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11월 6일

한컷 속 북한 | 평양의 외국인 2018년 11월호

한컷 속 북한9

평양의 외국인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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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비단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인간이 구성하는 국가 역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국운의 순항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각 나라들은 공공외교와 국가 홍보에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 외국인들이 자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도록 노력한다.

주체와 자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타국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북한 역시 외국인의 시선을 의식해 왔다. 아니, 어쩌면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외국인의 시선과 참여에 신경 써왔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부터 외국인의 모습은 북한 신문과 방송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였다. 중요 행사를 앞두고 평양을 찾는 외국인들은 <노동신문>을 통해 기념사진 형식으로 공개된다. 이를테면 ‘쿠바 공산당 대표단이 공화국 창건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였다’는 식의 사진설명과 함께 등장하는 식이다.

사진의 구도는 평양공항에 도착한 외국 대표단이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서 있는 천편일률적인 형식이다. 이런 사진 수십장이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물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것은 ‘우리도 국제사회의 다양한 세력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강변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보도 속 외국인 이면에는 정상국가 호소 메시지?

북한은 또한 외교관이나 대표단 인사들을 등장시키는 방식 이외에 일반 외국인을 등장시켜 자국의 체제와 문화를 정당화하려는 노력 역시 꾸준히 이어왔다. 외국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거나 시민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국가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1년부터 매년 4월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기념하며 ‘만경대상 국제마라톤’을 열고 있다. 평양 시내를 4시간가량 통제하며 외국인들이 도로를 달리도록 하고 그 화면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라톤 대회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국인을 초대한 국제대회는 존재한다.

북한 매체에 외국인이 등장하는 것은 체제선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4년 6월 30일 발간된 북한의 화보 잡지 <등대>에 실린 독자 투고 사진 몇 장을 예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흠모의 노래를 부르며 : 유럽인이 화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진>, <선군조선의 미래 : 군복을 입은 채 경례하는 어린이를 안아주는 40대 백인 여성>, <불멸의 꽃 김일성화에 매혹되어 : 금발의 백인 아가씨가 김일성화에 코를 대고 눈을 감고 있는 사진> 등이다.

더욱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들과 소통하려 하고 있다. 지금은 유엔의 경제재재 여파로 외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줄어든 상태이지만 국제사회를 향한 북한의 움직임은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김 위원장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미 정상회담을 마쳤고,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올해 안에 만날 기세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방북 초대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국가 이미지 홍보에 나선 것은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AP>는 2012년 1월 16일 서방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했다. 같은 해 3월 15일에는 뉴욕에서 “북한의 창”이라는 주제로 <AP통신>과 북한 <조선중앙통신>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활용해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김정은 시대, 외신과 SNS 통한 이미지 홍보 확대

현재 평양에는 <AFP>와 중국의 <신화통신>, 일본의 <교도통신> 등의 지국이 있다. 중요 행사가 있을 때면 미국의 <CNN>, 영국 <BBC>,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 스페인 공영방송 등이 초청받는다. <노동신문>은 원래 외국에는 발행 1주일 후에나 전달됐지만, 2011년 2월 17일부터 PDF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종이 신문을 받아 볼 수 없는 외국 독자들도 인터넷을 통해 당일 치 신문을 바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 불법 사이트로 등록되어 있어 접속이 쉽지 않음) 북한은 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 국가 홍보에 열심이다. 여기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친절하게 영어로 자막이 붙거나 더빙이 되어 있다.

남북한 화해 무드가 형성되고 있는 2018년.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서는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과 주변 열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 10월 초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을 꺼내고 유럽 각국도 실질적 비핵화 진전 없는 대북 교류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게 됐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지난 10월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던 화정평화재단 월례강좌에서 “비핵화 문제는 남북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주변 열강들의 양해와 도움 없이 과연 ‘우리민족끼리’ 평화가 가능한지 물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자주 상태에 대한 열망이 크지만 현실은 이해관계자들 속에서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하는 게 우리 민족의 운명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평양의 외국인, 서울의 외국인은 그래서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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