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한반도 대전환 시대 … 정쟁에 앞서 사실관계 확인! 2018년 12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한반도 대전환 시대
정쟁에 앞서 사실관계 확인!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올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차례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 체결되면서 남북 간의 교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하기 하기 위한 회담과 북한의 산림녹화회담, 보건회담, 남북항공회담 등이 이어지고 있고 제재 상황에서 남북한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남북군사합의서가 채택되고 이행이 이뤄지면서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 위한 남북 군사 당국 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진전하면서 이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기 위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한반도 상황은 복잡함을 더하는 모양새다. 역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이른바 ‘퍼주기’ 망령의 재림이다. 정부는 내년 남북협력기금 사업비를 올해보다 1,385억원 증액한 1조977억원으로 편성했다. 남북 교류협력 촉진과 민족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핵심 예산이다. 정부는 특히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 사업 등이 포함된 남북경제협력 프로그램 예산을 4,732억원으로, 올해보다 1,598억원 늘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이후를 대비했다. 또한 산림협력 등 민생협력 지원(4,513억원), 이산가족교류 지원(336억원), 사회문화교류 지원(205억원) 등의 예산도 일제히 증액했다.
되살아나는 ‘퍼주기’ 망령, 진실은?
이를 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예산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은 북한 핵폐기 로드맵도 나오지 않았는데 ‘대북 퍼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정쟁을 피할 수 없겠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남북협력기금 사업비가 2017년, 2018년을 제외하고 항상 1조원대였던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남북협력기금을 1조1,181억원으로 전년보다 137억원 늘렸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조치로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을 중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사업비를 1조153억원으로 9% 줄이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6년 1조2,550억원까지 늘어났다가 북핵 사태 영향으로 2017년 사업비가 9,587억원으로 감액됐다.
더욱이 남북협력기금은 쓰지 않을 경우 적립되는 게 아니라 국고로 반납된다. 과거 정부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매년 1조원대 사업비를 조성해온 것은 남북관계가 갑자기 활성화될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협력기금의 논란뿐만 아니라 경제협력에 대한 비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과연 필요한 조치인지에 대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선 현 정부는 대북제재가 존재하고 이를 위반하면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북한 철도 공동조사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 군 통신선 연결 등 남북 간 협력사안 마다 미국과 논의하고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판정을 받아 실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비판론자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받아 이뤄지는 경제협력사업마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비핵화가 종료된 이후에 과연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진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자본들이 미지의 땅을 향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저개발 지역에서 위안화의 위력을 떨치고 있고, 일본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면 100∼200억달러에 달하는 청구권 자금에 대해 공장을 지어주는 등 경제협력 방식으로 제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상상해보자. 비핵화가 이뤄지고 북한이 신의주에서 평양을 지나 개성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현대화를 위해 공개입찰을 한다면 과연 한국의 기업은 얼마만큼의 경쟁력이 있을까? 작은 규모지만 철도 공동조사를 하고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해 병충해를 방지하며 북한 주민들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제재를 유지하면서 이뤄지는 남북 간의 협력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남북 군사합의, 심각한 안보위협인가?
남북 간 군사합의와 그 이행에 대한 비난도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 아닌지의 지적을 낳는다. 예비역 장성 수백명이 참여해 조직한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모임’은 지난 11월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남북군사합의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발제문을 통해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는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전혀 진전이 없음에도 더 중요한 우리의 안보태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공격용 무기는 줄이고 감시정찰을 확대한다는 군비통제의 초보적 원칙도 위배해 군사적 안정을 더 위태롭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 생존을 담보하고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군사분야 합의서 보완, 한·미동맹 약화 방지, 국방개혁2.0 전면 수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연 그럴까? 우선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판문점이 상생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남북 초소와 병력·화기 철수 작업이 10월 25일 완료되어 도끼만행 사건으로 JSA 무장화 조치가 취해진 지 42년 만에 비무장 상태로 전환됐다. 초소와 병력·화기 철수가 철수됐고 남·북·유엔사 3자는 공동검증을 통해 이 지역의 비무장화를 확인했다.
이어 JSA 남북 지역에 각각 남·북 초소교차 설치 작업이 이뤄진다. JSA 북측지역 ‘판문점 다리’ 끝점에 남측 초소가 설치되고, 판문점 진입로의 우리 측 지역에는 북한 측 초소가 새로 들어선다. 이들 초소 설치가 완료되고 판문점에서 경비수칙이 만들어지면 남북 민간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JSA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유엔사가 삼각형으로 테이블을 배열하고 마주 앉아 논의하는 모습은 달라진 한반도 정세를 보여주기 충분하다. 사실상 미군인 유엔사까지 참여해 이뤄진 이행이다.
11월 1일부터 남북은 지상·해상·공중 완충구역에서 포사격과 기동훈련, 정찰비행 등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했다. 군사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이날부로 지상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km 안의 구역에서는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부대의 야외기동훈련을 하지 못한다.
해상은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에서 북측 남포 인근 초도 이남까지 135km를 해상 적대행위 중단수역(완충수역)으로 설정했다. 이 수역에서는 해안포의 포문을 폐쇄하도록 했다. 북한은 이 수역 일대 해안에 130mm(사거리 27km), 76.2mm(사거리 12km) 등 250~300여 문의 해안포를 설치했다. 일부 지역에는 152mm(사거리 27km) 지상곡사포(평곡사포)도 배치했다.
공중에서는 서부 지역의 경우 MDL에서 20km, 동부 지역은 40km 안의 지역에서 정찰기와 전투기의 비행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서부 지역 10km, 동부 지역 15km 안에서는 무인기 비행도 금지된다. 우리 군은 군단급 부대의 무인정찰기 운용이 일부 제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한이 포사격 훈련 중단에 합의했지만, 남측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훈련을 한다. 하지만 북측은 여러 사정으로 이러한 활동이 쉽지 않다. 실제로 해병대는 백령도와 연평도에 각각 20여 문, 10여 문 배치된 K-9 자주포에 대해서는 훈련 기간 중대급 단위(6문)로 육지로 빼내 무건리 사격장에서 4~5일 가량 사격훈련을 하고 복귀하는 ‘장비 순환식 훈련’ 계획을 마련했다. 일정 거리에 대한 정찰 중단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남측의 정찰 자산은 그 거리에 진입하지 않아도 정찰이 가능하고 북한은 불가능하다. 북한의 군은 까막눈이 된 셈이다.
여기에다 북한이 11월 20일 오후 3시께 시범철수 대상인 10개의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를 폭파 방식으로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남북한이 합의한 GP 시범철수도 이뤄졌다. 남북 양측은 당초 폭파 방식으로 시범철수 대상 GP를 완전히 파괴하기로 했지만, 남측은 DMZ 환경보존과 작업 인원의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굴착기를 동원한 철거 방식으로 변경했다. 남측도 굴착기로 철거하기 어려운 일부 GP 시설물은 폭파 방식으로 제거했다. 예컨대 지난 11월 15일 강원도 철원 지역 중부전선에 있는 전방 GP(감시초소)의 경계근무 용도 상부구조물은 폭파 방식으로 철거했다.
남북은 시범철수 대상 GP 중 각각 1개를 보존하기로 했다. 원형이 보존되는 남측 GP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 설치된 동부전선의 동해안 GP다. 과거 369 GP로 불렸던 이곳은 북측 GP와 580m 거리에 있다. 이 조치에 대해서도 마치 한국의 전방 방어망이 뚫린 양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북한은 GP로 이뤄진 1선 방어망을 가진 반면 남한은 GP-GOP-연대급 부대로 이뤄진 3선 방어망을 가졌다.
GP 철수로 북한은 DMZ 후방에 새로 부대를 설치해야 하지만 남한은 GOP-연대로 구성된 2선 방어망을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방어력에서 우위에 서게 된다. 남한의 경제력과 그동안 사용해온 국방비와 군사대비태세 등을 감안하면 남북한이 상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군비통제 과정에서 남쪽이 손해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 군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과 동의어일 뿐이다.
미국과 갈등? 한·미동맹에 균열?
일각에서는 남북교류 과정에서 미국과 갈등이 있고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날 남북군사합의서 내용과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이다. 군사합의가 너무 앞서갔다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불만이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매우 다르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 남북정상회담(9월 18∼20일) 전날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40분간 남북군사합의서 관련 질문을 쏟아냈다. 강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유엔사 및 미국 군 당국과의 회의를 50차례 넘게 했다”고 설명했고, 내부적으로 확인을 거친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에게 3시간 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 “잘못됐다. 오해가 풀렸다”고 바로잡았다.
실제로 남북군사합의서를 발표하기 전에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유엔군사령부(유엔사) 및 미 군 당국과 50여 차례 회의를 하는 등 한·미 당국 간 충분한 소통을 거쳤다. 결국 이 사안은 사실 한·미 간의 소통 부재에서 발생했다기 보다는 미국 내 부처 간 소통 부재에 기인한 결과였다. 유엔사를 관리하는 미국 국방부가 국무부에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면서 폼페이오 장관이 관련 상황에 대한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이유였던 셈이다.
사실 남북관계에 대한 정치적 충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퍼주기’, ‘안보위협론’, ‘한·미동맹 균열론’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어져온 보수 진영의 중요 담론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인천 아시안게임과 북한 고위급 3인방의 방남, 고위급회담을 통한 8·25합의 등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한국 모든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다.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정부를 불문하고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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