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하모니카 부는 북한군, 왜 어색할까? 2014년 3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27 | 하모니카 부는 북한군, 왜 어색할까?
두 군인이 총을 놓고 쉬고 있는 그림이다. 하모니카로 울려퍼지는 음악은 뭘까? 모자를 푹 눌러쓴 옆 청년의 하얗게 머금은 미소가 우리를 궁금케 한다.
화면은 크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어두운 부분이 침울하지 않으며 밝은 부분도 따스한 햇살의 온기로 충만하다. 화면 오른쪽 끝부분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듯 화면 안에서 그림자들은 검은 빛을 하고 있지 않다.
태양이 비치는 야외에 서서 가만히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점심에 식사를 하고서 가벼운 산책을 하며 오랜만에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자. 어떤 색인가? 검은색인가? 회색인가? 머릿속에 밤하늘을 그려보고 무슨 색인지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검은 밤하늘을 띄운다. 그러나 저녁시간,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자. 여러분이 생각한 그 검은색이 맞을까?
〈전사들〉, 풍부한 햇빛 표현이 만들어낸 낭만적 분위기
자신이 관념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색을 예로 들어보자. 바나나는? 노란색이다. 사과는? 빨간색이다. 그러나 이런 개념적인 색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는, 지금 이 순간의 바나나의 색을 보자. 아직 노랗게 익지 않아서 초록색의 기운이 만연한 바나나이든, 너무 익어서 문드러질 것 같은 검은 빛의 바나나이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색이 바로 이 순간의 진실이고, 리얼리티라고 믿었던 사람들. 바로 인상주의 작가들의 생각이었다.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 순간의 색의 리얼리티는 실은 햇빛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노을이 물든 하늘 아래 세상은 어떤가? 만물이 붉은 빛을 머금듯이 변화되지 않는가.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의 옷이 햇빛이 작열하는 야외에선 회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네의 작품들로 대변되는 인상주의자들의 고민은 ‘리얼리티’였다. 이번 호의 작품 〈전사들〉의 화면에서도 인상주의자들과 같은 햇빛의 느껴진다. 그러나 모네에게는 시간에 따라 햇빛의 조도와 방향이 바뀜에 따라 보이는 대상의 색채가 변화하기 때문에 대상을 빨리 그려야만 하는 숙명이 있었다. 그래서 화면의 붓 터치들이 속도감이 있고, 거칠다. 당연히 대상의 덩어리감은 문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서 조철혁의 〈전사들〉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덩어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단단하다. 조철혁은 만져지는 형태의 리얼리티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인상주의풍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또한 총의 금속성으로 인한 미끈한 재질감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햇빛을 받은 인물의 얼굴 표면은 여러 보색들의 붓질이 거칠게 나열되어 있지만 이 작품에서 햇빛은 화면 전체를 낭만적 분위기로 감싸는데 더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 화면이 낯선 이유는 실은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선군시대 이후 우리에게 총을 한쪽으로 치우고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북한군의 모습은 왠지 어색하다. 선군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총’이다. 앞서 ‘무산지구승리기념탑’ 재건축의 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미술에서도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도상은 ‘총’이다. 남한의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북한의 모습에 어울리는 북한군의 이미지는 사람들을 처형하는 프랑스 군인들의 모습을 인간성이 없는 기계처럼 표현한 프란시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을 떠오르게 한다. ‘총을 든 기계화된 인간들’이란 이미지가 짙다. 그래서 조철혁의 〈전사들〉을 보면 낯설다. 때론 의심도 한다. 서로의 일상을 안다는 건,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멀고 이미지만이 도처에 있다. 그래서 위험하고, 그래서 더 낯설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