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커튼콜 | 갇힌 자와 감시하는 자 2018년 4월호
통일 커튼콜 | 연극 <수(獸)>
갇힌 자와 감시하는 자
조두림 / 본지기자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북한 수용소의 인권상황을 매스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고된 노동과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 위생상태 불량 등 당사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경험담을 통해서다. 북한 수용소의 인권상황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국제사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 차원의 개입 전략을 추진했다. 2003년에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를 열고, 2005년부터는 제재 강화 차원에서 유엔총회에서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속에서 그동안 정치범수용소와 노동교화소의 존재 자체를 철저하게 부인해온 북한은 지난 2014년 유엔 인권설명회에서 “정치범수용소는 없고 노동교화소는 있다”며 “노동교화소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장소가 아니라 자기 잘못을 되돌아보고 정신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각각의 죄목으로 수감 … 이유는?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극장 ‘드림시어터’에서 북한 수용소의 인권을 다룬 연극 <수(獸)>가 공연되었다. ‘연극’을 통한 북한의 수용소 이야기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아오지 탄전’에 수용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용소 내 삶을 보여준다. 극단 희래단은 “극한 상황에 처한 모습을 그려냈다”면서 “실제로 9년 8개월 동안 정치범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인사의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극에서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죄목’으로 관리소에 들어온다. 모두 반체제, 반혁명분자들이라는 죄목을 쓰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약혼녀의 도강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쓴 남순철, 북한에서는 불순 사상인 기독교에 심취한 ‘예수쟁이’ 이순이, 재일동포로 어릴 적 무제한 형기로 복역해 45세까지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장덕분, 우연히 듣게 된 남조선 가요 한가락을 무의식 중에 흥얼거렸다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었다는 죄목으로 수용된 농업대학 학생 라윤권, 그리고 수감 이유를 밝히지 않을 정도로 현실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이 수용소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남순철과 이순이를 애정관계로 모함해 수용소에 죽음을 몰고 온 심석까지 그들은 각자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간신히 죽음은 면했을지라도 그들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는 수용소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굶주림은 당연한 것이고, 화장실을 가는 시간마저 정해져 있으며, 관리관의 감정이 타박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관리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케이지 ‘독방’에서 하루를 버텨야 하고 조롱과 멸시로 시작한 정신적 학대와 육체적 학대, 특히 여성은 성 착취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러는 동안 갇힌 자나 감시하는 자 모두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들이 수용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체제와 수령에 대한 충성으로 정신이 무장되고, 지속적인 정신적, 육체적 ‘사상검토’에서 ‘교화’가 잘 되었는지 확인이 되었을 경우이지만 기약은 없다. 날마다 감당해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당에서 내려온 지침인 혁명과업 수행을 위한 생산 활동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혁명을 위해 징벌 노동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 인민을 위한 생산 활동에 힘쓰는 것, 당으로부터 받은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 바쳐 전투에 임하겠다는 ‘탄전 수감자 생활 준칙’을 잘 지키는 것만이 살 길이다.
고조되는 갈등은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연극은 막바지에 관리관의 성 착취로 목숨을 잃은 이분이 사건으로 갈등이 고조된다. 남순철은 결국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고, 담당 관리관 3명을 비롯해 거짓 고발로 죽음을 몰고 온 심석을 총살한다. 이를 발견한 고위 관계자는 남순철을 사살하며 극은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연극 <수(獸)>를 연출한 희래단의 황성은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수용소에서 지배당하는 자는 짐승 취급을 받고 지배하는 자는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한다. 연극 무대를 통해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알리고 싶었다”라며 “연극을 보수·진보라는 편향된 이념 잣대가 아닌 ‘북한 인권’이라는 틀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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