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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法 통일LAW | 북한의 변호사, 우리와 다를까? 2018년 9월호

북한法 통일LAW

북한의 변호사,

우리와 다를까?

최은석 / 전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자유민주주의국가나 사회주의국가나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다면 어떠한 형태이든 사법제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사법제도의 모양과 운용체계에 따라 국민의 권리·의무의 실현 태양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현될 것이다. 사회주의체제를 갖춘 북한의 사법제도 근간은 재판소제도·검찰소제도·변호사제도로 이루어져 있고, 북한 특유의 사법제도 일부분의 역할을 수행해 왔을 것으로 보인다.

첫 남북교류가 시작된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 우리 국민들도 이제 웬만한 건 서로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북한에도 변호사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북한에도 변호사제도가 존재하고 북한의 변호사도 우리 변호사와 같이 유사한 법률사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정권 수립 이래 북한이 변호사제도를 폐지한다든가 중지한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중국 등 일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변호사제도를 일시적이나마 폐지한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의 독(毒)’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변호사 역할에 대한 평가가 그리 높지 않아 당원 등 사회 핵심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한때 제한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정권 수립에도 불구하고 일본 식민지시대의 변호사제도는 북한 지역에서 일단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1945년 11월 28일 사법국 포고 제6호로 채택된 ‘변호사의 자격감독 및 등록에 관한 건’에서 일제 강점기에 판사·검사·변호사를 하던 자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도 북조선 사법국에서 실시한 판검사자격시험 합격자와 마찬가지로 사법국장의 인가를 받아 변호사 업무를 개시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의 변호사 활동은 자유민주주의국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개인경영의 형식을 취하였고 변호사단체인 변호사회도 일종의 동업단체로서 개인사무소를 가진 자유직업인 집합체에 불과했다. 따라서 변호사에 대한 보수는 개별계약에 의하여 지불되었고 변호사회도 변호사의 활동에 대해 조직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공민 전체 이익과 사회주의 준법성 보장 위해 활동하라

그 후 사회주의체제가 점차 굳어지게 됨에 따라 사회주의정권은 변호사에게 공민의 전체이익을 보호하고 사회주의 준법성의 보장을 위하여 활동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 북한의 변호사 역시 그러한 요구에 따라 그 조직과 활동에 있어 사회주의 방식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변호사제도 개선을 위하여 취한 조치는 1993년 12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 제43호로 「변호사법」을 단행법으로 채택하고, 1994년 4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7차 회의에서 이를 승인했다.

이 단행법 제정 이전 우리에게 알려진 1948년 11월 1일자 「변호사에 관한 규정」은 1993년 「변호사법」이 채택되기 직전까지 북한의 변호사제도를 규율하던 규정으로 거의 45년 만에 체계와 내용을 갖춘 변호사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법은 총 5장 31조로 구성되었으며, 변호사의 역할을 높여 기관, 기업소, 단체 및 공민의 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며 법의 정확한 집행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제1장은 「변호사법」의 기본을, 제2장은 변호사의 권리와 의무, 제3장은 변호사 자격, 제4장은 변호사 보수, 마지막 제5장은 변호사 조직으로 구분돼 있다. 변호사의 기본 법률사무로는 변호인, 소송대리인, 민사법률행위의 대리인, 기관, 기업소, 단체의 법률고문으로 활동하며 법률상담과 법률 문서를 작성하고 심의하는 것이 주된 업무로 명시했다. 변호사 활동은 법적으로 보호하도록 했는데, 변호 활동과 법률상 방조(지원 및 구조)를 통하여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법률제도를 옹호하도록 규정돼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인의 권익보호를 위하기보다 국가의 권익보호를 위한 것으로 강제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변호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외국법인과 외국인 개인도 변호사의 법률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변호사는 형사사건 기록을 볼 수 있으며, 피심자(피의자), 피소자(기소자)와 담화하거나 서신거래를 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고, 증인, 감정인과도 담화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한 변호사에게는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에게 변호에 필요한 증거문서, 증거물의 열람과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주었다.

특히 북한 변호사의 보수 규정은 눈여겨볼 만한 규정이다. 변호사 보수는 변호사가 수행한 일의 중요성과 복잡성, 결과 같은 것을 고려해 받는다고 명시했다. 보수 받을 수 있는 사유로는 형사사건의 변호인으로 활동하였을 경우, 소송대리인, 민사법률행위의 대리인으로 활동하였을 경우, 법률상담을 하였거나 법률적 의의를 가지는 문서를 작성, 심의하였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변호사의 자격은 법률전문가의 자격을 가진 자, 법 부문에서 5년 이상 일하던 자, 해당 분야의 전문가 자격을 가진 자로서 단기 법률교육을 받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변호사시험에 어떤 과목이 치러지는지 아직까지 알려진 게 없다. 변호사 보수기준은 조선변호사회 중앙위원회가 정하고, 해당 변호사위원회는 정해진 기준에 준하여 변호사 보수를 정확히 받아야 한다.

북한 내 변호사, 5백여 명 추산 전업과 겸직으로 구분

북한의 변호사는 변호사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으며, 변호사 단체로 조선변호사회가 있고 산하에 조선변호사회 중앙위원회, 각 도(직할시)별 변호사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위원회는 위원장, 서기장, 위원들로 구성한다. 조선변호사회 중앙위원회는 변호사 자격심사, 자격박탈, 변호사 보수기준 결정 등 중요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변호사 개개인이 사건을 수임하지 않고 각급 변호사위원회가 일괄적으로 사건을 수임해 보수를 받으며 변호사에게는 월급 형식의 보수가 지급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변호사의 법률사무 분야에 관한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원칙적으로 누구나 민사재판의 대리인, 형사재판의 변호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전체 변호사 인원은 약 5백여 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200명은 변호사 업무만 수행하는 전업변호사이고 나머지는 교수와 연구원 등을 겸하는 겸직변호사다. 법조인력 양성은 대학과 사회과학원에서 맡고 있다. 북한의 대학 중 법학부가 설치된 곳은 김일성종합대학, 인민경제대학, 사회안전부 정치대학 등 소수의 대학에 불과하다. 5년제인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는 법학과, 국가관리학과, 국제법학과 등 3개 학과에 학생 수는 한 학년에 5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는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제도가 없는 대신 대학의 법학과와 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에서 법학교육 및 법률가 양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판·검사, 변호사는 대학 법학과 출신중에서 선출, 임명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판사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는 변호사 이외에 일정한 법률사무에 종사하는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관세사, 노무사, 손해사정인 등의 이른바 유사법조직역 종사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각 국기가관, 기업소와 협동농장의 작업반을 단위로 하여 1~2명의 법무해설원을 두어 매주 1회 이상 법규해설 활동과 교육활동을 행하게 하고 있기는 하나, 교양적 수준의 법규해설·선전사업을 수행하고 있을 뿐 남한의 유사법조직역 종사자가 담당하고 있는 것과 같은 법률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는 않다. 북한 사회에서의 법률 서비스에 대한 수요 자체가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적은 것이 주된 이유이기 하지만, 법규의 내용이 간단하고 비변호사인 일반인도 법률사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북한의 변호사 숫자는 남한이나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개최하는 ‘통일법 조찬포럼’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남북교류가 한창 활발하던 10여 년 전에 어느 변호사가 대뜸 건넨 말이 생각났다. 남북한 변호사협회가 한번 만나 학술대회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북한의 조선변호사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과거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구서독 법조인들이 사법통합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 맨 처음 맞닥뜨려야 했던 장애물은 구동독 사법제도에 대한 무지였으며, 이러한 무지는 통일 후 이내 극복될 수 있었지만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다고 했다. 독일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 사법제도 및 변호사 제도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심도 있게 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한 변호사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북한 변호사들과 상호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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