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 – Movie | 전쟁이 비껴간 마을에서 평화를 묻다 2018년 4월호
Uni – Movie | <웰컴 투 동막골>
전쟁이 비껴간 마을에서 평화를 묻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만나 전쟁이라는 거시적 ‘폭력’이 이제껏 ‘평화’가 지배하던 동막골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변형되는가를 그린 영화다. 영화가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얼핏 관객 동원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 코믹영화’라고 불릴 만큼 영화를 코믹하게 묘사해서였을까? 2005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영화관 문턱을 낮추며 8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전쟁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전쟁의 실체를 너무 왜곡하여 전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한국 사회에 깊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누구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류탄이 터지면서 옥수수 팝콘이 사방으로 튀는 장면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매김했다. 그 대목은 비단 영상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이라는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에 대한 정보를 더한다. ‘수류탄’과 ‘팝콘’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 무거움과 가벼움의 절묘한 조화.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갖는 독보적 매력이다.
줄거리
1950년 11월,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한창이지만 지리적으로 외진 산골마을인 동막골은 전쟁을 모르는 곳으로 남아있다. 고립일 수도 있지만 전쟁의 참혹함에서 비껴나갔다는 점에서 그곳에는 여전히 ‘평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전투기 한 대가 마을에 추락하면서 동막골은 예기치 않게 한국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인민군 일행과 한국군 일행이 동막골에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전개된다.
“니들 친구나?” 여일(강혜정 분)이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던 군인들에게 묻는 이 질문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묘한 여운을 남기는 멘트다.
말이 씨가 되듯 전쟁의 시름을 잊고 군인들은 군복을 벗는다. 대신 농부복으로 갈아입고 구기운동을 즐기는 모습이나 울력(함께 일함)을 하는 것 등은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전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있는 동막골만의 평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속적으로 동막골 마을의 ‘평화’를 맛본 군인들은 결정적 순간에 싸움의 대상을 바꾼다. 서로를 겨냥하던 싸움에서 ‘평화’를 공격하는 대상을 향해 싸우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미군기의 추락 원인이 동막골에 있다는 정보에 따라 미군의 재폭격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어제의 적들은 ‘친구’로 합심하여 폭격을 막아내고 영화는 하이라이트를 맞이한다.
여러 명의 희생으로 마을은 폭격의 참화로부터 비껴나게 되지만 이내 마을에는 전쟁의 피비린내가 스며들면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공포감이 감돈다. ‘평화’가 지배하는 마을 ‘동막골’이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망도 ‘평화’를 맛보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동막골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죽은 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감상포인트
‘평화’의 동막골이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만큼 이 영화는 반전평화주의나 나아가 반미, 친북 등으로 포장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 읽기를 마친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는 비교적 공평하게 평화라는 요소와 더불어 북한 체제에 대한 은유적 비판도 드러낸다. 예를 들면,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 마을 노인에게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휘어잡는 영도력의 비밀을 묻는 대목에서다. 이 장면에서 노인의 단순하지만 뼈 있는 대답이 걸작이다. “뭐를 좀 마이 맥여야지…”
또한 영화는 언뜻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크리스마스 휴전을 떠올리게 한다. 1914년 12월 24일 서부전선, 독일군과 영국군은 몇 차례의 격전을 치른 상태에서 자기 진영의 참호에서 가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군 진영에서 시작된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전선에 곧 퍼지고 양측의 장병들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끝난 후 독일군 장교가 나와 영국군 하사와 악수를 하여 맺은 정전으로 달콤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평화는 역사에서 실제로 이뤄졌다. 적으로 만난 양측 군인들은 분명 인간적 교감을 나눴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사령부에서 지시사항이 전달되자마자 평화로웠던 들판은 다시 살벌한 전쟁터로 돌아왔고, 이 또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2018년 4월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다시 보니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지는 공교롭게도 2018년 동계올림픽이 치러졌던 평창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는 점이다. 진정 평화를 담은 공간이었던 것일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한반도의 급박한 정세를 잠시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이 동시 입장했고,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했으며 올림픽 전에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특별공연을 갖는 등 최근 한반도는 활력 넘치는 평화를 맛봤다. 4월 27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고, 한반도 평화는 점점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보인다. 이 ‘평화’가 한국전쟁 중의 ‘동막골’이나 ‘크리스마스 휴전’에 그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새로운 것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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