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WHY? | 블라디미르 푸틴, 21세기판 ‘차르’로! 2018년 4월호
글로벌포커스 WHY?
블라디미르 푸틴, 21세기판 ‘차르’로!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상대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실시된 대선에서 76.6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했다. 푸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공산당 후보인 파벨 그루디닌의 득표율은 11.8%를 기록했으며 나머지 6명의 후보들은 5%대 미만의 저조한 득표율을 보였다. 이번 대선에서 푸틴의 득표율은 역대 선거들과 비교할 때 최고치다. 푸틴의 득표율은 2000년 대선에서 52.94%, 2004년 대선에서 71.31%, 2012년 대선에선 63.6%를 각각 기록했다.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67.4%였다.
푸틴은 이번 대선 승리로 오는 2024년까지 집권한다. 푸틴은 2000년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선출됐고, 2004년 연임에 성공해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후 헌법의 3연임 금지 규정에 따라 퇴임했지만 자신의 오른팔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총리를 대통령으로 세운 후 ‘실세 총리’로 국정 운영을 주도했다. 푸틴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해 개헌으로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푸틴, 76.67% 득표율로 대선 압승 … 2024년까지 집권
이번에 대통령직을 연임함으로써 푸틴은 대통령으로서 20년, 실세 총리로 4년 등 모두 24년을 집권하게 된다. 제정러시아 시대를 제외하고 옛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시절의 최고통치자였던 역대 서기장 중에서 푸틴보다 오래 자리를 유지한 인물은 31년을 통치한 이오시프 스탈린(재임 1922~1953년) 밖에 없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지만, 푸틴이 이 제도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합법적으로 대통령을 4번이나 하게 된 것이다.
푸틴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보여 왔다. 실제로 푸틴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한 날(3월 18일)에 대선을 실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푸틴은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에서 9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몰표를 얻었다. 푸틴은 4년 전 크림 반도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 병력을 동원해 크림 반도를 장악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그동안 러시아를 강력하게 제재해왔다.
푸틴의 의도는 크림 반도는 러시아의 영토이고 서방의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러시아 국민들에게 보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아울러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민심과 ‘슬라브 민족주의’를 자극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푸틴의 지지율은 크림 반도 강제 병합 당시 89%를 기록하기도 했다. 푸틴은 이번 대선 운동기간 중 크림 반도를 절대 반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등 국민들의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것도 푸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4일 남부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앞 벤치에서 러시아 군 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소속 대령이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가 신경작용제에 중독돼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자 이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 정부를 지목했다. 스크리팔은 1995년 영국 해외정보국(MI6)에 포섭돼 자국 정보요원들의 신상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3년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해오다 2010년 미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맞교환으로 풀려나 영국에 정착한 전직 스파이였다. 영국 정부는 스크리팔 부녀를 중독시킨 신경작용제가 1970~1980년대 러시아에서 개발된 화학무기의 일종인 ‘노비촉(Novichok)’인 것으로 밝혀냈다.
영국 정부는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도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 정부를 비판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 정부도 자국 주재 영국 외교관 23명을 추방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국 총영사관을 폐쇄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대선 직전에 이러한 무모한 행위를 벌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서 “러시아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이 러시아의 소행이라는 영국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면서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다. 안드레이 콘드라쇼프 푸틴 대선 캠프 대변인은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한 것이 오히려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알렉세이 푸슈코프 러시아 상원의원도 “푸틴을 악마화하려는 서방의 시도가 러시아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강한 러시아’ 비전 아래 미국과 전략무기 경쟁 벌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푸틴이 앞으로 집권 4기에서 서방과의 갈등과 분쟁을 부추기면서 강경한 대외정책을 통해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운 ‘강한 러시아’ 비전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푸틴은 미국과의 핵을 비롯한 전략무기 경쟁을 벌일 것이 예상된다. 푸틴은 이미 지난 3월 1일 국가두마(하원)에서 가진 국정연설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뚫을 수 있는 전략무기들을 개발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푸틴이 공개한 최신예 전략무기들은 핵추진 크루즈미사일, 극초음속 탄도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추진 수중드론 등 다섯 가지다.
푸틴은 “최신예 전략무기 개발로 미국이 이끄는 나토의 MD가 무용지물이 됐고 러시아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서방의 노력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푸틴이 이런 전략무기를 공개한 의도는 무엇보다 첫째로,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 계획과 MD 체계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둘째로는, 러시아를 앞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푸틴은 미국과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 체제를 구축하면서 옛 소련의 영광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푸틴은 이번 대선에 앞서 친여권 사회단체인 러시아인민전선이 주최한 미디어포럼에서 “러시아 역사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은 소련의 붕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푸틴이 공개한 전략무기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면서도 새로운 개념의 전략무기가 미국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핵추진 크루즈미사일이다. 푸틴은 이미 성공적으로 시험을 거친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무제한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비행경로로 날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하다면서 발사 후 원자력 엔진으로 비행하는 새로운 전략 핵미사일이라고 주장했다. 핵추진 크루즈미사일의 사거리는 이론상으로 보면 무한대다. 지금까지 크루즈미사일 사거리는 아무리 길어도 5천㎞를 넘지 못했는데, 그 한계를 극복해 ICBM처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RS-26 아반가르드를 말한다. 서유럽을 겨냥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개발돼 양산 단계에 들어간 아반가르드는 최대 속도가 마하 20(24,480㎞/h)으로, 사거리 5,800㎞에 최대 16개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차세대 ICBM은 RS-28 사르맛이다. 사르맛은 미국의 모든 MD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최대사거리가 10,800㎞이고 최대 15개의 Mt(TNT 폭발력 100만t)급 핵탄두를 탑재한 이 미사일은 내년부터 실전배치될 예정이다. 사르맛 한 기로 프랑스 전체나 미국 텍사스주 정도의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 사르맛은 또 오브젝트 4202(object 4202)로 불리는 신형 극초음속(HGV) 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지구상 어느 곳이든 1시간 이내에 타격할 수 있는 HGV는 미사일에서 분리된 뒤에도 자체 경로를 따라 비행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또 다른 극초음속 미사일은 항공기 탑재용 ‘킨잘’이다. 마하 10의 속도로 날아가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3천여km다. 핵추진 수중 무인드론은 100Mt의 핵폭탄을 장착하고 최대 1만㎞ 떨어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
러시아가 앞으로 이런 전략무기들을 실전배치할 경우 미국과의 핵 경쟁으로 신냉전 국면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것은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수정주의 국가들이라고 규정하면서 최강의 군사력 구축을 통해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2월 발표한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최강의 핵 능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이러한 강경 입장을 볼 때 푸틴은 앞으로 핵무기를 비롯한 전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군사력이 열세인 러시아로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전략무기 개발을 통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문제는 경제 … 푸틴의 장밋빛 공약, 실현될까?
문제는 러시아가 전략무기 개발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경제는 지난해 3년 만에 1.5%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지만 2000년대 초중반 고도 경제성장기에 현저히 줄어들었던 빈곤 인구는 최근 3∼4년간 경제난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 현재 1억4천만명의 인구 가운데 2천만명이 월 소득 180달러 이하의 빈곤층에 속한다. 때문에 푸틴은 이번 대선에서 향후 6년 동안 빈곤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5배 늘리는 등 러시아를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푸틴의 장밋빛 공약이 실현될 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의 1인당 GDP는 미국의 1/5 수준으로 고꾸라졌고 빈민층은 최근 10년 내 최대 수준으로 늘어났다면서 광대한 인구와 자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경제수준은 미국 뉴욕주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 경제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에너지 수출이 GDP의 23%, 재정수입의 36%를 차지하는 자원의존형 경제인 러시아가 쉽게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모스크바 경제·정치개혁센터의 니콜라이 미로노프 소장은 “유가 변화 없이 러시아가 고도성장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면서 “러시아에는 원자재 외에 성장을 견인할 만한 혁신 부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푸틴으로서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푸틴은 앞으로 빈곤과의 싸움, 삶의 질 개선, 경제성장을 위한 기술개발, 기업환경 개선 등 경제개혁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푸틴 대통령의 다음 임기 6년의 성패는 경제발전 여부에 좌우될 것이 분명하다. 푸틴이 자신이 추진하는 ‘강한 러시아’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푸틴이 아직 4기 집권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종신 집권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2024년 72세가 되는 푸틴이 그대로 물러날지 아니면 개헌을 통해 또다시 집권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아무튼 ‘21세기판 차르’에 등극한 푸틴은 옛 소련의 영광을 부활시키기 위한 전략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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