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 ‘미국우선주의’ 로드맵은? 2018년 2월호
집중분석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 ‘미국우선주의’ 로드맵은?
정구연 /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해 12월 18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이후 첫 번째로 간행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를 공개했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 재임 당시 의회에서 통과된 ‘골드워터-니콜스 국방재조직법(Goldwarter-Nichols Department of Defense Reorganization Act)’에 의거, 미국의 대통령은 정기적으로 의회에 국가안보전략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미국의 광범위한 안보 이익과 목표를 검토하고, 미국의 국력을 구성하는 정치·경제·군사적 요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제시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논의한다. 이는 미국 의회로 하여금 해당 국가전략과 예산과의 조정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관련 부처 간 전략 검토 및 조정을 용이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해당 행정부의 전략적 비전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자원이 존재하고 또 양립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 가치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그간의 관여정책은 실패”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여전히 각계각층의 우려와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선거기간에서부터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쏟아냈던 레토릭과 트위터를 통해 충동적으로 쏟아낸 사적 의견이 이번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본 보고서가 향후 미국의 대외정책을 예측하는 데 있어 얼마나 신뢰할만한 가이드라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오랜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했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대외정책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기반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를 제시하고 있다. 이념에 천착하지 않고 상당히 현실주의적이며 실용적인 동시에 축소적인 미국의 국가이익을 서술함으로써 이전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국가안보전략과의 차별성을 노정하고 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이끄는 미국은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며,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이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인식하는 국제사회는 홉스주의적이며, 이러한 세계관은 불가피하게 현실정치(realpolitik)에 기반한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이어진다.
우선 미국의 리더십이 부재하다면 국제사회는 ‘악한 행위자’(malign actor)에 의해 지배당할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미국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본 보고서는 가정하고 있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 보고서는 이전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강조해왔던 국제 제도와 글로벌 무역을 통한 경쟁자들에 대한 관여(engagement)가 실패했음을 강조한다. 결국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국은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와 미국 우선주의의 대외정책을 주장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미국은 국제사회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개입주의적(vindicator) 정책을 개진하기 보다는 예시주의적 (examplarist)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즉 미국은 여전히 자유와 기회의 땅으로 남아있을 테지만, 미국이 보유한 자유와 번영의 혜택을 억압적 정권과 인권 유린 지도자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없다고 본 보고서는 명시하고 있다. 요컨대 트럼프 행정부가 상정하는 미국의 리더십은 자유국제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국제사회 권력 분포 속에서 미국이 구조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보유한 구조적 우위란 정치·경제·군사·과학 기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존재하며, 이러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네 개의 기둥(four pillars), 즉 네 가지 핵심이익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우위 유지 위해 달성해야 할 네 가지 핵심이익?
첫 번째 기둥은 미국인 보호와 미국 대륙 본토 방어, 그리고 미국적 생활방식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국가이익과 이에 대한 위협이 존재하는 공간이 미국 본토에 국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상당히 축소적 대외정책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상정하는 국가안보 위협은 미국 본토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공격, 지하드 테러리스트 공격, 사이버 공격, 밀입국자 및 불법이민을 막기 위한 미국 국경통제 등에 국한되어 있다.
동시에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은 극히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나타나는데, 예컨대 미사일방어 체제, 비확산 조치 및 대량살상무기 공격에 대응하는 조기경보 체제 등의 조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오바마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민주주의 제도 확산과 국제 제도를 통한 관여 조치에도 무게를 두었던 것과 차이점을 보인다. 요컨대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미국 본토 방어에 중심을 둔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의 대외 안보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추후 서술될 네 번째 기둥인 ‘힘을 통한 평화’와 맞닿아 있다.
두 번째 기둥은 미국의 번영을 제고하는 것이다. 본 보고서는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야 말로 미국의 국가안보라고 정의내리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기간 동안 강조했던 미국의 경기쇠퇴에 대한 비판을 국가안보와 결부시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무역적자와 해외로의 공장 이전 등으로 인해 미국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첫 번째 기둥과 두 번째 기둥은 근본적으로 미국이 국제사회에 투사할 수 있는 힘은 미국 내 번영에 근거한다는 점을 가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한편 이와 같이 국가 간 무역을 ‘경쟁의 장’으로 인식하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와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오바마 행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사례와 같이 국가들에 대한 관여, 특히 이들을 미국이 구축해온 세계경제 체제로 편입시켜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responsible stakeholder)로 역할하도록 관여하는 측면에서의 무역 정책이 의미를 가졌다는 점이다.
세 번째 기둥은 미국의 ‘힘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재래식 군사력, 핵 능력과 사이버 및 우주안보에 있어 미국의 전통적 군사력을 증강시키고자 하는데, 이는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현상변경 국가들이 기존 오바마 대통령의 관여정책으로는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로 변화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면서 각자의 국력을 제고해왔다는 평가에 근거한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 물리적 강압과 구조적 우위를 유지해야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러시아 등 현상변경 국가들이자 동시에 경쟁국들에 대해 ‘전쟁’ 혹은 ‘갈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경쟁’(competition)이라는 용어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본 보고서는 미국 내 경쟁적 이익(competitive interests), 즉 군사력 혁신을 이뤄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방력 제고가 미국 내 경제 및 기술발전과 연동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방비 제고를 천명한 바 있지만, 법인세 인하 등 다양한 세금감면안으로 인해 이미 세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또한 외교 및 국정기술(statecraft) 측면에 있어 ‘경쟁적 외교’(competitive diplomacy)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으나, 주지하다시피 국무부 예산이 이미 대폭 삭감된 가운데 이것이 실현가능한 목표인지는 미지수다.
마지막 기둥은 미국의 국제사회 영향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대한 관여를 지속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미국의 관여정책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으며, 미국의 관여정책은 궁극적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궁극적으로 유엔 분담금 지급 거부, 유네스코 탈퇴 등 다자기구에 대한 기여를 축소함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약화되고 있다는 현실과 지극히 배치된다.
세부실행과 예산확보 여부, 보고서 신뢰도 좌우할 것
요컨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그것과 단절을 추구하고 동시에 축소지향적 대외정책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모순점을 노정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향후 본 전략의 신뢰도를 좌우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이제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해왔던 미국우선주의 대외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특성상 세세한 전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주장하는 네 개의 기둥이 과연 어떻게 연결되어 ‘미국의 우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편 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한반도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선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역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이익을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북한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정의하며 미국의 안보이익에 커다란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써 ‘힘을 통한 평화’ 즉 기존의 대북정책인
‘최대압박과 관여’가 지속될 수 있는 정책적 맥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경제안보를 주장함으로써 한국과의 무역마찰 역시 당분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거래주의적 특성으로 인해 국가안보전략 상의 불확실성은 잔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이번 보고서를 통해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살펴보고 국제적 맥락에서 한반도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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