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라운지 | 국군 개혁, 어떻게? 1970년대 美 육군 사례를 보자 2018년 11월호
독자 라운지
국군 개혁, 어떻게?
1970년대 美 육군 사례를 보자
김한수 / 육군종합군수학교 정작장교

지난해 3월 1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스코필드 육군기지에서 미국 육군 장병들이 정글전술 훈련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
본 칼럼은 1970년대 미국 육군 듀푸이(William Depuy) 장군에 의해 주도된 개혁운동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군의 매커니즘 강화에 있어 발전방안과 협력의 기여를 고찰해 볼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즉각임무대비태세를 위한 한국군 체계 개선에 있어 시행착오 최소화를 위해서는 선행된 사례연구 분석이 필요하며, 이 중 듀푸이 장군에 의해 주도된 미국 육군 개혁운동이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1968년 베트남전 이후 미국 육군은 침체기로 접어들며 정치 및 군 지도자들로 하여금 군비개혁을 위한 계획발전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요구되었다. 당시 듀푸이 장군을 중심으로 소수의 고위 장군과 젊은 장교들이 토론 및 연구를 통해 1976년 『FM 100-5(작전요무령)』을 출간하였다. 특히 결정적 시간과 장소에서 수행되는 수많은 개별적 과업들을 통합 및 협조시키는 지휘통제수단으로서 ‘지휘관 작전 개념’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듀푸이 장군, 『FM 100-5(작전요무령)』에 개혁안 담다
미국 육군개혁은 1973년 중동전쟁의 교훈에 따른 미국의 교리, 조직, 장비, 훈련기술, 그리고 미래 전장환경 대체 등의 개혁목표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듀푸이 장군의 주도로 의식 있는 고위 장군 및 그들을 보좌하는 젊은 장교에 의해 연구 및 공론화 되어 왔고 듀푸이 장군이 리더십을 맞이하면서 1976년 『FM 100-5』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지시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군의 신뢰회복과 위기관리를 통해 개혁의 완성도가 점차 발전되어 왔다.
1973년 7월 육군 교육사령부(TRADOC)가 창설되고, 듀푸이 장군이 초대 사령관으로 보직되면서, 미국 육군개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그는 교리 및 리더십 개발에 중점을 두고 개혁을 주도하게 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대적으로 더 조직화 되고, 잘 훈련된 상대국에 비해 정예화 되지 못한 군대가 무모하게 희생되는 것을 통감하였다. 30년이 지난 후 그는 육군의 전투능력과 리더십에 불만을 표출하고 개혁의 실질적인 선봉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당시의 미국 육군은 베트남전의 혹독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교육훈련 방법을 과거와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암기식·주입식 교육이 대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실전적 전투기술 및 작전수행 방법 숙달이 요구되었다. 특히 1973년 중동전쟁 시 장차 대량살상 전투의 위험성이 현실화되면서 듀푸이 장군으로 하여금 육군의 행동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그는 “An army must train as it fight!(실전과 같이 훈련하라!)”라는 슬로건으로 교육훈련으로부터 개혁을 시작하였다.
주요 개혁 추진방안으로 ▲국립훈련센터(NTC) ▲부사관 교육체계 개선 ▲고등군사과정(SAMS) ▲『FM 100-5』 교범 출간 등이 있다. 특히 극실용주의자였던 듀푸이 장군은 “교리란 이를 수용하는 군인들 중 적어도 51%의 지지가 없다면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동전쟁을 통해 미래전 양상을 고민하였는데, 이스라엘과 과거 독일이 적의 활동 전 순간적으로 압도적인 화력을 자유로이 구사하여 적을 마비시켰던 교훈을 적극 반영하였다.
이러한 개념의 『FM 100-5』는 발간 이후 미국 육군 역사상 최대의 교리발전 논쟁을 야기시켰으며, 몇 가지 측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그 중 듀푸이 장군이 새롭게 주창한 적극방어(Active Defense)의 개념은 미국 정서와 맞지 않게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군 평론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적에 대한 이해 ▲전장 관찰 ▲결정적 시간과 장소에 집중 ▲제병협동전투 ▲방자의 이점 확대 등을 중점으로 교리화 하였다. 『FM 100-5』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수적 우세의 적과 대규모 기갑전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력 배양에 있는 것이다.
교육훈련 패러다임 전환 … “실전 같이 훈련하라!”
1973년 중동전쟁의 여파는 초대 교육사령관 듀푸이 장군으로 하여금 미국 육군의 작전수행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와 페러다임 전환을 요구하였다. 이렇듯 한국군에게는 북한의 비대칭 전략, 동북아 안보 변화를 고려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 육군 개혁의 산물인 『FM 100-5』의 핵심 논지는 한국군의 현대전 적용에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을까.
미국 육군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1970년대 중반 당시에는 각개 전투원의 실전적 교육훈련은 앞서 언급함과 같이 국립훈련센터(NTC)를 통해 반복적인 훈련과 사후검토를 통해 전투능력과 생존성이 급격히 향상되는 성과를 도출하였다. 그러나 개혁에 있어 핵심가치 중 하나로 추구하였던 지휘관 및 참모들의 작전수행 방식 능력배양 문제가 해결될 필요가 있었다. 1984년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CGSC)에서 발행된 『미국의 첫 전투들(Americans First Battles)』에서는 “육군은 이제까지 전투준비가 제대로 안된 병사들뿐만 아니라 야전의 대규모 부대지휘에 적절치 못한 사단 및 군단장들을 포함한 고급장교들 때문에 모든 전쟁의 초기 전투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라고 분석하였다.
따라서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부오노 장군은 고급지휘관들과 참모진들에게도 NTC와 같은 교육과정을 부여하는 워게임을 수행하는 BCTP를 강행하게 된다. 이후 걸프전 종전 시 제24사단장 매카프리 소장은 100시간 만에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 요인에 대해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는 단 100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15년이 필요했다”고 소회를 밝히게 되었는데, 이는 베트남의 절망에서부터 중동전쟁까지 직·간접적인 전쟁교훈을 통해 각개 전투요원의 전투기술 숙달에서부터 작전수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육군의 모습을 한마디로 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육군 개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강력한 리더십과 함께 모든 제대의 작전수행 과정 발전 등 현실적 실천방안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미래지향적 교훈으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군 및 정치지도자들의 건전한 개혁의지가 있어야 하고, 군 내부적으로 조직기반을 근거로 한 지지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개혁방안이 제시되어야 하며,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문 집단의 구성과 지속성 유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개전투력과 전술제대까지 상호흡수하는 제도 마련 절실
지금까지 한국군은 창군 이래 수차례 개혁을 시도하면서 대체로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으나, 지휘구조 및 실무계선이 1∼2년 단위로 순환되는 조직특성상 단일계획에 대한 업무의 지속성 유지가 힘든 구조로 정책의 연속성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따라서 전문체계 구성과 법적 근거가 뒷받침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앞서 언급된 작전수행 과정을 위한 전술적 제대의 역할은 군단급 이하에서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신속하고 유연한 조치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전투지휘 훈련을 활성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
미국 육군은 ‘미국만의 방식(민주주의)’으로 광범위한 의견수렴 및 개혁의지를 통하여 지속성 있는 추진방법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해 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혁적이고 헌신적인 장교단이 이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혁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서는 국가안보태세 확립 차원에서 전략지침 수립과 함께 적합한 실무진을 구축함으로써 지속적인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우리 육군은 그 실질적 이행을 위해 개혁의 본의가 손상되지 않도록 연속성을 가지고, 각개전투원의 전투력 발휘에서부터 전술적 제대까지 상호흡수되는 정치적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 스스로의 의식개혁 역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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