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막장에서 돌아온 남편, 살아남았다 2018년 11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93
막장에서 돌아온 남편
살아남았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북한 정권은 무속을 부인하며 무속인들의 활동을 제압한다. 그런데 인간 삶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생각도 못할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며 그것을 예측하고 풀어내는 사람도 있다. 신통방통이란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함경북도 명천군 칠보산리에 그렇게 명석한 예언을 하는 노파가 있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명천지구에 살았던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한때 그곳 주민들 속에 은밀하게 퍼져 모여 앉으면 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명천탄광과 고참탄광과 같은 큰 탄광만이 아닌 작은 중소탄광들이 줄줄이 들어앉은 함경북도 명천지구는 말 그대로 탄광지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탄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탄광마을에 볼 일이 있어 나왔던 무속인 노파가 탄광주택이 밀집된 어느 집에서 물 한 그릇 얻어먹고는 바가지를 넘겨받는 젊은 안주인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었다.
“당신 남편 오늘 저녁에 죽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저녁 당신 남편이 죽는다”고 했다. 여인이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묻자 “남편이 지금 저녁 교대로 갱에 일 나갔지?”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명이 거기까지니 어쩔 수 없어”라고 하며 마치 건너 집 강아지가 죽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자는 안달이 났다. 못 들었으면 모를까, 그러한 말을 듣고 무심하게 넘길 수는 없었다. “저, 할머니. 무슨 방책은 없겠습니까. 제발 알려주세요. 예?”라며 노파에게 사정했다. 이윽고 노파는 “방도가 있긴 한데, 해볼라나? 보통 일은 아니야”라고 한다.
“아이고 참, 남편이 죽는다는데 내가 뭘 못하겠어요?” “정말인가? 아니야, 보아하니 얌전하게 생긴 것이 못해. 너는 못해”라며 돌아선다. 여자는 안달이 났다. “해요. 무조건 합니다. 한다는데 왜 그래요. 예?” 그러자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뭐라 웅얼웅얼하다 번쩍, 눈을 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녁 5시경에 소낙비가 올 테니 그때 옷을 모두 벗고 지붕에 올라가 5분간 빨간 수건을 흔들며 춤을 추라고 했다.
여자는 너무 황당해 “뭐라고요? 창피하게 그것을 어떻게 하나요!”라고 펄쩍 뛰자 노파는 “그것 봐라, 내가 너 못한다고 했지? 그런데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해. 할 수 없지. 난 가네”하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여자는 상상만으로도 창피해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눈을 떠보니 노파는 훨훨 춤추듯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때는 오후 4시 반쯤 되는 시간이라 여자는 두 근반 세 근반 못 견디게 뛰는 가슴을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아주 화창한 날이다. ‘내가 귀신에게 홀렸나?’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출입문을 열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온 잠시 후, ‘번쩍’하며 번개가 치고 이어 ‘콰르릉’ 우레가 울었다. 여인은 놀라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늘의 계시를 받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신통한지, 그와 함께 노파가 실없는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인은 급히 거울 앞에서 옷을 벗었다. 이 상황 자체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남편을 잃게 과부가 된다. 그러잖아도 탄광막장에서 붕괴사고가 잦아 마을에는 젊은 미망인들이 득실득실했다.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깟 5분만 마당도 아닌 지붕에서 춤추는 것이 뭐가 대수냐’, ‘남편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으냐’ 누가 그렇게 질책하는 것 같아 여자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쏟아지는 소낙비 덕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여자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 붉은 카프라 수건을 휘저으며 춤을 추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겠지? 없을 거야. 비 내리는 소리뿐, 개미 한 마리 없었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여인은 옷을 입고 저녁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문이 벌컥 열리며 일터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섰다. ‘밤 12시가 되어야 들어오는 저녁교대인데 어떻게 일찍 왔을까?’ 여자가 깜짝 놀라 생각하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유심히 보며 다가온 남편이 아내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그 다음 “정신은 온전한 것 같은데, 여보 왜 그랬소?”라고 묻는다. “뭘?” “비 오는데 지붕에 올라가 춤췄다며?” “아니 당신이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낮교대 사람들이 갱에서 나오다 그걸 보고 막장에 전화로 내게 알려줬소. 그래서 이렇게 뛰쳐나온 것이잖소. 무슨 깃발처럼 빨간 수건까지 흔들며 알몸으로 춤을 췄다던데, 정말이요?”
남편 나가고 곧바로 막장 붕괴 … 23명 작업자 전원 사망
이럴 어떻게 하나. “아, 창피해. 나 이제 어떻게 해요?” 아내가 자초지종을 고하자 남편은 분개했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가슴에 새긴 새세대 청년이 어찌 그따위 미신 노파의 말을 믿고 경솔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며 아내를 질책했다. 잘못했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아내는 용서를 빌었다. 남편이 입을 쩝쩝 다시며 돌아앉자 급히 밥상을 차렸다. 기왕 막장에서 나온 김에 저녁식사를 들고 가라는 말에 남편도 어쩔 수 없이 상에 다가앉으며 “그것 참, 낮교대 녀석들 구경거리 생겼다고 좋아했겠네”라고 놀려댄다. 여인은 “뭐라고요? 당신은 참!”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겼다.
한창 식사를 이어가는데 옆집 사람이 기척도 없이 벌컥 문을 열었다. 바로 낮교대 탄부였다. 그가 전한 말을 듣고는 부부는 머리끝이 쭈뼛 섰다. 남편이 갱을 나간 이후 조금 뒤 채탄 막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나 23명의 교대성원 모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와 함께 다급히 막장에 들어와 시신수거 작업에 동참한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진정으로 아내에게 감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신묘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상황에 대해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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