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북아 2017년 체제 … 긍정적 국면전환기 놓치지 말아야 2018년 6월호
특집 | 세기의 담판 … 북·미정상회담 관전포인트!
동북아 2017년 체제
긍정적 국면전환기 놓치지 말아야
왕선택 / <YTN> 통일외교전문기자
2018년 벽두부터 시작한 한반도 정세 급변 상황은 5월 중순을 지나면서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듯 했으나 다시 동력이 이어지는 등 급반전 양상을 보였다. 순조롭게 진행하던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 대화 흐름이 미국 내 강경론 대두와 북한 반발로 급제동이 걸렸던 것이다. 상황 급변과 반전이 이어지면서 상황 분석과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고도의 관찰력과 주의력이 요구된다.
최근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조성된 상황은 관련 국가의 정치 일정이나 특별한 국가적 행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국내정치 변수 요인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고, 북한은 오는 9월 9일 정권 수립 기념일을 중시하면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 선거와 2020년 11월 재선거 일정을 중시하고 있고, 중국도 지난해 10월 공산당대회 이전과 이후에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응 태도가 달라졌다.
국내정치를 중심으로 외교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권력 정당성의 특성이나 최고지도자의 성격, 정치 구도의 특징, 여론 지지율 등이 중요한 검토 대상이지만, 우선적 과제는 국내정치 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한반도 정세 격변의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 이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공언하고, 북측 호응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기 위해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일정을 연기함으로써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견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평화 만들기’ 외교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 승리의 결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국내정치 변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북한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180도 다른 접근법을 보여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선호하고 있다. 양쪽 모두 국가 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외교정책을 결정했지만, 정반대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국익 차원에서 어느 쪽이 합리적인지는 정치 성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대북 관여정책을 채택한 것은 관여정책을 선호하는 정치 세력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고,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내정치, 즉 대선 결과가 중대 변수가 된다는 것도 자명하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 변수가 대통령 선거 때문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수년간의 대북정책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음 대통령 선거인 2022년 5월까지는 현재의 대북 관여정책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특히 2018년 6월 13일 열리는 지방선거와 2020년 4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진보 진영이 승리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관여정책은 더욱 강화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2022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소속 당 대선 후보 승리를 위해 외교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관여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제재 해제 필요한 北, 완전한 비핵화 적극 나설 수 있어
북한의 외교정책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상황에서도 국내정치, 특히 국내정치 일정은 중요하다. 2016년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내정치 주기를 설정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5개년 계획을 발표한 이상 2021년 5월에 정책 추진 성과도 발표해야 하는 제약을 스스로 만든 것이 된다. 김 위원장의 권력 정당성도 5년간의 정책 성과와 결부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5년 단위 국내정치 주기를 갖고 있다는 분석은 김 위원장이 2018년 초에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행보를 보이는 배경을 설명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2021년 5월에 경제발전 정책이 성공했다고 선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5개년 계획의 3년차에 해당하는 2018년에는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노력을 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김 위원장이 이른바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고 믿을 수 있다면, 완전한 비핵화를 단행할 수 있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상황에 적극 호응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과거처럼 이번에도 속임수를 쓸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북한의 국내정치 변수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오류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는 생존과 관련해 핵무기 개발을 완성하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핵무력이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만큼 신속한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체제안전 보장 조치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완전한 비핵화에 나설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고, 대체로 8년 주기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정권을 교체하는 현상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외교정책도 4년 주기, 또는 8년 주기로 순환하는 특성을 보인다. 미국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에는 단호하고 강인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모두 집권 초기 북한에 강경 조치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권 초기가 지나고 재선거 일정이 다가오거나, 중간선거 일정이 다가오면 강경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에서 가시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두려는 태도를 보였다. 1994년 10월 북·미 기본 합의문이 채택된 시점은 미국 중간선거 직전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했지만, 임기 말인 2007년과 2008년에는 북한과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012년 2월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성사시킨 것도 그 해 말 재선거 일정과 연관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 이후 북한에 대해 최강의 제재와 압박을 가했지만, 전임 대통령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이다. 1년차에 최대 압박을 가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2년차 들어서 갑자기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수용하는 등 전례 없이 과감한 방식으로 대북 관여정책을 추진했던 배경에는 2018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와 2020년 11월 재선거 일정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신에 대한 각종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는 차원에서 획기적인 정책 성과를 선호했기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그리고 또 선거 … 트럼프, 획기적 성과 원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했던 것도 북한의 과격 발언이 표면적 이유지만,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워싱턴 전문가 집단의 거부 반응을 근본적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워싱턴 전문가 집단 중에는 군산복합체를 포함해 북한과의 대결 구도가 지속되기를 선호하는 세력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국내정치 구도가 변수가 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국내정치 주기는 5년 주기 공산당대회를 기준으로, 그리고 10년 주기 최고지도자 교체에 따라 형성된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5년 또는 10년 단위로 중요한 일, 예를 들어 헌법 개정이나 공산당 규약 개정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중국 국내정치 주기는 지난해 2017년 10월 제19차 공산당 대회에서 5년 임기로 선출된 지도부가 담당한다. 앞으로 2022년 10월까지 이어지는 중국 국내정치 주기에서 중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진핑 총서기의 지도력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1970년대 말 당시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의 지침에 따라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0월 공산당 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 권한을 크게 강화하면서 집단지도체제에서 강력한 최고지도자가 존재하는 일인체제를 도입했다. 올해 초까지 시 주석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다소 수동적이고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기 보다는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면서 미국에 편승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올해 초 한반도 격변 상황이 나타나자 전격적으로 북·중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개최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이고 단호한 시 주석의 대응 자세는 2022년 10월까지 5년 동안 유사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반도 안보 정세 변화에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상황과 국면을 만드는 것은 국가 간 관계이고, 나라별 국내정치 변수의 조합이다. 현재 한반도와 주변국가의 국내 권력 구도는 2016년에서 2017년 사이에 구축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6년 5월 노동당 대회를 열고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국내정치 주기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한국에서는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사실상 종료됐고,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11월 당선됐고, 시진핑 주석은 2017년 10월 공산당 총서기로서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 동북아 최고지도자 네 사람이 구성한 동북아 국제정치 구도를 ‘2017년 체제’로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7년 체제’는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결정되는 2020년 11월까지 앞으로 한반도와 주변국가의 주요 외교 현안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동북아 2017년 체제, 2020년 말까지 현안 좌우할 핵심 변수
이런 조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적어도 2년 반 동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대북 관여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고,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비핵화를 단행하는 등 국제사회에 편입하는 노력을 전개하면서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와 재선거에서 자신의 위대한 외교 업적을 제시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의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면서 북·미정상회담 카드를 주시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 안보 지형의 격변 현상이 중국에 손실을 끼치지 않을 경우 공개적으로 반대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편승하면서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25년 넘게, 한국과 미국에서는 정권 특성에 따라 대북정책과 관련해 엇박자가 나면서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전개할 수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엇박자는 북핵 문제를 악화일로 구도로 만든 주요 요인이다. 그렇지만,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관여정책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문재인 대통령 제안을 자신의 국면전환 노력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 역시 한반도 급변사태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동하는 한 찬성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벌어진 것처럼 북·미정상회담이 임박했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등 돌발적인 상황이 앞으로도 여러 차례 발생할 수 있지만, 2017년 체제가 제공한 나라별 국내정치 조합을 만나는 것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조합이 좋지 않아서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북 관여정책을 희망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협력을 얻지 못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2017년 체제가 비핵화나 평화체제 구축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속성은 앞으로 2년 반 이상 지속될 것이다. 물론 유리한 조건이 최종적인 목표 달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최종적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효과적인 전략 수립과 정책 추진 역량에 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보기 드물게 긍정적인 국면전환이 가능한 시기를 맞아, 효과적인 전략을 채택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해서 한반도 평화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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