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미·북 기싸움 팽팽 … 국면전환 가능성은? 2018년 1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미·북 기싸움 팽팽 … 국면전환 가능성은?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참관하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
북한이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더 복잡해져 가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직후 발표한 정부 성명에서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선포하고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무기체계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이라고 주장했다.
화성-15형 미사일은 53분간 고도 4,475km까지 올라갔다가 950km를 비행했다. 이 미사일은 지난해 7월 4일 발사한 ICBM급 화성-14형의 고도 2,802㎞보다 1.6배 가량 높았다. 당시 이 미사일은 39분간 933㎞를 비행했다. 7월 28일 두 번째 발사한 화성-14형은 45분간 고도 3,700여 ㎞까지 올라갔다. 화성-15형은 2차 발사한 화성-14형보다 고도가 700여 ㎞나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을 정상각도로 발사했을 때 최소 9천 ㎞에서 최대 1만3천여 ㎞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핵탄두의 재진입 기술 보유 여부는 차치하고, 북한이 미국의 본토를 겨냥해 미사일을 날릴 기술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단순히 위협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임을 확인한 셈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 만장일치 채택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2월 22일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정유제품 공급량은 연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줄였고 원유 공급의 상한선으로 ‘연간 400만 배럴’을 명시했다. 또 ‘달러 벌이’로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송환하도록 했으며 ▲산업기계, 운송수단, 철강 등 각종 금속류의 대북 수출을 차단 ▲북한의 수출금지 품목을 식용품·농산품·기계류·전자기기·토석류·목재류·선박 등으로 확대 ▲기존 수산물 수출금지와 관련해 ‘조업권 거래금지’를 명문화 ▲‘해상 차단’ 강화 조치로서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입항 선박의 동결·억류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북한의 도발에 유엔 안보리의 제재 강화는 그동안 해온 도발과 제재라는 악순환 구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 발언은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12월 5일 중국을 거쳐 평양에 도착, 이용호 외무상과 박명국 외무성 부상 등 북한 고위 당국자들을 면담하고 북한과 유엔이 향후 다양한 급에서 내왕을 통한 의사소통을 정례화 할 것에 대하여 합의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정세 전환의 변곡점이 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기대 섞인 분석도 이어졌다. 대화의 조건에 대해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미국과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북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틸러슨 장관의 언급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것 아니냐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12월 1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북한은 먼저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도발 자제’와 ‘비핵화 의지’를 대북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사실상 그대로 내건 것으로, “북한과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과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기에다 미국과 북한이 12월 1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상반된 입장으로 정면 충돌하면서 기대감이 제기됐던 미·북 대화 조기성사 가능성이 한층 옅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회의에서 ‘조건 없는 대화’ 발언으로 미·북 대화를 향한 기대감을 촉발했던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했고, 북한 역시 핵보유국이라는 주장으로 맞받아치면서 대치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틸러슨 장관은 ‘비확산 및 북한’을 주제로 열린 이번 안보리 장관급 회의에서 “북한과의 대화가 이뤄지기 전에 위협적 행동의 지속적 중단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며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핵무기와 (관련) 기술의 불법적인 이전을 막을 절대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신문>도 12월 19일 “전제조건 있는 회담을 제기하든, 전제조건 없는 회담을 제기하든 미국이 노리는 것은 우리 국가의 핵 포기”라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협상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선택한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 공화국의 입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단기간 내 대화 국면 전환 어려워 … 한·중 역할 주목
미국과 북한의 이러한 입장 표명과 기싸움 등에 따라 조기에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대화를 하겠다는 생각인데다 지금의 분위기는 계속될 것이고 미국은 추가 제재 등으로 압박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북한도 이에 대응한 도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치킨게임이 최고조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정상회담에서 ‘전쟁 반대’ 등 한반도 관련 4대 원칙에 합의한 한국과 중국이 미·북 간 충돌을 막고, 협상을 중개하는 역할을 다방면에서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9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것은 국면 전환을 위한 ‘멍석’을 깐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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