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경제협력 다변화 … 미·중 무역갈등 대응수단 가치 있어 2018년 8월호
특집 | 사람, 번영 그리고 평화 … 신남방정책의 미래는?
경제협력 다변화
미·중 무역갈등 대응수단 가치 있어
곽성일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신남방경제실장
아세안(ASEAN)과 인도를 남방 지역의 핵심 협력대상국으로 삼고 있는 신남방정책은 이 지역과의 협력관계를 한반도 주변 4국(미·중·일·러) 수준으로 격상하고 사람·상생번영·평화를 위한 미래 파트너십 구축을 목표로 한다. 신남방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외교 관계의 다자체제 형성을 지향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교역은 미국과 중국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지난 3년간(2015~2017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1%였다. 수출과 수입을 더한 교역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35%다. 특정국에 집중된 교역구조는 우리나라로 하여금 이 국가들의 대외전략 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게 하고 대외경제정책의 운신폭도 줄였다. 2016년 한국은 이른바 사드 사태로 대(對)중국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했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두드러진 자국우선주의에 의해 대미수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익 극대화 위해선 특정국 집중된 교역구조 탈피해야
당당하게 우리나라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외경제정책을 마련하려면 먼저 특정국에 집중된 교역구조를 다변화하고 대외적인 위험성을 낮춰야 한다. 신남방정책은 단순히 신남방 지역으로 미국과 중국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미·중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공간을 확대해 우리나라의 포트폴리오 확충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남방정책은 ‘균형된 외교’에 기초해 한반도 주변 4국(미·중·일·러) 및 신남방 지역과 더불어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적 대외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남방정책은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공동체라는 3P 공동체를 강조한다. 아세안헌장에 규정된 ‘사람 중심’의 가치와 우리 정부의 ‘사람이 먼저’라는 국정기조는 사람 중심 공동체를 추구하는 신남방정책과 결을 같이 한다. 또한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한·아세안 FTA와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정 등을 통해 역내 교역 확대와 공동번영을 추구한다.
또한 신남방정책은 평화공동체를 지향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아세안·인도 순방에서 신남방정책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지지를 다시 확인했다. 신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인 아세안 회원국들은 우리나라와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북한과도 맺고 있다. 아세안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효과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북한에 설명하고, 강대국의 압력에 대한 북한의 ‘숨구멍’이 되어준다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앞당길 수 있다.
평화체제가 구축된 한반도는 남방 지역의 경제적 성과를 북방 지역으로 이어주는 교량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번영에도 새로운 기회가 된다. 한반도가 남방 지역에 북방 지역의 에너지와 전력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고, 다시 남방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북방 지역으로 수출하는 창구로 작용한다. 또한 북방 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 식품을 인구 20억 명의 인도와 아세안 시장으로 보내는 가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에 새롭게 형성된 물류 흐름은 아시아에 전체적인 번영을 가져올 것이다.
신남방정책은 한반도 신경제구상과 신북방정책의 융합을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의 성장전략으로 기능한다. 신남방정책의 목표인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서로의 강점을 발굴하고 함께 개발한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남방정책의 핵심파트너인 인도는 기초과학 수준이 매우 높은 반면, 이를 상용화하는 응용과학 수준은 낮다. 인도의 기초과학에 우리나라의 상용화 기술과 경험을 접목한다면 첨단 제조업을 육성할 수 있으며, 양국은 동 분야에서 주도국이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은
7월 인도 순방 시 미래비전전략그룹의 구성을 높이 평가했다. ICT, 소프트웨어, 바이오, 사이버보안, 헬스케어, 에너지는 물론 미래차와 우주 분야까지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우수인력 교류를 확대한다면 양국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경제적 성과를 낼 것으로 확신한다.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과 융합 통해 신성장전략으로 기능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와 함께 지식재산권, 안보, 기술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중국에 제기하고 있다. 중국이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미래 첨단기술 업종의 주도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통상압박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무역위원장은 지난 3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301조 관세부과 조치는 ‘중국 제조 2025’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직접 언급했다. 미국은 지난 5월 ‘중국 제조 2025’를 명시적인 표적으로 삼아 500억 달러에 달하는 관련 제품에 25% 관세부과 계획을 발표하고, 7월 6일자로 340억 달러 규모의 제1차 대상에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미국의 통상압력을 협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유지 중이나, 자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4월 보아오포럼에서 시장진입 제한 완화, 투자환경 개선, 지식재산권 보호조치 강화, 수입확대 등 4대 대외개방 확대 조치를 발표하는 등 중국의 유화적 조치에도 지난 7월 미국은 제1차 대상에 관세부과를 시행했다. 이에 중국도 340억 달러에 상당하는 제1차 보복대상 품목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미·중 무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국 제조 2025’ 전략과 관련한 보조금 철폐 및 지원 금지, 무역불균형 축소, 농산물 및 서비스 시장 개방, 지식재산권 보호 등 중국이 일방적으로 종합적 조치를 취해야 하므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340억 달러 대상 품목에 대한 미·중 간 1차 관세부과 조치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수출되는 우리나라의 중간재 가운데 미국으로 다시 수출되는 중간재 비중이 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은 경제협력의 다변화를 추구하므로 미·중 무역갈등의 장기적 대응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미국 뉴욕시립대 폴 크루그만 교수도 올해 제주포럼에서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이 크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유럽연합과 같은 역내 무역체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강대국의 무역갈등 장기화는 세계교역을 위축시키고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을 저하시키며,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신남방정책에 기초하여 아세안 및 인도와 함께 지속가능한 교역과 투자관계를 형성 및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중국 제조 2025’에 대한 압박이 강할수록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지체는 우리나라가 신남방 지역과 함께 첨단산업 분야를 육성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다. 신남방 지역의 국가와 미래혁신 산업에 대한 협력을 추진하여 한국 산업 도약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불고 있는 반미운동과 미국산 불매운동, 그리고 미국 내 관세로 인한 중국 제품의 판매 감소도 우리에게는 놓쳐서는 안 되는 절호의 기회다. 중국산을 대체할 제품을 우리의 상용화 기술과 아세안의 노동력, 그리고 인도의 기초과학 기술을 활용해 생산한다면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우리 역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제국주의적 야심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으므로 아세안과 인도도 우리와 협력하는 데 부담감이 없을 것이다.
신남방정책은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따라 많은 경제적 성과를 우리나라에 가져다 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다면 신남방정책은 허울 좋은 구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신남방정책을 국민의 지지 속에서 계속 추진하려면 다음의 과제들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첫째, 1990년대부터 삼성, 현대, LG, 대우 등 우리 기업들은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에 진출했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도 우리 기업의 아세안 진출과 투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아세안의 성장성에 의미를 두고 지속적으로 진출한 한국 기업과 달리 정부의 관심은 간헐적이었고, 그 결과 역내에서 민간기업의 성과는 높았지만 정부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신남방정책은 정부가 장기적 관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신북방정책과의 연계를 통해 번영의 축을 완성하고, 한반도 평화시대에 대비하는 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추진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명확한 추진체계를 통해 구체적 로드맵을 작성하고 책임감 있게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현재까지 성과 바탕으로 한 정책 로드맵 체계화 긴요
신남방정책과 연계하여 정상이 방문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 싱가포르에서의 성과를 되짚어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중장기 로드맵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신남방정책 로드맵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한다면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신남방 지역 국가들도 이 정책에 높은 신뢰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장기전략인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추진체계의 성과지표는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 비전 아래 점진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함께 우리나라의 새로운 글로벌 성장전략으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둘째, 아세안 및 인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아세안과 인도가 우리를 잘 이해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신남방정책이 인적 교류와 국민외교를 강조하므로 우리 국민이 정책추진의 핵심 행위자다. 따라서 우리 국민이 신남방정책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가 그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아세안 지역과 인도에 대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는 고정 관념을 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 우리나라와 협력하는 파트너로서 이들 지역을 대우해야 우리도 아세안과 인도로부터 그에 부합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아세안과 인도가 우리나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지 않도록 한국의 매력을 알리는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소프트파워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신남방정책 추진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아세안과 인도에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셋째, 신남방정책이 경제·외교의 다변화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대(對)아세안 교역 및 투자는 베트남에 집중되어 있다. 2010년 한국의 총 아세안 투자액 가운데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9.9%였으나, 2017년 그 비중은 40.3%로 높아졌다. 교역도 2010년 우리나라의 총 아세안 교역액 가운데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였으나, 2017년 그 비중은 42.9%까지 큰 폭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아세안 진출 허브로 베트남이 자리 잡았다는 증거이자, 베트남에 집중된 한국의 교역 및 투자를 아세안 역내 다른 국가와 인도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역내에서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해치지 않으면서 역내 보완적 관계의 형성에 기여하고, 역내 교역과 함께 우리 기업의 동반성장을 지향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성과를 인도와 연계한다면 신남방정책은 한층 더 높은 경제적 성과를 도출할 것이다. 이는 2025년에 새롭게 출범할 아세안경제공동체(AEC)에 대비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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