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인터뷰 | “분단사회의 삶 속에 흐르는 통일을 묻고 싶었죠” 2018년 2월호
통통인터뷰 | 전소록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분단사회의 삶 속에 흐르는 통일을 묻고 싶었죠”
조두림 / 본지기자
Q. 통일부와 함께 ‘2017 통일테마전 제1전시 <경계 155_BORDER 155>’를 기획했는데, 통일 문제와 관련한 전시회 기획은 이번이 처음인지?
A. 통일 전시회 기획은 <경계 155>가 처음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통일전시회 기획전에 통일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이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N포 세대’라는 말처럼 우리 세대에 닥친 문제가 사실은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문제가 우선적 고민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저 또한 한창 경력에 집중하는 나이기 때문에 그런 현실의 문제들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었죠.
그리고 지금의 이 상황이 우리가 직접 분단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바로 그 이후 세대도 아니잖아요. 이미 분단된 상황에서 태어나서 자라왔기 때문에 어쩌면 분단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요. 그래서 통일 문제 자체가 분단을 실제로 겪은 세대나 가정사로 인해서 연관이 있는 분들 이외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주제가 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통일이 나에게 이로운 점은 무엇이 있겠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통일비용’은 사실 개개인에게 다 돌아오는 거잖아요. 그러면 또 자연스럽게 경제적 격차가 심한 국가와 다시 ‘하나 됨’을 이룬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통일 문제를 가지고 대화해보면 작가들을 비롯한 우리 세대들이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통일이 국가적인 문제, 정말 큰 판이 바뀌는 건데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그렇게 크게 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남북통일에 대해 생각해볼 때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건 ‘문화적 문제’였던 것 같아요. 너무 다른 문화 속에서 70여 년 동안 다르게 살아온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과연 얼마나 조화롭게 융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었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부담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도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주어진 과제로써 전시를 기획하면서 준비 단계에서부터 통일과 관련해 여러 전문가와 작가들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하고, 배우고, 알아가면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이 큽니다.
또한 전시를 준비하던 시점인 지난해 7월 이후 북핵과 미사일로 인한 긴장 단계에서부터 평창동계올림픽의 남북관계 해빙모드까지, 지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통일’과 ‘분단’이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 면에서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 사실은 통일이라는 것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구나. 그리고 부정적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요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북한 국적자 추가제재 등 국제정세도 그렇고, 국제사회에서 한반도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어쩌면 지금 이 시점이 통일 문제에 대해 없던 관심도 생길 수밖에 없는 시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Q. <경계 155> 전시의 기획의도와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A. 이번 전시의 경우 주제가 ‘통일’이잖아요. 그래서 통일에 대한 다양한 세대의 생각을 같이 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참여 작가 연령대 구성을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 출생 정도까지 포괄적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연배가 조금 높은 분들 같은 경우에는 통일은 선택이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반면에, 청년 세대의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 본인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별로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또 ‘과연 북한이라는 나라가 우리가 합쳐야 하는 대상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작가도 있었고요. 이렇게 통일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의 차이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 기획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최대한 이해 가능한 전시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통일’이 개인에게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이해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대신 전시의 관람 과정을 ‘시작-진행-결론’으로 봤을 때 전시의 모든 진행과정에 있어서 ‘기획자로서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뭔가 하나라도 공감하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주제이며 구성이라는 생각을 했던 게 이번 통일 전시회가 다른 전시를 기획할 때와 다른 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타 전시회의 경우는 굉장히 어려운 현대미술 작업도 많습니다. 그래서 텍스트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사실은 보통의 관람객들이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작업들이 많은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가급적 배제했습니다.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통일’이라는 주제를 말하면서 작업이 너무 어렵거나 전달이 안 되는 것보다는 일반적인 관람객들이 봤을 때 이해 가능한 작업, 그리고 작품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고, 조금 더 발전해서는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나아가 어떤 지점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을 하고 ‘아! 나도 저랬지’ 아니면 ‘우리 누구도 저랬지’라면서 감정과 체험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들과 전시를 만들어 보자고 작가들과 협의하면서 진행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개인의 서사’를 주제로 한 작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시를 관람할 때 개인의 서사를 보여주는 작업이 관람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사실 개인의 서사가 결코 개인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 공동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렇게 개인의 서사가 곧 공동의 서사가 될 수도 있고, 그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겪은 스토리에 관람객들도 빠져들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서 김량 작가의 <그리움으로 돌아가자>는 ‘실향민 1세대’가 70여 년 동안 돌아가지 못한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접사 촬영의 이미지, 보이스 오버 구술과 수묵 애니메이션으로 구상한 작품인데요.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도 길었고, 관심도 많이 받았습니다.
Q. 다른 전시회 기획과 비교해서 통일 전시회가 갖는 특징이나 의미가 있다면?
A. 주제가 가지는 포괄성과 보편성이 다른 전시와 비교해 굉장히 달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이라는 주제는 사실 전 국민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다같이 공유할 수 있었던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통일을 주제로 한 전시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희소성 측면에서도 다른 특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통일을 주제로 하여 몇몇 작가들은 굉장히 깊게 천착하며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일반 작가들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다루는 주제는 아니거든요. ‘전시 주제로 통일을 한다?’면서 의아해하는 작가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의 경우 완성 작품을 대여하거나 섭외하는 것보다는 거의 다 제작한 작업들로 구성됐습니다.
또 처음에는 전시기획자로서 어떤 작가들과 무슨 작업을 할 것인지에 대해 그 과정이 조금은 막연하고 생소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지점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볼 것이 매우 많았던 주제였고, 통일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나 반대하던 작가들도 제작 과정을 통해 깊이 있게 고민하면서 전체적으로 전시된 작품의 의미가 깊어짐을 느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A.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은 양지희 선생님과 다음학교 학생들이 협업한 <나의 살던 고향은>입니다.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그린 다수의 그림으로 구성됐는데, 인터뷰는 두 가지 유형으로 진행됐습니다. 첫 번째는 탈북한 부모가 한국에 정착한 이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이 자신과는 다른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겪은 부모님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고, 두 번째는 본인이 직접 탈북해서 한국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청소년들이 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 내용을 남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작품은 다수의 그림을 하나의 큰 지도 형태로 연결해 벽에 이어 붙인 그림인데요. 작업 간의 경계도 다 허물고 하나의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인지 관람객들로부터 주목을 많이 받았죠.
Q. 전시를 기획하고 마무리하면서 어떤 소회가 들었는지?
A. 처음 전시 준비를 시작할 때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말하면 매우 냉담한 반응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전시를 열어보니 통일에 대해 그렇게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이지만은 않더라고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전시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의외로 만족도가 굉장히 높게 나왔어요. 응답 내용을 살펴보니 ‘통일’이라는 주제가 갖는 힘이 있었습니다. 만족, 불만족을 체크하고 만족한 경우 “어떤 부분이 만족스러우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왔던 응답이 전시회의 주제였고, 그 다음이 전시된 작품이었거든요.
전시기획자로서 사실 ‘통일’이 상당히 예민한 주제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접근 자체가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전문가, 작가들과 회의를 거듭하고 개인적으로 메인 테마를 뽑다 보니 사실은 통일이라는 것이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명확한 주제더라고요. “통일을 원하니?”라고 물었을 때는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평화를 원하니?”라고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달라질 수 있겠죠. 평화라고 하면 인류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의 폭이 넓어지잖아요. 통일은 곧 평화의 문제였고, 그렇게 된다면 통일은 곧 인간으로서 누구나 공유 가능한 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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