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3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미녀의 부탁 2014년 3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37 | 미녀의 부탁

함경북도 청진시는 100만이 넘는 인구가 사는 큰 도시다. 국가적 식량공급이 단절된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청진 사람들은 대부분 시장을 통해 식량을 구입해 생계를 유지한다. 청진에서 가장 활성화된 시장은 아마 수남구역에 있는 수남시장일 것이다. 수남시장 정경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이곳에는 북방의 유일한 경제개방 도시인 나선을 통해 들어오는 물품과 중국, 러시아 일본 제품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로 차고 넘친다. 또한 청진시민들이 들고 나오는 여러 가지 식품과 일용품, 공산품도 가득하다. 물론 정당한 거래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 구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성행하는 것은 수많은 사기와 범죄라고 한다.

“아저씨,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어요?”

얼마 전 수남시장에서 자전거수리공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탈북하여 입국한 변씨를 만났다. 여러 이야기 도중 그는 재북 당시 한 미녀 아가씨 때문에 당한 봉변을 회고하며 씁쓸히 웃었다. 몇 해 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그날도 변씨는 시장구석에 자전거 수리 기구들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곱게 차려 입은 한 아가씨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다가왔다. 옷만 고운 것이 아니라 얼굴 또한 예쁘기 그지없었다. 저절로 헤벌쭉 벌어지는 입으로 가는 침까지 흐르는데 목소리 또한 은방울 굴리듯 했단다.

자전거 상인이 그녀의 이모부?

TB_201403_60 “수고해요, 아저씨.” 다가 온 여자가 빙긋 웃기까지 하자 변씨는 심장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어요?” 하며 아가씨는 새 자전거를 사야겠는데 자기는 볼 줄을 모르니 매장에 가서 어떤 것이 좋은지 수수료를 낼 테니 한 번 봐 달라고 한다. 다른 거면 몰라도 자전거는 그의 전문이라 알겠다고 대답하고 곧바로 매장으로 아가씨를 데리고 갔다. 매장이라 해봐야 시장 한 옆에 자리를 잡고 자전거 상인들이 여러 종류의 자전거들을 놓고 파는 곳이다.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일본산 자전거를 손에 쥐고 쓸 만한가 하고 여자가 물었다. 변씨는 ‘저거 값이 되게 비쌀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요. 그럼 내가 한 번만 타 볼게요.”, “그래, 그렇게 해보라구.” 변씨는 아무 생각 없이 그리 말하며 손을 저었다. 자전거 상인도 그리하라며 부추긴다. 여자는 좁은 공터를 왔다갔다 해보다가 조금 더 시험해보려는지 시장 골목으로 나와 달린다. 그때까지만 해도 변씨는 여자가 넓은 곳에 가서 자전거 성능을 검사해 보려는 줄로 알고 히죽 웃기만 했다. 그러나 웬걸. 시야에서 사라진 아가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 30분 정도 기다려 보고서야 변씨는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자전거 상인은 변씨보고 어서 돈을 내라고 독촉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는 그냥 자전거 봐 주러 따라온 것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걸 믿어줄리 만무했다. 자전거 수리를 종일 해봐야 하루 두 끼 식구들 밥상에 시래기죽이나 겨우 올려놓는 변씨 처지에 수백만원씩 하는 외제 자전거 값을 물어줄 수 있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이러한 경우 보안서에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사기사건이다 보니 보안서에서도 시끄러워 그런 건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라며 엉덩이를 차 내쫓기가 일쑤다. 이후 변씨는 억울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여기저기 빚을 내 부인 몰래 자전거 값을 물었다.

그런데 충격은 그 이후에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뒷조사를 시작했는데, 그 사기꾼 여자가 평양 어느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고 방학에 이모집에 놀러왔다가 자전거 상인인 이모부와 짜고 그런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을 때 변씨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당장에 주리를 틀려고 자전거 상인을 찾았지만 이미 그마저 자취를 감춘 뒤였다. 넓디 넓은 시내 어디에서 그 사기꾼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말을 마치며 변씨는 “그때 진 빚 때문에 더는 살 수가 없어 결국 탈북까지 했지만 돌아보면 참 내가 멍청했지요. 그쪽 동네에서는 수단 방법 따질 것 없이 그런 식으로라도 해먹는 놈이 결국 능력 있는 놈인데 말입니다.” 하고 개탄했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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