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임박 … 한반도에 봄이 온다 2018년 4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임박 … 한반도에 봄이 온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한반도가 역사상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게 됐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진다. 한반도를 공고하게 지배해온 냉전구조를 걷어내고 평화의 기틀을 만들지 주목된다. 이 기회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고위급대표단으로 온 것에 이어 폐회식에는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다. 두 행사에 참석한 북측대표단은 남측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문재인 대통령은 진정성 있게 이들을 대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발전을 돕겠다는 뜻을 실제로 보여줬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 제1부부장으로부터 방남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남측이 고위급대표단을 비롯하여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참가한 우리 측 성원들의 방문을 각별히 중시하고 편의와 활동을 잘 보장하기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남측의 노력이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의 두 차례 고위급대표단 방문에 문재인 정부는 대북특별사절단을 파견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급반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투톱’으로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지난 3월 5∼6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방북했다.
대북특사단 방북 첫날 ‘제3차 남북정상회담’ 확정
특사단의 방북은 시작부터 좋은 결과를 예감하게 했다. 김 위원장은 특사단의 방북 첫날인 5일 특사단을 만나 면담과 만찬을 가졌다. 특히 이들 일정이 이뤄진 곳은 노동당 청사로 남측 고위인사들에게 처음 공개한 곳이다.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한 것 자체가 그간의 관례와 비교하면 상당히 파격적인데, 특사단이 김 위원장과 함께한 장소 또한 과거와는 차별화된 셈이다. 면담과 만찬에 소요된 시간도 오후 6시부터 4시간 12분이나 된다.
노동당 청사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사용하는 최고지도자 집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노동당 본청사는 우리의 청와대 격으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등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가 대부분 이곳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의 특사단을 대하는 북한의 극진한 태도는 좋은 결과를 예감하게 했고 실제로 긍정적인 내용이 담긴 합의가 이뤄졌다.
우선 남북 양측은 다음 달 말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남북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간의 핫라인을 설치해 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하기로 했다. 또 북한은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주제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 북한은 남측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4월 1일부터 재개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양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사단을 이끌고 방북한 뒤 귀환한 정의용 실장은 3월 6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대화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며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대화가 지속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을 명확히 하는 한편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약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남측 특사단의 방북과 관련한 보도에서 “최고영도자(김정은) 동지께서는 남측 특사로부터 수뇌 상봉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들으시고 의견을 교환하시었으며 만족한 합의를 보셨다”며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해당 부문에서 이와 관련한 실무적 조치들을 속히 취할 데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주시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남측 특사대표단 일행과 북·남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시키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허심탄회한 담화를 나누시었다”고 전하면서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또한 조선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북과 남 사이의 다방면적인 대화와 접촉,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누시었다”고 소개했다.
북한과 첫 라운드를 마친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의 특사단 투톱 라인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도착 첫날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방북결과를 설명했고 이 자리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의 첫걸음을 떼는 계기가 됐다. 정 실장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직후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리더십과 ‘최대의 압박’ 정책이 국제사회의 연대와 함께 우리로 하여금 현시점에 이를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하고, 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은 방미 첫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전격적인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큰 진전이 이뤄졌다”며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또 “김정은이 한국대표단과 단지 동결이 아니라 비핵화를 이야기했다”며 “또한 이 기간에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없다. 하지만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사단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과 북·미정상회담 수락은 김 위원장 면담 때만큼이나 전격적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함께 대기하던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지금 만나자’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당초 방미 둘째 날 만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하루 빨라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사단이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다른 관료들과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곧장 이들을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로 불렀다. 특사단의 브리핑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맥매스터 보좌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지나 하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등 참석 가능한 최고위급 외교·안보라인이 총출동했다.
트럼프 “김정은 만나겠다” 전격 결정
미 행정부의 고위 관료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 실장에게 김 위원장의 만남 제안에 대해 이야기해줄 것을 요청했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나타냈다’는 정 실장의 설명을 듣자마자 곧바로 ‘그렇게 하겠다’며 긍정적인 답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에게 ‘백악관 기자단에 이런 사실을 직접 발표해 달라’고까지 제안했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합의가 이뤄지면서 준비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총괄간사로 하는 총 8명으로 구성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청와대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준비위원으로 포진했다. 그리고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대표단 등 기본사항을 논의한 고위급회담을 3월 29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자고 제의하고 북측이 동의해 옴에 따라 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미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치렀고 통일부와 국정원 등 남북대화를 위한 라인업을 정연히 갖춘 한국에 비해 미국은 준비할 것이 적지 않다. 우선 트럼프 외교안보 진용이 여전히 불안하다.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인물의 부재가 정책 혼전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내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폼페이오 국장이 우리의 새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면서 “그는 멋지게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새 국무장관 지명자는 미 행정부 내 대표적 강경파이지만 최근 남북, 북·미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한국 정보당국과 끈끈한 협력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해스펠 부국장이 새 CIA 국장에 임명했는데 폼페이오 장관 내정자의 국장 시절 한국 정보당국과 대화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체되는 美 외교안보 라인 … 국정원-CIA 채널 주목
특히 CIA와 국정원 채널은 앞으로 정상회담 과정에서 주목해볼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는 CIA 국장 시절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안보 사안을 보고하기 위해 매일 백악관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측 카운터파트인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취임 직후부터 폼페이오 국장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 원장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말부터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국장과 직접 만나 대북정보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 자리에 국정원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실무자도 대동해 구체성 있는 정보교환을 했으며 CIA 측도 매우 만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보좌관을 전격 경질하고, 대북 ‘초강경파’로 꼽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후임으로 발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존 볼턴이 나의 새 국가안보보좌관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면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영원히 나의 친구로 남을 맥매스터의 봉사에 매우 감사하다는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볼턴 전 대사는 방송 출연이나 공개 강연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부각하면서 대북 군사행동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역설해 강경파로 분류된다. 볼턴 전 대사는 내정 직후 “내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과 내가 그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말했다. 볼턴의 이 같은 발언은 이제 백악관의 국가안보 분야 사령탑으로서 민감한 대외정책들을 다뤄야 하는 위치가 된 만큼, 개인적 의견 피력에 더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봄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겨울을 넘어 봄으로 가는 길에는 살얼음판도 있을 것이고 눈이 녹은 진흙탕도 있을 것이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봄으로 향하는 길에 한국은 운전석에 앉았고 뒷좌석에는 북한과 미국을 태웠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신중하게 운전하는 우리의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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