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가 숨 쉰다 | 흰꼬리수리야 여긴 어쩐 일이냐? 2014년 3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5 | 흰꼬리수리
흰꼬리수리야 여긴 어쩐 일이냐?
지난 겨울 정기 조류조사 때 서부민통선에 있는 초평도에 갔다. 초평도 상공에는 흰꼬리수리 6마리가 꼬리를 물듯 날고 있었고, 갯벌에는 7마리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갈매기들도 비정형적인 비행을 하는 모습이 하늘에 가득한 장면을 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내 눈을 의심하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몰랐다.
귀한 손님 방문에 반가움보다 걱정이…
예년과 다르게 서부DMZ일원에서 흰꼬리수리가 무려 13마리나 관찰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부터 18년 전인 1996년 1월 11일자 K신문 1면 하단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흰꼬리수리가 돌아왔다.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흰꼬리수리가 10일 제주도 서귀포시 해안에 나타났다. … 제주에서 월동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기는 78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흰꼬리수리는 이렇게 1면기사에 등장할 정도로 귀한 손님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이렇게 많은 흰꼬리수리가 모여 있는 걸까? 반가움보다 뭔가 알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였다. 멸종위기종Ⅰ급인 흰꼬리수리의 대규모 월동은 생태 환경이 좋아졌다고 호들갑떨 만한 일인데, 오히려 왜일까? 하는 의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흰꼬리수리는 환경부 멸종위기종Ⅰ급으로 지정보호하는 새로, 영어 White-tailed Eagle에서 볼 수 있듯이 성조가 되면 꼬리가 흰색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몸길이는 69~94cm로 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수리종이자 평균적으로 4번째로 무거운 수리종이다. 유럽지역에서 3천쌍 정도 서식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8천여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맹금이다. 흰꼬리수리의 세력권은 30~70km² 범위이며, 우리나라에서의 흰꼬리수리는 겨울철새로 주로 어류를 먹으며 소형 조류, 양서류, 파충류, 곤충류 등을 먹는다. 그래서 주로 한강과 임진강 하구, 시화호, 천수만, 낙동강 하구, 강릉 남대천 등지에서 관찰된다. 흰꼬리수리는 물고기를 주로 사냥해서 먹고, 잠수성 오리들이 물속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수면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덮쳐서 사냥을 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 안쪽의 자갈무덤이나 모래사장 강변등지에 앉아서 사냥감을 기다린다.
필자가 생태연구를 시작하던 어느 겨울, 임진각습지를 조사하던 중 흰꼬리수리 3마리가 공중에서 서로 싸움을 하더니 갑자기 임진강 얕은 곳에 쏜살같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한참을 날개만 퍼덕거리고 다시 날지를 않아서 그물에 걸린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 강 반대쪽에서 벌어진 일이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한참을 애태웠는데, 드디어 퍼덕거리던 날개를 활짝 펴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발에는 자신보다 더 큰 잉어를 잡아서 들어 올리고 있었다. 포말 같은 물보라, 역동적인 날갯짓, 잉어비늘의 번쩍임, 동료 흰꼬리수리의 먹이쟁탈공중전, 이런 모습으로 흰꼬리수리의 존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각인된 흰꼬리수리는 겨울이 되면 항상 임진각습지를 찾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겨울을 나는 흰꼬리수리는 이처럼 멋있는 모습이지만, 평소에는 독수리에게 주는 먹이를 얻어먹는 노숙자 같은 신세이기도 하다. 내륙지역인 철원평야, 충주, 아산, 안동 등지에서도 관찰되는 흰꼬리수리는 사람이 던져주고 간 독수리먹이 몇 점을 얻어먹다가 까치와 까마귀에게 쫓겨 다니는 부랑자를 연상케 해 처음 각인된 맹금의 포스와는 사뭇 다른 생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대강공사 여파, DMZ일원으로 피난?
흰꼬리수리는 해안, 소택지, 호수, 하구 등 넓은 수면을 낀 지역을 선호한다. 이점이 독수리와 검독수리와 다른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4대강공사로 습지 41%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피난오듯 DMZ일원으로 몰려든 것일까? 필자에게 반갑기보다 걱정과 염려가 더하는 것은 나의 예민함 때문인가? 아니면 멸종을 부추기는 인간들의 사변적 오류의 증거를 발견한 불편한 마음인걸까? 우리는 피난을 남쪽으로 가지만 멸종위기동물들이 종유지를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소도(蘇塗)같은 곳, 가슴 아프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인 DMZ로 몰려든다. 그래서 멸종위기 1급 8종, 멸종위기 2급 22종 등 무려 30종의 멸종위기동물들이 좁고 불편한 DMZ을 찾아온다. 지켜져야 할 텐데… 참 걱정이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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