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로정희, 실을 튕겨 진달래를 피우다 2014년 1월호
박계리의 스케치25 | 로정희, 실을 튕겨 진달래를 피우다
수예작품이다. 화사한 개나리 꽃잎의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개나리의 꽃말 ‘희망’처럼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고단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금 희망을 꿈꾸길 바란다.
화면 안의 노란색 개나리꽃은 진달래꽃의 붉은 기운으로 더욱 선명하게 노란색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꽃잎들이 달려있는 줄기를 따라 시선을 천천히 옮겨보자. 생명의 기운을 느끼면서 천천히 시선을 옮겨보자. 아래로 쳐지다 다시 위로 솟아오르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는가.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어 올리는 가녀린 줄기들도 따라 가보자. 봄바람에 살랑이듯 춤추듯 하늘거리는, 그렇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줄기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상해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북한 수예작품들이 기술적인 면에서 워낙 뛰어난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기법적인 놀라움 이전에 화면의 구도와 색채, 선의 흐름과 면처리에서 오는 화면의 조형성에 먼저 감탄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의 조형성이 눈에 띄는 이유는 그녀가 사용하는 독특한 기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예작품을 제작한 로정희는 자신만의 수예기법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 하나가 공식수라는 기법이다. 공식수 기법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면으로 보고, 모자이크식으로 놓는 장식수 기법이다. 수예작품이라고 하면 선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화면에 선의 맛이 강한데 비해, 로정희의 수예는 작품 속 진달래꽃에서도 알 수 있듯 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이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힘은 바로 여기서 온다.
또한 로정희는 탄력 기법도 사용하고 있다. 이 기법은 수예실을 당겼다가 놓으면서 작업하는 것으로 실의 탄력성에 의해 수예의 윤택성을 극대화 하는 효과를 낸다. 탄력 기법은 꽃의 화사함을 표현해내기에 적합하다. 평면적인 조선화, 유화와는 달리, 수예실의 두께 때문에 화면의 바탕 위로 자연스럽게 생기는 화폭의 두께감과 더불어 수예작품만이 갖는 사실성의 깊이를 얻게 한다.
작가 로정희는 1965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를 졸업하였고, 이후 평양학생소년궁전의 수예 교사로 활동했다고 알려진다. 평양학생소년궁전 교사라는 위치는 미술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기 때문에, 그녀가 수예를 가르친 학생들이 이후 평양미술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 이들이 성장하여 자연스럽게 만수대창작사 및 각 창작기관에서 수예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러한 역할을 인정받아 1993년에는 공훈교원의 명예를 얻게 되었다.
수예실의 탄력성 이용해 화사한 꽃 이미지 표현해
로정희는 일찍부터 작품성도 인정받아 1964년에 이미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89년에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미술전람회에서 1등상을, 1990년에는 제11차 아세아미술축전에서 특등상을 수상하는 등 지속적인 성과를 냈다. 이러한 성과를 이룩한 배경은 아마도 그녀가 수예의 원화를 스스로 창작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수예가였던 점이 주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 시간 수예작품을 감상할 때 언급한 바 있듯 남북한 모두 수예작품은 그 도안을 화가들이 만들어주거나, 화가들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밑그림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 감상하는 〈개나리와 진달래〉는 〈7폭의 꽃병풍〉 작품 중의 한 폭이다. 이 꽃 병풍의 중앙에는 김일성화가 놓여 있다. 작품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북한 사회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김일성화가 병풍 가운데 가장 크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병풍은 잘 알다시피 접어서 보관해야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북한의 꽃 병풍이 시선을 붙잡았던 첫 번째 이유는 가운데 가장 크게 배치하면서도 김일성화가 접히지 않게 하기 위해 새롭게 틀을 디자인한 병풍의 모습 때문이었다. 북한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제작된 북한식 병풍 양식이라는 점에서다.
그녀의 뛰어난 작품이 우리에게 또 다른 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아들이 지난 연재 중에 소개한 바 있는 선우영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 남북 미술교류를 통해 국내에서 스타작가로 부각된 선우영. 그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냈는지 그의 어머니의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상상해보게 된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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