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 – Movie | 탈출한 그녀들이 서로에게 기댔다 2018년 2월호
Uni – Movie | <련희와 연희>
탈출한 그녀들이 서로에게 기댔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영화 〈강철비>는 지난 1월에 연재했지만 아직 극장에서 꾸준히 상영 중이다. 제법 블록버스터의 품격을 갖춘 영화 <강철비>는 개봉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흥행의 성공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세간의 관심을 받은 영화 <강철비>와 같은 날 한편에서는 조용히 상영된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영화 <련희와 연희>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의 ‘련희’와 남한의 ‘연희’가 주인공인 영화다. 북한은 아직도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리분희’, ‘련방’ 등 우리와 다른 표기법을 사용한다. 이렇듯 영화 제목 ‘련희와 연희’는 남북이 한자로는 같은 글자를 쓰지만 한글 표기법이나 발음은 각각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남북의 분단된 현실을 상징하도록 지어졌다.
영화 <련희와 연희>는 2016년 통일부에서 주최한 ‘평화와 통일 영화 제작지원 시나리오 공모전’ 중편 부문 대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작가 출신 최종구·손병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탈북민 련희 역에는 연극배우 출신 이상희가 열연했다. 특히 이 영화가 기존 분단영화와 비교하여 특별한 부분은 여성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페미니스트 영화로 분류하기도 한다.
줄거리
영화는 남한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탈북민 련희(이상희 분)와 임신한 가출 소녀 연희(윤은지 분)의 만남, 그리고 서로가 공감하는 삶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탈북민 련희는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던 중 급류에 휩쓸린 자신의 딸을 잃고 만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탈북하는 이유 중 가장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자식 문제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난 이유였던 어린 딸을 상실한 련희의 일상은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항상 맥이 풀린 눈으로 꾸역꾸역 살아가는 1인 가구의 가장으로 그려진다.
반면 연희는 폭력 가정으로부터 탈출한 청소년이다. 그동안의 생활이 어떠했을지는 약간 불러온 연희의 배가 말해준다. 연희는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가정폭력 희생자이자 청소년 미혼모다. 공원에서 불량배들과의 몸싸움은 험난하게 살아온 연희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는 두 사람이 정식으로 만나게 되는 장소는 련희가 일하는 편의점이다. 편의점 심야알바로 일하고 있는 련희 앞에 나타난 연희. 연희의 눈은 카운터 옆에 놓인 바구니에 꽂혀있다.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용으로 내놓은 김밥들.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동작으로 김밥을 몰래 집어넣었으나 CCTV를 피할 수는 없었다.
편의점에서의 악연을 시작으로 련희와 연희는 동거를 시작한다. 이 영화의 카피 문구인 ‘조국에서 탈출한 련희’와 ‘집에서 탈출한 연희’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여성해방’ 정신을 함축해 놓은 듯하다. 17세의 가출 소녀인 연희와 어린 딸의 죽음을 뒤로 한 채 홀로 남한으로 넘어와 살고 있는 련희의 가족관과 인생관은 180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가 있는 련희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를 사생아를 낳아서 기르겠다는 연희. 하지만 아이를 잃고 희망 없는 삶을 영위해 가는 련희와 깜깜한 현실에서 발버둥 치는 연희는 다름과 차이를 통해 오히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감상포인트
영화 〈련희와 연희〉는 독립영화다. 저예산 영화다보니 단순히 보는 재미보다는 영화에 담긴 독특한 시각에 주목해야 한다. 이 영화는 기존 분단영화에서의 ‘탈북민’에 대한 통속적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탈북민이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수동적이고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또 다른 사람에게 기댈 언덕이 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아버지 조국’의 그늘을 벗어나 남한 사회에 정착한 련희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서 사회 주변부를 배회하는 연희가 만나 대안적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탈북민 문제와 결손가정 청소년 문제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상처를 봉합한다는 시각은 매우 참신하다.
다만, 영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에 비해 흥행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이 영화는 통일부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면서 개봉에 앞서 TV 영화 프로그램과 온라인 언론시사회, 통일부 Uni TV 인터뷰 등 활발한 홍보가 진행되었으나 저예산 독립영화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물론 주연배우들의 연기와 참신한 소재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연출이 엉성한 편이다. 작가 출신 초보 감독의 한계라고 이해하고 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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