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9-Bridge 전략,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성공스토리 쌓아야 2018년 9월호
특집 | 새로운 협력, 상생의 대륙으로! 신북방정책 돋보기
9-Bridge 전략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성공스토리 쌓아야
성원용 /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제3차 동방경제포럼 참석 차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지난해 9월 6일 극동연방대학교에서 극동지역의 산업 현장과 경제 잠재력 및 한‧러 협력 방안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
2018년 9월 11~13일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4차 동방경제포럼이 열린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극동을 방문, 신북방정책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한·러 경제협력의 전략적 방향과 관련하여 소위 ‘나인브릿지(9-Bridge)’를 표방한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났다. 과연 나인브릿지 전략이 어디쯤 와있는지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자.
지난해 9월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극동지역을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이끌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언급함으로써 러시아의 극동개발 정책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표명하였고 “러시아가 추진하는 극동 개발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가 한국”이라며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당시 최대이자 최우선 목표는 신뢰회복이었다. 과거처럼 듣기 좋게 떠벌리는 ‘말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극동개발부에 대응하여 한국에서도 청와대 직속의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하고 신북방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중심적 역할을 부여할 것이라 약속했다. 러시아는 우리 측의 진정성을 이해했고, 신북방정책에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다. 절반의 성공이다.
‘9-Bridge’ 전략 천명 1년 … 평가는 정확해야 한다
한·러 경제협력에서는 소위 9-Bridge를 설정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협력의 대상을 남발해왔던 과거와 달리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 보다 명쾌하게 협력의 전략적 범위를 규정한 것은 분명 진일보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평가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실제 9-Bridge로 언급된 분야(△가스 △전력 △조선 △북극항로 △철도 △항만 △일자리 △농업 △수산)라는 것이 그야말로 새로운 협력 의제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일부에서는 기존의 협력 분야를 단순하게 병렬적으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니 뉴스거리도 아니라고 했다. 한·러 협력이 왜 부진했는지 그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뜬구름 잡는 식으로 이것저것 두서없이 나열하는 데 그쳤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비판적인 관점이 9-Bridge로 열거되었던 각각 사업의 비실효성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각각의 협력 대상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은 크다고 공감하고 있었다. 아마도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했던 논자들은 9-Bridge 의제가 창의적이지 못했고, 발상의 전환이 없는 구태의연한 사고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많은 한·러정상회담 뒤에 발표한 공동선언문이든, 언론발표문이든,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종합세트로서의 전형을 보여준 ‘한·러 경제통상 협력 확대를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2005년 11월 19일)이 여러 형태로 재현되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체결한 ‘한·러 행동계획’은 이전과 비교하여 매우 진일보한 조치이기는 했지만, 그 이름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행동(Action)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것은 사실상 ‘선언’(Declaration)에 가까웠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왜 그랬을까? 물론 일차적으로 중대한 몇몇 사업들이, 특히 북한의 영토를 통과하는 남·북·러 3각협력 차원의 인프라 사업들은 북핵위기가 고조되면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와 달리 의도하지 않았던, 이른바 NATO(No Action, Talk Only)의 사태를 낳고 말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러 3각협력의 유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실행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사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념의 차이를 떠나고 정치적 지향과 진영논리를 떠나서 거의 모든 정권이 지루할 정도로 많고 많은 협력 범주를 ‘화려한 수식어’로 나열하는 것에만 몰두했지, 단 하나라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념’이 바뀌어도 ‘행태’는 잘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들에게 관료주의는 금물이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꾸며놓은 수많은 협력 의제들이 반복적으로 강조되지만, 실상 현실에서는 단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어 왔다. 대중들의 피로감은 누적되고, 불신은 더욱 깊어져 왔다.
또한 이러한 사태를 낳게 된 것에는 양국의 관료들이 모든 것을 한 장의 문서에 담아내려는, 그야말로 말의 탑을 쌓으려는 욕망이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중요한 것은 ‘행동계획’이나 ‘로드맵’이 아니라, 분야별 후속작업과 사후점검임에도 이 부분은 경시되었고, 오로지 MOU 체결과 투자실적 규모를 부풀리는 것에만 몰두했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선언문과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러 정상선언문은 뻔한 수식어로 협력범주를 무한대로 나열하는 지루한 문장이 되고 말았다.
성과 시간 걸려 … 경제 실리와 전략적 이익 꼼꼼히 따져야
그래서 오히려 9-Bridge 의제는 단순 명쾌해서 좋았다. 지금은 9개 분야에 집중하겠으니 최소한 이것만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의지로도 읽혀졌다. 물론 9-Bridge의 운명이 과거의 부정적인 행태를 반복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지만, 전략적 협력 대상을 선명하게 적시하는 효과는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국내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은 2016년 5월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의 회담에서 극동지역 개발 8개 우선협력 분야(△정주하기 편리한 깨끗한 도시 개발 △중소기업 간의 교류 및 협력 확대 △인적교류 확대 △의료 △러시아의 산업 다각화 및 생산성 제고 △극동지역 산업진흥 및 수출기반 개발 △첨단기술 협력)를 제안했다. 결국 우리는 일본보다 하나를 더 얹은 꼴이 되었다. 사실 우선협력 분야가 하나 더 늘어난 것에 고무될 필요는 없었다. 일본과 한국이 제안한 우선협력 분야를 비교해보면, 일본의 협력 대상(목표)이 보다 정교하게 기능적으로 다듬어진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산업별로 단순하게 협력 분야를 나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지금 9-Bridge는 어디쯤 와있는가? 일부에서는 도대체 지금까지 9-Bridge 중 무슨 성과가 있느냐고 비난하고 있다. 결국은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도 과거 이명박 정부의 ‘신(新)실크로드’ 담론이나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처럼 헛된 구호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진실의 일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또한 부당한 측면도 존재한다. 지금 9-Bridge의 구체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첫째, 9-Bridge 중 상당 부분은 과거 남·북·러 3각협력의 틀에서 논의되었던 협력 대상이다. ‘철의 실크로드’로 표현되는 TKR-TSR 연결은 물론이고, 남·북·러 가스관 연결, 남·북·러 송배전망 연결 등 소위 초거대 프로젝트로 언급된 사안들은 미래 한·러 경제협력의 잠재력을 과시할 수 있는 중대한 사업이지만, 전면적인 사업 착수는 ‘북핵 문제’를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판’이 열리고 있으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9-Bridge 사업의 속도감과 실행력은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
둘째, 9-Bridge 중 핵심 사업이 한반도 통합인프라 네트워크 구축과 직결된 사업이고, 그것이 철도, 가스, 전력 등의 인프라 사업인 이상 경제적 타당성 조사부터 시작하여 인프라 완성 및 정상 운영까지는 장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당장 성과를 요구하는 것부터가 비상식적이다. 더구나 한반도 통합인프라 네트워크 구축은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접경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주변 국가들의 각축전 속에서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 통일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면, 조급하게 실행을 재촉하기보다는 경제적 실리와 전략적 이익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 등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와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9-Bridge 협력 사업을 가속화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기업의 대러 극동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의지는 강했는지 모르지만, 한국 기업들이 느끼는 제재의 장벽, 세컨더리 보이콧 공포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위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협력은 쉬운 분야부터 … 규모 작다고 경시하면 금물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신북방정책 구상을 굳이 9-Bridge, 혹은 9-Bridge+α라는 프레임에 가둘 것이 아니다. ‘전략적 우선 협력’만 바라보다 실리를 놓칠 수가 있다. 협력은 실현 가능하고 쉬운 분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규모가 작다고 얕볼 것이 아니다. 북방시장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편견을 깨고, 하나씩 성공스토리를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 극동 비즈니스의 새로운 유망주로 떠오른 양식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선도개발구’등 외국인 투자유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규모 가공공장 설립,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호텔 등 관광인프라 리모델링 사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고를 진전시켜야 한다. 러시아 극동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스마트시티나 스마트농장 건설도 중요한 아이템이다.
둘째, 남·북·러 3각협력과 한·러 협력에 대한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지금은 한·러 양자협력에 집중하고, 상황을 봐가며 북핵위기 해소 시점에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면 남·북·러 3각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자칫하면 과거처럼 한·러관계를 북한 문제에 귀착시켜 고유한 한·러 경협 의제 발굴에 태만할 수도 있고, 적기를 놓쳐 양자관계의 거대한 경협 잠재력을 무력하게 소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투-트랙’ 동시병행 전략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남·북·러 3각협력 채널의 주도권을 러시아 중심에서 한국 중심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과거 남북이 직접 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러시아가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북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남북의 이익이 직접 반영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사업을 논의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남·북·러 3각협력의 본격적인 착수에 앞서 전문가 중심의 남·북·러 3국 공동연구단을 구성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탐색한 뒤 제재해제 국면을 준비하는 단계적 협력이 필요하다.
넷째, 신북방정책에서 핵심은 금융 원활화다. 최우선적으로는 투자 리스크 해소 및 자금 조달 원활화 등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차적으로 미국의 대러제재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러제재가 잠재적 투자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것과 실제 투자 장벽으로서 작용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이것을 좁히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편의적으로 미국의 제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수세적 변론에 급급하지 말고 출구를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기업들도 ‘지레 겁먹고’ 대러 경협을 회피하기보다는 현재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기업들이 제재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투자 행태를 면밀히 분석하여 이를 기초로 우회 투자 혹은 투자 허용 범위의 확대를 도모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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