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12월 3일

Uni – Movie | 버려짐과 송환길에 뿌려진 상흔 … 전쟁이 낳은 아이들 2018년 12월호

Uni – Movie | <폴란드로 간 아이들>

버려짐과 송환길에 뿌려진 상흔

전쟁이 낳은 아이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20181203_095532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교사 간의 이야기를 담은 추적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얼개는 남과 북 두 여자가 함께 폴란드에서 과거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서로 간의 상처를 보듬고 공감하는, 소리 없이 묻힌 남북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주연은 탈북 여성인 이송과 추상미 감독이다.

이 다큐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2006년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김귀덕>이다. 이후 2013년 책으로 발간된 『천사의 날개』를 통해 폴란드에 머물렀던 한국전쟁 고아의 실상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아직도 폴란드의 한적한 공동묘지에 자리 잡은 ‘김귀덕’의 묘지 역시 당시의 상황을 대변한다. 묘비에는 “김귀덕 Kim Ki Dok 13년의 생을 살았고, 1955년 9월 20일 세상을 떠났다”라고 폴란드어와 한국어로 병기되어 있었다.

한국전쟁 고아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확인한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로의 여정을 결심하고 영화제작에 나섰다. 또한 다큐멘터리에 분단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치유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탈북여성 이송이 동행했다. 이 다큐 영화에서는 폴란드 여정을 통해 한국전쟁 고아들의 삶과 이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친혈육 이상의 사랑으로 감싸 안은 폴란드 교사들의 따뜻한 훈기가 느껴진다.

줄거리

영화는 추상미와 이송, 남북한 두 여성의 폴란드 여정 준비과정에서 시작한다. ‘폴란드의 아이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추상미 감독은 탈북 청소년과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오디션장에서 만난 이송을 염두에 둔다. 드디어 폴란드를 향한 여정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두 사람. 영화는 마치 두 여성의 폴란드 테마여행과도 같이 그려졌다.

폴란드에 도착한 추 감독과 이송.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미 폐역이 되어 수풀이 무성한 바르샤바의 한 기차역이었다. 67여 년 전인 1951년, 바로 이 역 객차에는 똑같은 얼굴을 한 한무리의 동양 어린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플랫폼으로 마중 나온 폴란드 교사들. 훗날 교사들은 당시 아이들은 전부 같은 옷과 얼굴을 한 굳은 표정의 어린이들이었다고 기억했다. 이미 전쟁의 상흔을 경험했던 폴란드인들이었기에 낯선 나라에 도착한 한국전쟁 고아들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있던 터였다.

한국전쟁 고아들이 폴란드에서 머물게 된 곳은 프와코비체 양육원. 이곳의 교사들 상당수가 이미 전쟁을 경험한 전쟁고아 출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폴란드 교사들은 한국전쟁 고아들에게 아저씨, 아주머니, 원장, 교사 등의 호칭 대신 ‘아빠’, ‘엄마’라 부르도록 하며 이들이 갖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데 주력했다. 폴란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악기 등 다양한 학습을 시켰고 동년배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경험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폴란드 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아이들도 전쟁의 상처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영화의 전개는 주로 추상미 감독과 이송이 과거 폴란드 프와코비체 양육원에서 근무했던 교사들과의 면접, 폴란드 국영 TV에서 방영된 영상의 편집으로 진행된다.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이미 80세를 훌쩍 넘어버린 교사들의 얼굴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바로 1959년 1,500명의 전쟁고아들이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는 부분에서다. 눈물의 이별을 뒤로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에게서 한 통, 두 통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는 예상치 못했던 이별로 인한 아이들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이들의 편지에는 이미 북한에 도착해서 학교에 진학한 아이도 있었고 벌써 작업장에 나가 일한다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다시 폴란드로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편지 내용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들이 폴란드를 그리워한다는 것과 북한에서의 생활이 폴란드만 못하다는 것이다. 유제프 보로비에츠 양육원 원장은 자신에게 오는 한 아이의 편지를 보고 아이에게 처벌이 생길 것을 우려해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편지는 돌아간 지 2년째인 1961년까지 지속되다 일제히 중지됐다. 북한 당국이 편지왕래를 막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현재의 폴란드 바르샤바로 돌아온다. 1951년 폴란드로 온 아이들이 내렸던 폐역에는 잡목만 무성한 채 정적이 감돈다.

감상포인트

이 영화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한국전쟁에 묻혔던 역사를 발굴했다고 평가된 것이다. 또한 전쟁고아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온 공로로 받았다. 영화제 당시에도 주목을 받으며 티켓 예매 2회차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반 영화관 상영에서는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추상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출산 이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실화가 ‘남의 일’같지 않게 눈에 들어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민족의 상처, 전쟁과 분단의 상처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했다.

다만,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남북 전 지역에서 보내진 아이들이라고 말하며 전쟁 후 이들을 찾은 것은 북한의 김일성뿐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멘트가 나오는데, 이에 대한 것은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점령지 고아들을 임의로 폴란드로 보낸 후 북한으로 일괄 귀환시킨 김일성의 행동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1959년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송환된 시점은 북한에서 ‘천리마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청소년기에 접어든 고아들이 많았기 때문에 ‘노동력’ 차원에서 북한 당국에서는 이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고아들이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이후 몇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외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대사 또는 영사가 되어서 폴란드에 다시 갔거나, 교수가 됐거나, 혹은 평범한 노동자로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귀환 이후의 이야기는 그리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서 이들의 삶에 대한 것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큐 영화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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