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초점 | 러시아, 크림반도 신속 합병 … 우크라이나 사태 앞날은? 2014년 4월호
시사초점 | 러시아, 크림반도 신속 합병 … 우크라이나 사태 앞날은?

지난 3월 18일(현지시간) 러시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실황 방송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주민들이 모여 시청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 반도는 언제나 러시아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였다.”면서 “크림은 러시아의 구성원이 될 것이며 강력하고 안정적인 자주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변경지대, 국경지역을 뜻하는 ‘오크라이나(Okraina)’에서 나라 이름이 유래된 것처럼 유럽과 러시아의 양대 세력이 충돌하는 교차로에 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은 13세기부터 몽골,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동쪽은 러시아, 서쪽은 폴란드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수도 키예프를 지나는 드네프르 강은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르는 지리·문화적 경계선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민족, 지역, 종교, 언어 측면에서 동서로 구분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인구 4,450만명 중 우크라이나인은 77.8%, 러시아인은 17.4%이며 크림반도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우크라이나인이 다수인 가운데, 대다수 러시아인은 동부지역(하리코프, 도네츠크)과 남부지역(크림반도)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중부, 북부, 서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 동남부에서는 러시아어가 주로 사용된다.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복잡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종교 분포인데, 서부는 주로 그리스-가톨릭교회, 동남부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 중서북부는 키예프 총대주교청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 등으로 나뉘어있다. 이러한 차이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오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크림반도 주민 97% 러시아 귀속 찬성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와 EU의 협정이 러시아의 압력으로 중단되면서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다. 2014년 3월 2일 러시아군이 사실상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서방국가의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대외적으로 서방국가와 러시아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동·서 지역과 민족 간의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크림반도는 18세기 말 오스만투르크와 치열한 전쟁 끝에 러시아에 병합된 이후 러시아의 부동항이자 남진정책의 거점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영토였다. 1954년 흐루시초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우정의 선물’로 주기 전이나 후에도 크림반도는 소련 흑해함대 기지였다. 하지만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러시아 흑해함대 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구를 우크라이나로부터 임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러시아가 정한 ‘레드 라인’이 바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라고 볼 때 크림반도의 중요성은 러시아와 서방 모두에게 있다. 서방국가들에게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억제할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러시아의 크림반도 군사개입 목적은 푸틴의 자국민 보호보다는 오랜 세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해 온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가치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도 푸틴 대통령은 유럽연합과 유사한,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라시아 연합’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인접한 우크라이나 내 민주혁명이 러시아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크림반도는 러시아에게 흑해로 나가는 항구이자 에너지 수송로이며,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항구 사용료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할인된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왔다.
그렇다면 크림반도 주민정서는 어떠한가? 주민정서는 소련 해체 이후 상황과 민족 분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소련 해체 이후 크림반도는 크림 의회 주도로 1992년 독립을 추진했으나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반대하여 자치 공화국으로 격상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크림반도 주민 중에서 58%가 러시아인이고 24%는 우크라이나인인 것이 불안 요소로 남아 있었다. 우크라이나 경제 상황 악화와 정치 불안이 더해지면서 러시아 군사개입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결국 지난 3월 16일 실시된 크림반도 주민투표에서 유권자 83%가 투표에 참여하여 97%가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 것에 동의했다. 크림 정부 악쇼노프 총리가 투표 참여를 독려하면서 크림이 러시아로 들어가면 생활수준이 높아진다고 약속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크림반도 주민들의 경제적 기대감도 러시아 귀속 찬성 이유였다.
이어 3월 18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주민투표 무효선언과 서방국가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 합병에 서명하였다. 푸틴은 크림반도 합병을 공식 선언하면서 과거 세르비아 내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하자 지지를 표명했던 서방 국가들이 크림 독립에 대해선 거부하는 이중성을 보인다고 비난했다. 다음날 3월 19일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푸틴 대통령의 크림 자치 공화국 합병 서명이 합법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1일 러시아 상원이 크림반도 합병 조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서 합병절차가 마무리되었다. 푸틴의 크림반도 합병 서명 후 서방 국가들의 비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G8에서 러시아 제외”, “신 냉전”이라는 표현들이 현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문제는 우크라이나 국내 상황, 우크라이나-러시아 관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서방국가-러시아 관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합병, 우크라이나 동부로 확대?
먼저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예컨대,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반정부 세력 지도자들 간 협력 문제, 국민 고통이 수반될 시급한 경제개혁, 우크라이나 사태로 더욱 심화된 동·서 지역 간, 민족 간 갈등 등 때문이다. 다음은 러시아가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고 현재 야누코비치를 보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푸틴이 “우리는 우크라이나 분열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가 크림에 이어 다른 지역도 합병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상황이 빠르게 안정되었을 때 현실화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러시아계 주민 다수가 거주하는 동부(하리코프, 도네츠크 등)에서도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이면에는 유럽대륙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EU와 EU의 세력 확장을 꺼리는 러시아, NATO의 동진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 크림반도 포함 우크라이나 사태는 향후 세계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신동혁 / 국민대 유라시아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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