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국제사회 인도지원 감소 … 약제 반입 어려움 겪어 2018년 1월호
기획 | 현장에서 본 북한, 대북제재 속 북한주민의 삶은?
국제사회 인도지원 감소 … 약제 반입 어려움 겪어
황나미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 상황에서 북한 보건의료 상황을 중심으로 실태를 파악해보자.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지난 6년 동안 북한 당국은 평양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의료시설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까지 국내외 대북지원 단체에 의해 개보수되고 현대화된 의료시설이 아닌 주체적으로 북한식 건물을 새로이 건립한 것이다. 군인전문 치료 병원인 대성산종합병원, 옥류아동병원, 그리고 류경안과종합병원 건립이 대표적이다.
또한 정성제약공장을 확충하여 수액제뿐만 아니라 심혈관 관련 약품 등을 생산하였고, 평양제약공장과 스위스가 투자하여 제약합영회사를 설립, 약제 품질관리기준(GMP)을 마련하였다. 병원 간 연계시스템과 원거리 의료봉사체계를 도입하여 화상전송 진료 등 의료 서비스 전산화와 의료 인력에 대한 진료 교육에도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은 평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전국적 측면에서 일반 주민들의 접근성은 낮다. 더욱이 최근 의료 장비 및 기기는 물론 원료 의약품의 부족으로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함에 따라 일반 주민들은 필요한 약을 여전히 장마당이나 약매대를 통해 구매하고 의사에게 일정금액을 뇌물성으로 지불하여 치료 받고 있다.
주민들은 대개 장사로 벌었거나 농작물을 팔아 만든 돈으로 약값과 치료비를 마련하지만 일반적으로 식량을 구입하는 데 최우선으로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민속요법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자강도, 함경남북도, 양강도 등의 지역은 만성 영양결핍 아동의 비율이 3명 중 1명으로 취약한 수준인데, 지난 2017년 극심한 가뭄으로 옥수수와 쌀의 수확량이 부족하여 생계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면 경제력이 있는 가정에서는 최근 응급 시에 대비하여 1회용 주사기(500~1천원), 체온계(5천원), 혈압계(중국산 13만200원, 북한산 6만5천원) 등을 구입하는 추세다.
북한 주민 3대 비전염성 질환 사망률, 남한의 3~5배
주거 환경의 경우 전국적으로 85%의 가정에 상수도가 구비되어 있지만 상수도관의 노후화와 정수 시스템의 미비로 식수는 세균과 배설물 등의 오염원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마저 전력난으로 인해 대도시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식수 공급 시간이 제한되어 펌프식 우물을 파거나 강에서 물을 길어 식수를 해결하기도 한다. 오염된 식수와 비위생적 환경으로 인해 몇 달 전 양강도에서는 장티푸스가 발생했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분을 이용한 농작물 재배가 많아 기생충 감염에도 취약하다. 기생충 감염률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70%로 추정하고 있다. 구충제는 장마당에서 한 알 가격이 쌀 500g에 해당되는 가격으로 공장 노동자의 한 달 월급 수준이어서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구충제를 복용하여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인분을 사용한 채소와 민물고기를 섭취하기 때문에 다시 감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주된 사망 원인은 뇌졸중, 폐질환, 심혈관 질환이다. 이들 3대 비전염성 질환은 전체 사망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연령 표준화를 거쳐 남한과 비교할 경우 이러한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는 확률이 우리보다 3∼5배 높다. 사망에 이르지는 않으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건강 부담이 되는 문제는 요통 및 신경통, 눈 및 귀 등 감각기계 질환, 피부질환, 철결핍성 빈혈 등이다. 북한 가임기 여성의 빈혈 유병률은 31.2%로 조사된 바 있다.
국제사회가 진단한 북한과 협력 전략 또는 우선순위 보건 문제를 살펴보면 현재의 북한 보건의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유엔은 2017∼2021년까지 ‘식량 및 영양 안정성’을 북한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까지 ‘비전염성 질환 예방 및 관리’를 최우선 전략으로 제시하였고, 다음으로는 ‘모성 및 영유아의 영양 등 위험요소 감소를 통한 건강관리’, ‘전염성 질환 관리’ 순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 주민의 3대 사망 원인이 비전염성 질환이어서 이들 질환관리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계층이 북한 지역 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영유아기의 영양결핍은 장기적으로 신체장기 기능에 영향을 미쳐 성인기가 되면 만성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영유아기 영양공급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전염성 질환 중에서는 북한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와는 별도로 결핵에 대한 의료공급 체계가 구축되어 있어 북한의 핵심 보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결핵으로 인한 국가 부담이 큰 국가에 속해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WHO, 글로벌 펀드(Global Fund), 민간단체 등에서 지속적인 결핵 지원 사업을 전개하였음에도 2010년 이후 결핵 발생률이 증가하였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의심 환자가 확진됨에 따라 진단자 수가 증가하였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다행히 2016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결핵 발생률이 513명으로 전년도인 561명보다 감소하였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약 15%가 다제내성 결핵으로 판명되어 WHO는 북한의 치료를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환자 수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모성 및 아동의 사망이나 취약한 건강·영양 상태의 원인으로 부적절한 음식 섭취와 비위생적인 환경을 지적하였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여전히 영양결핍으로 설사증 등 예방 가능한 요인으로 인한 영유아 사망이 초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의료 시장화되며 경제력 따른 의료 소외계층 나타나
북한에서 무상 식량배급이 축소되고 무상 치료제에서 보건의료 서비스가 시장화되면서 경제력에 따른 영양결핍이나 의료 소외계층이 양산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특히 곡식작물 재배에 부적절한 북한 동북부 산간 지역과 안전한 식수가 확보되지 못한 오벽지 등이 문제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의 임산부와 영유아, 결핵환자, 노인 등은 핵심 인도적 지원 계층이 된다.
올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감소되어 보건의료 재원 역시 부족한 상태다. 2017년 WHO는 결핵 관리를 위한 총 필요 재원 중 북한 당국이 20%를 부담하였고 국제기구가 30%를 충당하여 나머지 재원이 부족한 상태라고 제시하였다. 최근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약제 반입 등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은 말 그대로 정치나 이념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고통 받는 자에 대해 오직 필요에 기초한 인간애에 바탕을 둬야 한다. 그것이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것으로 그 어떤 영역보다도 우위적 가치에 있다. 대북제재 국면이 장기화되고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될 경우, 건강이 취약한 계층의 삶은 위협 받게 될 것이고, 장기간에 걸쳐 문제가 나타나 후일 한반도의 커다란 사회적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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