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8월 2일

장용훈의 취재수첩 | 판문점 선언 100일 … 합의 이행 성과는? 2018년 8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판문점 선언 100일

합의 이행 성과는?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2018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남북 단일팀 혼합복식에 출전한 장우진(남측)-차효심(북측) 조가 지난 7월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중국팀을 상대로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

2018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남북 단일팀 혼합복식에 출전한 장우진(남측)-차효심(북측) 조가 지난 7월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중국팀을 상대로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

8월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첫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 선언을 채택한지 100일이 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이 선언에 합의한지 100일이 되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판문점선언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성됐다. 남북관계 개선, 전쟁위험 해소,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서는 각 분야별 대화를 명시하고 개성 지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아시안게임 공동 진출 등 다방면에서 교류와 협력,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한 가운데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실천적 대책과 8·15 이산가족 상봉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관계 개선 분야, 더디지만 하나씩 이행 이뤄지고 있어

일단 남북관계 개선 합의와 관련해서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남북 간의 합의 이행이 하나씩 이뤄지고는 있다. 우선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서는 고위급회담을 비롯해 다양한 실무회담이 이어지면서 남북 간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다 제재로 경제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체육 분야를 비롯한 사회문화교류가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남북 양측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총 3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을 꾸려 평창 동계올림픽의 감동을 재연한다. 여자농구와 카누, 조정에서 남북이 힘을 합친다. 세 종목 모두 메달 획득 가능성이 비교적 커 많은 기대를 모은다. 여자농구는 지난 7월 3일부터 6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를 통해 단일팀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눴다.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대표팀은 총 12명의 선수로 구성되는데, 남측 9명, 북측 3명의 선수가 단일팀을 구성하게 됐다. 남북 여자농구 단일팀의 목표는 우승이다. 한국 대표팀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베이징 대회에선 준우승했다.

카누는 남녀 드래곤보트(용선) 종목에서 단일팀을 꾸린다. 남녀 8명씩 총 16명(후보 선수 2명 포함)이 참가하는데, 남한에서 8명, 북한에서 8명이 단일팀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메달 획득 가능성은 크다. 한국 용선 대표팀은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용선 전문 선수가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단 한 달간 훈련한 뒤 거둔 성과였다. 북한의 기량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에선 남자 무타포어, 남자 에이트,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에서 단일팀을 구성한다. 무타포어는 총 4명의 선수가 경쟁하는 종목으로, 남측에선 2명의 선수가 나서기로 했다. 9명이 출전하는 조정 남자 에이트에선 남측 선수 5명이 뛰기로 했고, 조정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은 2명이 참가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1명의 선수가 나선다.

이미 남북한의 단일팀은 성과를 내고 있다.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장우진(미래에셋대우)-차효심(북측) 콤비가 신한금융 2018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금메달을 따냈다. 장우진-차효심 조는 지난 7월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혼합복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추친-순잉샤 조에 3:1(5:11, 11:3, 11:3, 11:8)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이로써 장우진-차효심 조는 단일팀이 성사된 이번 코리아오픈에서 5개 종목 중 가장 먼저 치러진 결승에서 나온 금메달을 남북 선수단에 안겼다. 남북 선수가 탁구에서 단일팀을 이뤄 금메달을 딴 것은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우승 이후 무려 27년 만이다. 당시 단일팀은 현정화와 북한의 이분희를 앞세워 9연패를 노리던 중국의 아성을 허물고 우승 쾌거를 이뤘다.

체육을 통한 교류는 전문선수들뿐만 아니라 민간으로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8월에는 서울에서 북측 대표단 65명이 참가하는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가 열린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열리는 첫 남북 민간교류 행사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7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월 10∼12일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에 주영길 조선직업총동맹(직총)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65명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기다리고 있다. 남북은 6월 22일 적십자회담을 열고 각각 100명씩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행사를 8월 20∼26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생사확인 결과가 담긴 회보서를 교환했다. 남측은 북측이 의뢰한 200명 중 129명에 대해 재남 가족의 생사를 확인(생존 122명, 사망 7명)했으며, 북측은 우리가 의뢰한 250명 중 163명에 대해 재북 가족의 생사를 확인(생존 122명, 사망 41명)해왔다.

사회문화교류 속도 내고 있지만 경제협력은 더디게 진행

지난 7월 24일 남북철도공동연구조사단이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을 공동점검하고 있다. ⓒ연합

지난 7월 24일 남북철도공동연구조사단이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을 공동점검하고 있다. ⓒ연합

사회문화교류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북한이 희망하는 경제협력은 더디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남북 양측은 판문점 선언 이후 경의선 도로 연결, 동해선 철도 연결, 산림녹화협력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하고 있지만 현장 실태조사나 공동연구 정도에만 합의를 할 뿐이다. <노동신문>이 지난 7월 20일 논평에서 “북남 사이에 해결하여야 할 중대 문제들이 무기한 표류”하고 있다며 “‘대북제재의 틀 안에서 가능한 북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고 ‘여건 조성’을 외워대며 한사코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 남조선 당국”이라고 주장한 것도 결국 속도가 더딘 경제협력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선언의 두 번째 꾸러미는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신뢰구축을 담고 있다. 일단 합의에 담긴 대로 남북 양측은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를 중단하고 관련 장비를 철거했다. 늘 상대를 비방하고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고성이 오가던 비무장지대(DMZ)에 평온이 내려앉았다. 또한 서해지구 남북 군 통신선을 완전히 복구해 모든 기능을 7월 16일부터 정상화했다. 이 군 통신선은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단절된 이후 29개월 만에 복구된 것으로 지난 1월 9일 이후 동케이블을 이용한 육성통화만 가능했으나, 현재 동케이블 외에 광케이블을 통한 유선통화 및 팩스 송수신도 가능하게 됐다. 정부는 서해지구 군 통신선 복구를 위해 북측에 제공된 물품은 유엔 안보리와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제공했다.

앞서 7월 1일에는 남북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핫라인(국제상선공통망)’을 10년 만에 정상 가동했다.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NLL 일대에서 남북 함정이 즉각 의사소통하는 채널인 핫라인은 말 그대로 충돌방지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어서다. 남북은 서해 NLL 해상에서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연평해전을 치렀다.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중국 어선 단속과 해상 초계임무 등을 이유로 NLL을 침범하면서 발발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남북 양측 함정뿐만 아니라 군사 당국 간에도 핫라인은 없었던 탓에 발생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군사 당국 간 소통채널이 복원된 가운데 군은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병력과 장비를 시범적으로 철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 보고자료를 통해 “판문점 선언의 DMZ 평화지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 DMZ 내 GP 병력과 장비를 시범 철수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DMZ 내 남북 GP에는 기관총 등 중화기가 반입되어 있다. 국방부는 “GP 시범철수 이후 역사유적과 생태조사 등과 연계해 전면적인 철수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조치에도 서해평화수역 조성 등 여전히 남북 간에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는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사안은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세 번째 꾸러미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며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역시 북·미 간의 합의와 이행 노력이 중요한데, 미국이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에 소극적이면서 다소 더디게 나아가는 모양새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때 북한과 협의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삐걱거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6·12)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근차근 행동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 55구의 미군유해를 송환했다. 이번 유해송환은 북·미 정상이 서명한 6·12공동성명의 4항을 실행하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북한이 인도적 차원의 유해송환을 전격 단행함으로써 ‘약속은 지킨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최근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차례 인공위성을 발사해 왔던 발사대도 함께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해체 작업은 80% 정도, 발사대 해체 작업은 30% 정도 진행됐다는 관측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7월 25일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기한 데 이어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폐기하는 것으로 한·미 두 나라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핵심은 역시 비핵화 협상 교착 속에서도 동력 이어져

재미난 대목은 본격적인 비핵화 논의에 앞서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북한이 이러한 선(先)이행 조치에 대해 생색을 낼 법도 하지만 일절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선언을 늦추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비핵화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느긋한 모습을 견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정비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내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과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형국이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자칫 시작부터 어그러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신들이 이미 한 약속을 먼저 실행하는 데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은 70년간 대립해온 미국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데다 리비아의 몰락과 이란의 핵협상 실패 등을 지켜본 경험으로부터 비핵화 초기 조치부터 미국에 동시행동을 요구하면서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모습이다. 미국의 행동에 불만이 있더라도 어렵게 성사된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최고지도자가 직접 한 약속만큼은 먼저 실행함으로써 판을 깨지 않고 후속협상의 동력을 살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의 이러한 약속 선이행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확인시킬 뿐 아니라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조치를 끌어낼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북한의 이러한 선조치는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 달 반 지나도록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활력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판문점 선언이 나온지 100일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어만 보인다. 한반도에 켜켜이 쌓인 분단구조와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남북 양 정상은 올 가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를 해놓은 상황이다. 남북관계에 진전이 조금 더 필요한 이유다. 보다 나은 판문점 선언 이행의 성적표를 들고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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