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청작기 | 아는 거라곤 분, 연지, 눈썹연필뿐… 2014년 2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55 | 아는 거라곤 분, 연지, 눈썹연필뿐…
남한에 온지 언젠데, 나는 아직 화장품 이름을 잘 모른다. 원래 화장품에 관심이 없지만, 때로는 내가 너무 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직도 스킨, 로션이 무엇인지 잘 구별을 못한다. 백화점에 가면 1층에 주로 화장품이 있던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치곤 한다. 그나마 알고 있는 화장품이란 크림, 분, 연지, 향수, 눈썹연필 정도인데 이것도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 남쪽에서도 사용하는 말인지 아니면 외래어로 부르는지 그것도 모른다.
화장품이 1백만원짜리? 얼마나 더 예뻐질까
화장품을 들고 살펴봐도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다. 게다가 화장품도 남자용, 여자용 따로 있다는데 그건 진짜 못 가린다. 북한에 살 땐 남자용, 여자용을 몰랐다. 아니, 있긴 있었는데 나만 몰랐는지 모른다. 화장품 가격도 놀랍다. 상표와 병모양만 같고 속에 든 내용물은 같은 종인 것으로 보이는데 가격 차이가 많이 다르다. 1만원대가 있는가 하면 1백만원도 넘는 것이 있다. 도대체 1백만원짜리를 바르면 얼굴이 얼마나 더 예뻐지는지 감을 못 잡겠다.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다. 사람은 원래 관심이 절실한 쪽을 먼저 배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아내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보다 뒤늦게 남한에 온 아내, 이제 서울 생활 2년이 넘었다. 그런데 진짜 화장품 공부가 안 돼 있다. 비싼 건지 싼 건지 별로 개의치 않고 생기는 대로 바른다. 나처럼 둔한 건가.
하기야 북에서도 아내는 그랬다. 화장품 욕심을 내는 걸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북에 있는 처제가 들으면 발끈할 말이지만 아내보다 덜 예뻐 보이는 처제는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처제는 화장품을 잘 챙겼다. 그걸 아내가 뺏거나 훔쳐내 쓸 때가 종종 있었다. 화장하는 스타일도 아내와 처제는 달랐다. 아내는 화장을 옅게 하는 편이고 처제는 진하게 했다. 그래서 화장을 너무 천박하게 하지 말라는 핀잔도 들었다.
가지가지 복잡한 화장법 … 北에선 “일은 언제하고!”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북한 여성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화장을 옅게 하고 웬만하면 하지 않고 지낸 것은 살림살이를 걱정해서였다. 왜 여자로 태어나 좋은 화장품을 쓰고 싶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유가 없었을 뿐, 그런데도 멍청한 나는 “당신은 원래 얼굴이 예뻐 화장 따윈 대충 해도 돼. 못 생긴 여자들이 화장에 신경 쓰는 거지.”하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말에 아내가 대꾸는 없었지만 속으론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라고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리고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해 얼굴에 “떡칠”을 했다는 평을 듣던 여성들도 화장품이 좋고 다양했더라면, 또 화장을 잘하는 비법을 알았더라면 정말 예쁜 얼굴로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남쪽에 와 살면서 오고 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살결이 하얗고 예쁘다. 지하철에서 백인인 외국 여성과 나란히 앉은 한국 여성의 얼굴을 비교해 보면 한국인이 더 백인처럼 보일 때가 많다. 북한 여성들보다 영양상태가 좋아 피부가 좋아진 면도 있겠지만 화장품이 그만큼 따라주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정도가 세계 최고라고 들었다. 과연 그런 것 같다. 어떤 여성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는데 반나절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먼저 기초화장이라는 것을 하고, 그 위에다 무슨 화장을 또 하고, 또 하고 한다는데 하여간 단계가 가지가지 복잡하단다. 북한 같으면 “일은 언제하고! 굶어죽기 한창이겠다.”는 핀잔을 듣겠지만 말이다.
얼굴 화장뿐 아니다. 손톱, 발톱에 색을 칠하고 귀고리, 목걸이, 반지 등으로 장식하고 다닌다. 거기다 가방은 또 어떻고. 여성용 가방이 수백만 원짜리, 심지어 수천만 원짜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지 오래지 않다. 일부러 백화점 명품코너에 가봤는데 사실이었다. 무엇을 담는 용도로 쓰이는 게 가방인데 그렇게 비싸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그 돈이면 자동차도 사겠다. 비닐봉지에도 물건은 담을 수 있는데 말이다. 가방 이름도 딱 한 가지만 기억난다. “루이ㅇㅇ”이라 했던가. 그걸 들고 다니면 못생겨도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명품 볼 줄 아는 눈엔 멋져 보일 수 있을 테니 폼 잡는데 효력이 있겠다.
아무튼 한국은 여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다. 그런데도 어떤 나라들과 비교하며 아직 한국이 멀었다는 얘기가 간혹 들린다. 어느 정도면 여성에게 천국일까. 나의 부족한 상상력으론 가늠이 안 된다. 언제면 북한 여성들도 남한 여성들처럼 외모 가꾸기에 열광해도 좋을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될까. 통일이 되면 그 때 가야 가능할까.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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