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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WHY? | 성지(聖地) 예루살렘에 전운이 감돈다! 2018년 1월호

글로벌포커스 WHY?

성지(聖地) 예루살렘에 전운이 감돈다!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7년 12월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수도 라말라의 웨스트뱅크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공식 수도 인정 발언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포스터를 훼손하며 반발하고 있다. ⓒ연합

2017년 12월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수도 라말라의 웨스트뱅크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공식 수도 인정 발언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포스터를 훼손하며 반발하고 있다. ⓒ연합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로는 ‘예루샬라임’이라고 부른다. ‘예루’는 지역을, ‘샬라임’은 평화를 말한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아랍어로는 ‘알 쿠드스’라고 하는데 ‘신성한 도시’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은 면적 125㎢, 인구 90만 명으로, 서울에 비해 넓이는 1/5, 인구는 1/10도 채 안 된다. 전체 인구 가운데 63%가 유대인이고 37%가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이다. 서예루살렘 주민은 40만 명, 동예루살렘은 50만 명으로 서예루살렘은 유대인이 다수이지만 동예루살렘은 아랍인이 6대4 비율로 유대인보다 많이 산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또 다시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자칫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이스라엘 수도는 예루살렘공식 인정

예루살렘이 ‘분쟁의 도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밸푸어 선언’에서 비롯됐다. 영국의 아서 밸푸어 외무부 장관은 1917년 11월 2일 유대인 부호 리오넬 윌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서한에서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의 집을 세울 것을 지지하며,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밸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 운동(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이 벌어지면서 반유대주의로 배척받던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몰려 들어왔다. 이들은 30년간에 걸쳐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했다. 양측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했던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에 떠넘겼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11월 29일 총회를 열고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유대인에게 주고 나머지 43%를 아랍 민족에게 배분하는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 181호를 통과시켰다. 다만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어느 쪽의 영토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국제체제’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의 국제도시라는 지위는 현재까지 국제법적으로 유일하게 공인돼왔다.

3천여 년간의 디아스포라(diaspora) 끝에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건국을 선포했다. 유대인들은 염원하던 국가를 세웠지만,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이 날이 ‘재앙의 날’(알 나크바)이었다. 이스라엘이 국가를 선포하자마자 팔레스타인 지역은 전쟁에 휩싸였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연합군을 구성해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서쪽을 차지했고, 요르단은 예루살렘 동쪽을 관할하게 됐다. 이스라엘 의회는 1950년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라고 공포했다. 이스라엘은 또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 강 서안을 점령했으며, 시리아로부터는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까지 빼앗았다.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는 국방부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주요 입법·사법·행정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이스라엘 의회는 1980년 7월 30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규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80년 8월 20일 이스라엘의 법률이 무효라는 결의안 478호를 통과시켰다. 당시 미국은 이 결의안에 기권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동안 이를 무시해왔다.

팔레스타인도 헌법상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1964년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결성했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끌었던 PLO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물론 서방 각국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등 무력 투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중동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자치정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PLO는 미국과 노르웨이의 중재로 지난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고 1994년 자치정부를 세웠다. 자치정부의 관할 지역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이고 헌법상 수도는 예루살렘, 행정 수도는 라말라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주권과 군대를 보유한 독립국가’는 아니다. 당초 이스라엘과 PLO는 5년간의 자치기간을 거쳐 1999년 5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포하기로 합의했지만, 그동안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해 현재까지 독립국이 창설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하고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국무부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결정은 지난 69년간 계속돼온 미국의 외교정책을 뒤집는 것이다. 미국은 1995년 제정된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따라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그동안 국익과 외교적인 이해관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예방을 위해 이를 보류하는 문서에 6개월마다 서명해왔다. 특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경우 자칫하면 중동 지역의 최대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셈이 될 것을 우려해왔다.

2개의 노림수 ()이란 연대와 국내정치 돌파구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 팔레스타인을 거세게 궁지로 몰아붙인 뒤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그동안 지지부진한 평화협정에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등 친미 아랍 국가들이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했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을 한데 묶어 반(反)이란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이자 친이스라엘 성향인 기독교 복음주의파를 비롯해 유대인 세력과 극우 세력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 확대로 탄핵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켜 국정운영 동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을 지닌 중간선거가 불과 11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다. 예루살렘이 있는 지역의 고대 지명은 가나안이다. 이곳에 살던 원주민인 가나안족은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다. B.C 2000년경 아브라함이 이끄는 히브리족(유대인)이 가나안에 정착했지만, 기근 때문에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로 이주했다. 히브리족은 B.C 1300년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나 다시 가나안으로 건너갔다. 이후 히브리족은 가나안족과 싸우며 영토를 넓히고, 북쪽에서 내려온 블레셋족(팔레스티나)의 위협에 맞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다윗 왕은 B.C 1004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다윗왕의 후계자인 솔로몬왕은 모세의 십계명을 보관하기 위해 성전을 지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B.C 73년부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솔로몬왕이 지은 예루살렘의 성전(제1성전)은 로마 군에 의해 파괴됐다. 헤롯왕이 제2성전을 지었지만 역시 부서지고 서쪽 벽면만 남아 있다. 이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데, 역시 유대교의 성지다.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및 갈릴리 등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묘교회’와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가 기독교 신자들이 순례하는 대표적인 성지다. 이후 이슬람 왕조가 638년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땅이 됐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제5대 칼리프인 압둘 말리크가 691년 통곡의 벽 위쪽 언덕에 ‘바위 돔 모스크’를 세웠다. 말리크의 아들이자 제6대 칼리프인 알 왈리드가 705년 바위 돔 모스크 옆에 ‘알 아크사 모스크’를 건설했다. 두 사원이 있는 자리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곳으로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을 여덟 차례나 보냈지만 1099년 제1차 원정만 승리했을 뿐 모두 실패로 끝났다. 예루살렘은 1517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손에 들어갔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해체됐고, 승전국 중 하나인 영국은 1917년 국제연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아 사실상 식민지로 삼았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영토, 민족, 종교의 측면에서 서로 배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 지역의 여론이 반미·반이스라엘로 기울면서 사우디의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미국과 협력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에 적극 개입, 이란에 밀렸던 역내 주도권을 회복하고 반이란 공동전선을 구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비아랍계인 이란과 터키가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사우디를 몰아붙이고 있다.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사우디와 물밑에서 합의한 결과”라면서 사우디를 비판했다. 이란은 또 하마스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하마스는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스라엘과 무력충돌을 빚어왔다. 그런가하면 세계 최대 이슬람 기구인 이슬람협력기구(OIC)는 12월 13일 정상회의를 열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라고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OIC는 이슬람을 국교로 한 국가 57개국이 모인 국제기구다. OIC 정상회의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주재했다.

격분하는 팔레스타인, 물 건너 간 ‘2개 국가 해법

게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논의해 온 중동 평화방안인 ‘2개 국가 해법’ 역시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2개 국가 해법이란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경계를 기초로 해서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건설해 이스라엘과 공존한다는 것이다. 2개 국가 해법은 오슬로 평화협정을 통해 도출된 방안이었다.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하고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 강 서안에서 정착촌 철수는커녕 오히려 확대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인정함으로써 국제도시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특히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제사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지역의 최대 골칫거리인 예루살렘 문제를 해결하려다 ‘좌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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