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평창동계올림픽 이후가 문제다 2018년 2월호
시론
평창동계올림픽 이후가 문제다
김천식 / 前 통일부 차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다. 더하여 북한은 예술단과 응원단을 보낸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가 화해의 국면으로 전환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일이 북한의 비핵화로 연결된다면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대로 평창올림픽에서의 화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이번 일들은 허망한 것이 될 것이다. 한반도를 얼음장처럼 냉동시키고 남북 간 화해를 식혀버린 것은 다름 아닌 북핵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서 본질적 변화가 없는 한 좋은 의도에서 추진한 일이라도 빛을 잃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협조하는 북한을 보는 시선이 환호와 싸늘함으로 병존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핵의 단계적 해결방안, 결과적으로 실패해
잔치가 끝난 뒤 여전히 북핵문제라는 엄중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와 국제사회는 북핵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는 그 노력을 30년 가까이 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진행된 국제적 냉전종식의 흐름 속에서 남북한도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고 세계청소년축구대회와 세계탁구대회에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기도 했다.
남북은 1991년 12월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그 당시의 화해국면에서도 핵심적인 사안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었다. 그래서 남북한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하고 핵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로 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매우 훌륭한 합의였다. 남북한이 이를 잘 이행했다면 한반도는 완전한 비핵화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경제난을 겪지 않고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주민들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며, 남북관계는 해빙되어 지금쯤 통일된 상태에 거의 근접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완벽하게 위반하고 핵개발에 매진했다. 한반도비핵화선언은 남북한이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배비·사용 등을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북한은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 시설을 가동하였으며, 여섯 차례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히고 있다. 2018년 들어와 북한은 핵무기를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핵문제는 비확산과 관련된 국제문제다. 강대국들은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은 1994년 10월 북한과 제네바기본합의를 체결했으나 이는 북한의 과거 핵개발 활동을 규명하지 못한 미봉적인 핵동결 합의였다. 그리고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핵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 이 합의는 파기됐다.
미국과 중국은 2005년 9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통해 9·19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합의는 동결과 검증에 대한 상호 의견불일치 때문에 중단됐다. 그 외에도 2·13합의, 10·3합의, 2·29합의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됐으나 모두 중도에서 파탄됐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북한의 핵위협 앞에 그대로 노출됐고, 한민족 전체는 절멸의 핵전쟁 위기에 처해 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그동안의 해법이 잘못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세 차례에 걸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는 단계적 해결방안이었다. 쉬운 것부터 접근하여 핵심적인 사항은 가장 나중에 풀어나간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단계적 해법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사자 간 신뢰가 없었고, 북한이 핵포기 의지 없이 협상했기 때문이다. 당사자 간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첫 단계의 조치에서조차 불신이 증폭되어 성과를 보지 못하고 파탄됐다. 마지막 단계로 설정한 핵폐기와 관계정상화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북한의 강력한 군사력을 경제적 유인으로 저지하려고 한 것도 실책이었다. 지금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에 시도했던 단계적 접근방안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실패한 방법은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게 되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단계적 접근을 추구했던 과거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되지 않았을 때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켜 놓고 핵시설을 단계적으로 폐기함으로써 핵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핵무기가 이미 완성단계에 있다. 북한은 과거 비핵화가 목표라고 했는데 이제는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행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핵화 협상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강대국들은 북한을 비핵화로 견인할 의무와 힘이 있다. 강대국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핵비확산 체제를 포기해야 한다. 이 나라들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오도록 실효적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도록 하고, 비핵화 대화에서는 문제의 핵심을 곧바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북핵동결과 쌍중단, 비핵화와 직계되지 않는 한 위험해
우리 정부는 이러한 방식으로 관계국들과 협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도 단계적 해법을 추구하는 것은 현존하고 급박한 위협을 그대로 두고 주변적인 것부터 다루는 잘못된 협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핵동결이나 쌍중단 방안은 비핵화와 곧바로 연계되지 않는 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방안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북핵의 동결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의 핵위협에 노출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핵위협이 상존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하고 지지받을 수 없다.
북한도 시급히 비핵화하는 것이 좋다. 북한은 30년 동안 핵을 개발하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외부로부터의 안보위협은 더 커졌다. 이러한 어려움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과거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비핵화가 목표라고 했으며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체결했다. 김정일 역시 비핵화가 ‘유훈’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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