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WHY? | 훈 센 캄보디아 총리, 종신 집권으로 가나? 2018년 9월호
글로벌포커스 WHY?
훈 센 캄보디아 총리
종신 집권으로 가나?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훈 센 캄보디아 총리가 지난해 11월 2일 프놈펜에서 개최된 물 축제장에서 보트 경기를 참관하는 도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반도 서남부에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정식 국가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이며, 수도는 프놈펜이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국토 면적(18만1035㎢)은 한국의 1.8배나 되지만 인구는 1,520만여 명밖에 안 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498달러로 세계 150위다. 캄보디아는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베트남전쟁과 쿠데타, 내전 등으로 상당한 정치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캄보디아에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라는 참혹한 과거사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다. 킬링필드는 극좌 무장 게릴라 단체인 크메르 루주(Khmer Rouge)가 1975년 4월 미국의 비호를 받던 캄보디아의 우파 군사정권을 몰아낸 후 3년 9개월 동안 집권하면서 저지른 집단학살을 말한다.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사상에 심취했던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당시 전체 인구 800만명 중 1/4에 해당하는 200만여 명을 학살하라고 지시했다. 크메르 루주는 가족을 해체하고 교육·화폐·종교를 없앴으며, 도시를 폐쇄하고 집단농장을 만들었다. 당시 이에 반대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로 처형됐으며, 단지 안경을 쓰거나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형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크메르 루주 정권의 만행은 이후 영국의 롤랑 조페 감독이 1985년 만든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영화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지금도 캄보디아 전역에서는 당시 숨진 사람들의 집단 무덤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탑도 세워져 있다.
훈 센이 이끄는 CPP, 7·29총선에서 하원 125석 싹쓸이
캄보디아는 지금까지도 그 추악한 역사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29일 실시된 캄보디아 총선의 결과를 보면 킬링필드의 공포가 캄보디아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훈 센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의 후보들이 하원 전체 125석을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총선을 실시할 경우 아무리 집권 여당이라고 해도 의회의 모든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집권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이 모든 의석을 싹쓸이 했다는 것은 캄보디아가 독재국가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총선 결과를 볼 때 과거 크메르 루주의 철권통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첫 총선은 1993년 오랜 내전이 끝난 뒤 유엔의 주관으로 치러졌다. 이후 지금까지 여섯 차례 총선이 실시됐지만 집권 여당이 모든 의석을 차지한 적은 이번 총선이 처음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집권 여당 후보들을 이길 만한 19개 군소 정당의 후보들이 없었다. 그 이유는 훈 센 총리가 제1야당을 강제해산하면서 사실상 집권 여당의 총선 완승 여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훈 센 총리는 지난해 11월 강력한 경쟁 세력이자 제1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CNPR)을 외부 세력과 결탁해 정부 전복을 시도한다며 강제 해산하고 켐 소카 당 대표를 반역죄로 구금했다. 훈 센 총리는 또 캄보디아구국당 소속 의원들을 비롯해 정치인 118명에 대해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게다가 군소 정당들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대부분 급조되거나 정치적 기반이 약한 세력들이다. 군소 정당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운동조차 하지 않았다.
훈 센 총리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언론에도 재갈을 물렸다. 훈 센 총리는 그동안 자신과 정부를 비판해온 언론 매체들을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훈 센 총리의 지시로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해 9월 반정부 신문인 <캄보디아 데일리>에 630만달러(70억원)의 세금을 물려 폐간을 유도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또 지난 5월 정부를 비판해온 <프놈펜 포스트>에도 390만달러(44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 신문사는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되자 경영권을 친정부 인사에게 넘겼다. 캄보디아 정부는 소셜미디어에 정부 비판적인 글을 올린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을 ‘가짜뉴스’를 단속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잡아들였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번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28일에는 17개 독립 온라인 언론들에 대한 인터넷 접속도 차단시켰다. 그런가하면 캄보디아 정부는 군과 경찰 병력을 동원해 대규모 시위진압 훈련을 실시하는 등 이번 총선을 앞두고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했다. 심지어 티 바인 캄보디아 국방부 장관은 “군인과 가족들은 캄보디아인민당에 투표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사람들이 죽게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총선 결과에 대해 국제사회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형적으론 민주 선거였지만 실제로는 여당의 승리를 만들기 위한 비민주적인 엉터리 선거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이번 총선 결과를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제재 조치를 내리고 경제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이번 총선은 캄보디아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결함투성이인 이번 총선은 캄보디아 헌정 사상 최대의 민주주의 후퇴 사례”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캄보디아 정부에 경제지원 중단과 제재조치 방침도 밝혔다.
유럽연합도 “캄보디아 총선은 진정한 경쟁이 부족했으며, 포괄적인 정치 과정이 부재했다”면서 “이번 선거는 캄보디아 유권자들의 민주주의 의지를 대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호주 정부도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캄보디아 국민과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훈 센 총리를 ‘독재자’로 부르면서 “독재자와 함께 샴페인을 마시지 말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에 망명 중인 캄보디아구국당의 지도자 인 삼랭시 전 대표는 “결과가 이미 정해진 엉터리 선거였다”며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평화적인 저항을 촉구했다.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있는 무 속후아 캄보디아구국당 부대표도 “2018년 7월 29일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면서 “국제사회는 이번 선거 결과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력한 1당 체제 아래 종신 집권 가능성 높아져
훈 센 총리는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1당 체제 아래에서 앞으로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2023년까지 캄보디아를 총치할 훈 센 총리는 아시아에서 최장기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다. 훈 센 총리는 지난해 9월 앞으로 10년간 더 권좌를 지킬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지금까지 볼 때 훈 센 총리에 대항할 인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종신 집권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장수 독재자가 될 수도 있다.
훈 센은 1951년 캄보디아 남동부 캄퐁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캄보디아를 식민지배한 프랑스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대원이었다. 훈 센은 초등학교를 마친 후 13세 되던 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수도사 학교에 입학했다. 19세이던 1970년 크메르 루주에 가입한 훈 센은 1975년 미국의 비호를 받던 론놀 군사정권과의 전투에서 왼쪽 눈을 잃으면서도 충성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훈 센은 론 놀 정권을 몰아낸 크메르 루주 정권이 자신의 아버지와 친척들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처형하자 1977년 베트남으로 탈출했다. 이후 베트남군의 지원을 받아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이 덕분에 훈 센은 28세라는 나이로 외무부 장관이 됐으며, 부총리를 거쳐 1985년 34세로 당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됐다. 훈 센은 1991년 파리 평화협정 체결을 주도해 캄보디아 내전을 공식 종결했다. 하지만 훈 센은 1993년 5월 총선에서 패배, 제2총리로 밀려났다. 이후 훈 센은 1997년 쿠데타를 일으켜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의 아들인 제1총리 라나리드를 국외로 추방시켰다. 훈 센은 1998년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이 승리하자,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이원집정체제를 단일총리체제로 바꾸고 새로운 총리로 취임, 캄보디아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이후 2003년, 2008년, 2013년 총선에서 캄보디아인민당이 승리하면서 총리직을 계속 수행해 왔다. 특히 지금까지 모두 33년째 집권하고 있는 훈 센 총리는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친중파 지도자다.
훈 센 총리는 그동안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경제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캄보디아 경제는 중국의 대대적인 투자에 힘입어 상당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중국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형 수력발전소 2기를 지어줬고 3기를 추가 건설하고 있으며,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건설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따라 캄보디아 시아누크항 경제특구 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대거 진출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50억달러를 투입해왔는데 이는 캄보디아 전체 외국 투자액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프놈펜의 경우 중국 건설업체가 시공한 고층빌딩이 대거 들어서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만 20만명이 넘는다. 중국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프놈펜 신국제공항도 조만간 건설될 예정이다. 특히 앙코르와트 등 주요 관광지들은 중국 관광객들로 만원사례다. 지난해 캄보디아를 다녀간 중국인 관광객 수는 무려 120만여 명이나 됐다. 이 때문에 주요 관광지에서는 위안화가 주로 통용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2020년까지 중국인 관광객이 200만명을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양국의 교역 규모도 가까운 시일 내에 6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강력한 비호로 철권통치 … 권력 세습 움직임도
중국 정부가 그동안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 센 총리를 적극 포용해온 이유는 미국을 견제하고 동남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특히 캄보디아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에서 중국에게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총선에 대해서도 “훈 센 총리와 캄보디아인민당(CPP)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보여주는 선거 결과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훈 센 총리는 그동안 아세안정상회의 등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중국의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해왔다. 훈 센 총리가 중국 정부를 대변해온 이유도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자신의 권력과 철권통치를 보장하고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지원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훈 센 총리는 앞으로 자신의 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할 계획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다. 훈 센 총리에게는 아들이 세명 있다. 장남 훈 마넷(41)은 캄보디아인 최초로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인물로 뉴욕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합참의장 직무대행 겸 육군사령관 직무대행과 총리 경호부대 및 대테러부대 사령관을 맡고 있으며, 지난 6월 대장으로 진급했다. 차남 훈 마닛(37)은 국방부 소속 군 정보부 사령관이자 캄보디아인민당(CPP)의 감찰국 부국장이다. 삼남 훈 마니(35)는 현직 하원의원이자 캄보디아 인민당의 청년연맹연합 대표다. 중국 정부는 훈 센의 권력세습 계획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아무튼 훈 센 총리는 앞으로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세습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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