울에 세운 이유가 보여주듯이 중요하게 다루는 나라 중 하나로 북한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세계 100여 개의 국가들이 전환기를 겪었습니다. 194개 유엔 회원국의 반이 넘을 정도죠. 반면교사로 연구를 다 못해서 그렇지 삼을 교훈들은 차고도 넘칩니다. 독재나 억압적 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로, 국가 간 전쟁이나 내전에서 평화로, 종속이나 식민 상태에서 독립하는 등 다양한 전환이 일어났거나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데 독재·전쟁·내전·식민화 등으로 심각한 인권유린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사회가 전환되는 시기에는 과거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들의 회복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복잡다단한 이해갈등과 충돌이 필연적으로 벌어집니다. 잘못되면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내전과 같은 파국으로 떨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유엔에서는 세계 곳곳의 전환기 국가들에 민주주의와 법치가 뿌리내리고, 인권과 평화, 개발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돕기 위해 현재 20여 개국에 현장사무소나 특별임무를 두고 현지 시민사회나 정부와 협력하고 있죠.
Q. 북한 문제에 대한 ‘전환기 정의’ 접근, 어떤 의미가 있는지?
A. 언제 북한에 정치·사회적 전환이 일어날지 아직 알 수 없어요. 또한 전환이 일어난다면 남북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칠지, 우연한 사건으로 촉발된 민중저항으로 시작될지, 김일성 일가를 몰아내는 대체권력이 등장할지, 국제적 개입으로 시작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죠. 내용적으로는 지금처럼 인권유린이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벌어지다가 크게 완화되는 정도일지, 민주주의와 법치·인권이 존중되는 체제로의 근본적 변화가 될지,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더 큰 전환으로 이어질지도 여전히 알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는 어떤 사회도 억압이 극심한 상태로 지속될 수 없고, 독재는 반드시 몰락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저희가 세계 곳곳의 전환기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세 가지 교훈을 얻었죠. 첫째, 무엇이든 전환기로 들어선 후에 시작하려고 미루어두면 정작 기회가 와도 때를 놓치기 쉽다는 것이고요. 둘째, 진실 없이는 정의도, 화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전환기에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데에는 피해자 및 피해가족들의 목소리와 바람이 가장 중요시되고 최대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결론은 선제적으로 준비하면 미래의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반대로 준비가 미흡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원한과 보복, 갈등이 세대를 이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미리 준비할수록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봐요.
Q. 북한 내 인권유린 피해와 관련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A. 저희는 세계 곳곳의 사례들이 보여준, ‘진실 없이는 정의도, 화해도 불가능하다’는 교훈에 특히 주목했어요. 그래서 진실의 측면에서 북한 정권 수립 이후 70년 가까이 벌어져왔고, 계속될 수 있는 국가폭력, 정권범죄 성격의 인권범죄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하고 기록하는 작업에 초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보기술과 법과학을 활용한 인권과 정의의 옹호”를 활동기치로 삼고 북한 인권범죄 지도(MAP)를 작성하는 일을 시작했죠. “북한 반인도범죄 매핑” 프로젝트로 명명한 이 조사는 2015년 4월부터 시작하였는데,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는 인권유린 사망 및 실종자 집단매장지 등 반인도범죄 관련 위치들을 파악해 관련 정보를 기록하고 시각화된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구글어스 위성사진 등을 활용해 북한 각지를 떠나온 탈북민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자의적 구금과 약식처형, 고문, 납치, 실종 등 반인도범죄와 관련된 현장의 위치와 유관기관, 각종 시설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죠. 정보를 수집하는 것 외에도 북한, 중국 등지로부터의 국가적 해킹이나 정보 탈취, 변조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데이터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디지털매핑 작업에 필요한 기록분석시스템은 오픈소스 공간지리정보 소프트웨어들을 기반으로 갖추고, 외국과 국내의 전문가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성능을 개선하고 있는 상황이죠.
지난 2015년 4월부터 2년간 국내로 입국한 탈북민 375명을 심층인터뷰하여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집단매장 추정지와 시체소각장 등 47곳의 시신처리 장소와 공개 및 비공개 약식처형이 벌어진 300여 곳 정도를 파악하여 지난 7월 첫 보고서로 공개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현장증거 인멸 우려를 낮추기 위해 구체적인 위성좌표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각 도별로 묶어서 파악된 현황을 공개했어요. 조사 방법의 엄밀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번 보고서에는 조사기록 방법을 공개 가능한 범위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조사경과 보고서인 셈이고, 앞으로 계속 조사를 진행하면서 각 유형의 위치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게 되며 구체적인 정보들도 더 많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해요.
암매장 장소들은 대개 주거지역에서 떨어진 산비탈이나 산골짜기에 위치하거나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곳에 있었습니다. 또한 관리소 같은 통제된 지역이나 교화소 등 수감시설의 경우에는 시설 내 창고에 시체를 임시 보관하더라도 최종 매장이나 처리는 울타리 밖 인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파악되었고요. 1990년대에는 교수형이 종종 집행되다가 국제사회의 비판과 인권개선 압력이 고조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거의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저희 조사에서도 교수형 시기와 위치정보가 함께 확보된 총 30건 중에서 2005년 이후의 교수형은 1건이었고 집행된 해는 2012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은밀한 비밀처형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북한 당국자들이 국제사회의 인권비판과 감시를 의식하고 있으며 압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몇몇 증언자는 한 구덩이에 10~15명 정도의 시체가 집단 암매장된 곳들의 위치를 지목했습니다. 파악된 매장추정지로부터 1~4km 반경 이내에서 수십회 이상 살해가 자행된 현장들이 함께 지목되는 경우들도 더러 있었고요. 현재까지 파악된 매장지와 살해 장소 중 대부분은 함경북도에 위치하는데 이는 인터뷰한 탈북민 중 약 60%가 이 지역출신이라는 것과도 관계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집한 데이터만 놓고 보면 각 도별 인터뷰 참여자 수가 늘어날수록 이들이 지목하는 추정매장지나 시체처리 장소와 살해 장소들도 대체로 늘어나는 잠정적인 정비례 관계가 나타나고 있어요. 살해와 암매장이 몇몇 지방에서 편중되어 벌어졌던 것인지 지역별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요합니다.
Q. 나중에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우는데 도움될 만한 정보도 있는지?
A. 네. 각급 국가정보기관, 지역별 경찰기관, 군부대 등 인권유린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관이나 각급 행정기관 등 문서화된 형태의 기록이나 유용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만한 위치들도 꼼꼼히 표시하고 있어요. 보고서에서는 독자들께서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선별한 지도들로 예시했고요. 이러한 위치들을 미리 파악해두어야 하는 이유는 향후 북한의 인권범죄 가해자들에게 ‘포괄적 사면’이 주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중대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필요한 증거물들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이런 조사기록 데이터가 앞으로 어떻게 쓰이길 바라는지?
A. 향후 통일과정 등 북한의 전환기가 도래하면 국가 공식조사가 시작되거나 다국적조사단이 구성되어 집단매장지들을 찾는 현장조사를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그래서 현재 수집되고 있는 추정지 위치정보들이 신속한 위치확인과 현장보존, 효율적인 유해발굴에 중요한 길잡이가 되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유해들은 감식을 거쳐 사법적 증거물로 쓰입니다. 유전자정보(DNA) 매칭으로 피해가족들이 확인되며, 피해정도와 전체규모에 따라 금전적 배상 또는 비금전적·사회적 지원 계획, 추념사업과 역사교육 정책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요. 이러한 조사는 미래를 위한 첫 준비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Q. 조사에 참여하는 탈북민들의 기대감도 클 것 같은데?
A. 네. 그게 가장 기쁜 일입니다. 먼저 참여한 사람의 추천으로 찾아오시는 이들이 많고, 자발적으로 찾아와주시는 사람들도 있어 무척 감사해요. 저희의 조사 취지와 보안유지 약속, 그리고 역량을 믿고 참여해주시는 것이니 저희도 큰 힘을 얻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보고서에서는 매핑프로젝트의 경과뿐만 아니라 병행하여 진행하고 있는 탈북민 여론조사 결과의 일부도 소개했는데요. 설문조사로 향후 가해자들의 책임을 추궁할 재판소 형태 등 주요한 책임규명 메커니즘에 관한 탈북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능한 조치들 중에서 가해자 형사소추, 진실규명, 피해배상, 향후 북한지역에서의 암매장지 현장조사와 유해발굴 방향 등에 관한 문항들도 포함하여 조사하고 있고요.
Q. 향후 가해자들에 대한 처리 방식 등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는 것인지?
A. 네. 아직 북한 내에 살고 계신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수렴하기 어려우니 우리 사회로 온 탈북민들께 여쭤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인권유린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대해서는 252명의 응답자 중 약 95%의 긍정 응답으로 강하게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별, 북한에서의 폭력피해 경험, 남한 정착 후 거주기간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었어요. 다만 나이 측면에서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선호도가 대체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70대 이상에서는 책임규명을 선호하는 비율이 10~20대보다 14% 이상 높은 압도적 지지를 보였습니다.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지 묻는 질문에서는 처벌 성격의 조치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구하게 하는 회복적 조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반면 죄를 사면하거나 용서하는 조치들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낮았습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배상 필요성을 탈북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 251명 중 82%가 배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고요.
저희가 앞서 소개한 디지털 매핑 조사를 계속해나고 나중에 국제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매장추정지를 발굴해 유해를 찾는 일을 얼마나 지지할지 가늠해보기 위한 문항도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향후에 발굴하는 주요응답 결과로, 79%가 피해사망자 유해발굴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응답했어요. 유해발굴 지지 이유로는 “가해자 조사와 재판에 도움될 증거이기 때문에”, “진상을 밝히기 위해”, “유가족을 돕고 피해사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순으로 꼽았고요. 통계적으로 무작위 조사가 아니다보니 조사방법의 엄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해석도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고무적인 것은 북한에 전환기가 도래한다면 유해발굴과 경제기반시설 건설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응답 결과입니다. 80%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또는 “유해발굴이 먼저여야 한다”고 답해 이 제한된 조사에서는 개발보다 인권을 더 중요하는 선호를 보였습니다.
Q. 향후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인지?
A.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세운 저희의 목표는 국제적으로 공헌하는 인권조사기록 전문단체를 아시아, 특히 한국에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뿌리 내린 한반도에서는 다가올 북한의 전환기에 실질적으로 대비하고, 우리들의 경험과 성과가 다른 억압된 나라들의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도 국제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세계 곳곳의 전문가들과 기관들로부터 후원과 기술지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저희도 북한 못지않게 심각한 인권 문제와 싸우고 있는 다른 나라의 관련 기관들과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 의무이고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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