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法 통일LAW | 「사회주의상업법」, 북한의 경제관을 엿보다 2018년 11월호
북한法 통일LAW
「사회주의상업법」
실질적 북한의 경제관을 엿보다
최은석 / 전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북한은 1992년 1월 29일 「사회주의상업법」을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 제13호로 채택했다. 이후 1999년 1월(1차), 2002년 5월(2차), 2004년 6월(3차), 2008년 3월(4차), 2010년 5월(5차) 개정까지 총 다섯 차례 손질했다. 이와 같이 법 개정이 자주 있었다는 점은 북한 사회에서 상품 확보와 수요에 대한 공급의 변화 및 상품의 분배와 공급계약에 대한 법과 현실의 괴리감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장마당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근래에 와서는 종합시장이 공식화되는 상황에서 상업활동의 제도와 상품유통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현행 「사회주의상업법」은 총 9장 89개 조문으로 되어 있는 비교적 짧은 법이다.
「사회주의상업법」 속 상업, 우리의 개념과는 본질적 차이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은 북한의 기존 「민법」과 더불어 상업적 관계를 일부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남한 「상법」의 입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상업법」을 통해 그 유통질서 및 상업활동을 아는 것은 북한 경제질서를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은 다른 법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이념에서 떠날 수 없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법률관에 의하면 법 자체가 독자적으로 있을 수 없고 경제관계의 종속변수에 불과하지만, 스탈린주의적 법률관에 의하면 위의 관점과는 별개로 법이 계급투쟁과 국가관리의 수단으로서 그 유용성이 인정된다.
우선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이 규율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사회주의상업은 시장경제체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이 규율하는 상업은 국가가 인민들에 대한 공급을 책임지고 이를 실현하는 사업이며, 그 주체는 국가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상업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상업의 발전 방향과 활동원칙들이 규정되기 때문에 사회주의상업이 인민들에 대한 공급사업이라고 규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의 상업은 시장경제체제 아래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원료공급자와 생산자, 도매상과 소매상 등 다양한 경제주체 사이에 재화의 전환을 꾀하거나 서비스의 제공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과는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고, 시장경제체제 아래 상업에 필수적인 이윤 내지 영리의 목적이 없으며, 상업의 주체는 기업인 개인 상인이나 회사 등이 아니라 국가 자신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은 「사회주의상업법」 제1조의 규정에 사회주의상업 본질에 대한 규정으로서 사회주의 사회의 본성에 맞는 완전히 독창적인 규정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주의상업은 과도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급제’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법률과 같이 ‘헌법→법률→명령→규칙→조례’ 등 법의 상하관계에 대한 규정이나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국가를 이루고 있는 이상 국가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헌법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북한 「헌법」과의 관계에서 「사회주의상업법」은 그 헌법의 하위에 위치한다. 북한에서 「민법」은 재산관계에 대한 민사적 규정에 관한 기본 법률이고 상행위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상법 내용에 해당하는 것들이 일부 「민법」 편에 수용돼 왔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최근 개정되고 있는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이 생산, 유통, 매매, 보관, 운송 등 우리의 실질적 의의의 「상법」 대상이 되는 사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더욱 의미 있게 여겨진다.
「사회주의상업법」 제1장은 기본원칙을 담고 있는데, 인민에 대한 공급사업이며 물질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업이 사회주의상업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상업활동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상품유통을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을 입법 목적으로 제시했다(법 제1조). 상품공급에서 지켜야 할 원칙으로서는 주문제의 채택, 일원화 상품 공급체계 및 상품공급계획의 준수 등이 규정되어 있다(법 제2조 참조). 주문제는 한 나라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서 인민들의 수요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며, 상품의 계획적 분배를 실현하기 위한 상품공급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상업법」은 국가의 봉사혁명을 강조하고 있다. 즉 국가는 봉사혁명을 힘 있게 벌려 상업의 조직과 기술, 봉사방법을 개선하고 상업시설의 현대화, 경영활동의 과학화를 실현하며 상업의 문화성과 봉사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규정했다(법 제4조). 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7장과 제8장에 규정되어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상업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사회주의상업 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에 따라 상품유통 사업을 강화 및 발전시켜 조건이 성숙되는대로 점차 완전한 공급제로 이행하려고 하고 있다(법 제6조 참조).
北 상업 부문에 대한 지도통제 기관 수차례 변경해
북한은 상업 부문 사업에 대한 지도통제 규정으로 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업 부문에 대한 지도사업과 감독통제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규정했다(법 제80조). 이와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것은, 지난 2002년 구법에서 상점이나 식당, 편의봉사기업소를 운영하려는 기관, 기업소, 단체는 중앙상업지도기관의 승인이 필요했으나, 2004년 개정법에서는 해당 상업지도기관의 영업허가를 받는 것으로 승인기관의 지위를 낮췄다. 그러다가 2010년 현행 개정법에서 다시 중앙상업지도기관의 영업허가를 받는 것으로 승인기관의 지위를 다시 높였다. 이와 같이 당초 규정대로 되돌아온 것은 중앙상업지도기관에서 상점, 식당, 편의봉사망을 운영하려는 각 기관들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당국의 강한 의지를 엿보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북한 「사회주의상업법」의 특색을 보면, 이에 상응하는 우리의 「상법」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우선 상업의 주체에서 사기업이 배제되어 있고 국가가 이를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상업은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기업에 관한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우리의 「상법」과 다르며, 기업의 주체에서 사기업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진다.
다음으로 북한의 상업에는 이윤추구 내지 영리의 목적이 없다. 이것은 국가가 생산과 분배를 독점하는 데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이지만, 영리를 향한 개인의 창의성과 부지런함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능률성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또한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은 상업에 있어서의 문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경제체제 아래 상업이 편리성, 소비자의 취향, 원가의 절감 등에 대한 고려에 의해 지배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또 북한의 「사회주의상업법」은 경제주체 간의 거래에 필요한 조직이나 활동 및 권리의무를 중심으로 하여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원칙이나 희망을 선언하는 프로그램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관계기관에 대한 지시나 명령 등 행정법규의 성격을 가지는데, 이것 역시 우리의 「상법」이 기업주체의 조직과 활동을 규율하는 사법에 속하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흔히 우리는 ‘자본주의의 꽃은 주식’이라고 한다. 북한에 우리의 「상법」에 규정되어 있는 주식이 발행되고 주식시장이 형성되기까지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정답이 없는 건 아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명료해진다. 앞으로 북한법에 대한 적시적 분석을 통해 올바른 북한 이해와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북한 주민들에게 민심을 얻고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영리활동을 통해 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되고 부지런함을 활용한 능률성을 높이는 것이 본래 상업법이 갖는 기본정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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