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가 숨 쉰다 | 우아한 개리, 한강·임진강 하구서 사라지나? 2014년 4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6 | 개리
우아한 개리, 한강·임진강 하구서 사라지나?
최근에 와서 한반도에서 그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서 안타까운 철새가 있다. 바로 개리라고 하는 기러기목 오리과의 새다. 개리는 멸종위기동식물 Ⅱ급이며, 천연기념물 제325-1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개리는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9종의 기러기류 가운데서도 대형종에 속하여 몸 길이가 87cm 정도 되고, 몸무게도 3.5kg이나 되며, 얼굴·멱·앞목은 담갈색으로 뺨은 다소 오렌지색을 띤다. 머리꼭대기와 뒷목은 흑갈색이고 몸의 등쪽은 갈색이나 담색의 가로띠가 있다. 날 때는 고니와 비슷하여 1~5m를 달려가다 탄력을 받아야 날 수가 있고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도 고니같이 매우 우아하다. 그래서 개리의 영명은 Swan Goose로 불린다.
개리, 한강·임진강 하구서 격감 … 신도시 건설 탓
개리는 다양한 서식지를 이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하구, 갯벌 등의 대규모 습지에서 관찰된다. 습지의 뻘을 파헤치거나 논에서 먹이를 찾으며, 식물의 뿌리, 종자, 물고기, 무척추동물 등을 먹는다. 단독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무리를 지어 도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새섬매자기의 군락에 주로 먹이활동을 하고 있으며, 바로 한강·임진강 유역은 강 하구가 막혀있지 않는 유일한 기수역으로 새섬매자기의 군락이 잘 발달된 강이다.
한강·임진강 하구 지역은 개리의 최대 월동지 또는 중간 경유지로 이른 봄과 늦가을에 수백여 개체가 관찰되며, 금강과 주남저수지에서 소수가 월동한다.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를 이동하는 3~4월과 10~12월에 많은 수가 관찰되는데, 봄철에 관찰된 최대 개체수는 1998년 3월 7일에 기록된 1,858개체, 가을철에 관찰 최대 개체수는 1997년 11월 30일에 기록된 1,400개체이다. 1~2월 혹한기에는 아주 적은 수만 관찰되는데 이는 대부분의 무리가 중국의 월동지로 이동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에는 1,400여 마리, 2007년 875마리, 2008년 수십마리 등 성동습지인 비무장지대에서는 대규모로 월동하였는데 2009년부터 갑자기 이들이 안보이기 시작했다.
개리는 다른 조류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한국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새였다. 비무장지대인 성동습지의 수로를 따라 질펀한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장관을 이루었던 모습은 벌써 5년째 자취를 감추었고, 최근에 관찰되는 것도 봄철 2월~4월초까지 잠시 보이는데 그나마도 비무장지대에 있기보다는 문산습지 한 귀퉁이에 250~300마리가 이동기에 잠시 관찰되곤 한다.
1,800여 마리나 월동하던 개리가 5년새 이토록 격감한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10년 동안 조사관찰한 결과, 이는 개리가 좋아하는 서식지의 변화에 기인하다고 할 수 있다. 일산신도시개발에 이어서 교하운정지구 대규모택지사업과 김포의 신도시의 건설은 한강 하구의 생태적인 기반을 매우 빠르게 훼손하여, 예전과 같은 신비스러운 하구역의 아름답고 대단한 생태환경을 잃게 했다. 정주공간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당연하고도 필요한 사항이다. 그런데 사람만 사는 공간으로 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생물들과 공존의 삶터를 구성할 것인가는 철학적으로 높은 식견이 필요한 삶의 방법일 것이다.
생명의 순환법칙 벗어난 행위는 공공의 적
역사 유물은 대게 자연에서 사람이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인류문명의 발생, 유지, 번성도 자연사(自然史)의 흔적과 궤를 같이하고 있고,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류는 그 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은 모든 자연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의 순환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이로 인한 위기를 책임지지 않은 무책임성, 무윤리성, 반문명적인 일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다. 경제발전이라는 욕망은 생존의 인과관계를 잘 따져보기도 전에 자연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과연 인간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가? AI에 대한 대처와 사후 처리과정을 보면 동물들과 인간과의 관계는 매우 적대적이고 생명을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매우 불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간이란 생명체는 어떻게 그 종(種)을 유지하는가? 과학이 발달한 21세기 현대인류라 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단언하건대 없다. 인간이 아무리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도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법칙은 다른 생명들에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생명들 상호 간에 존재가 안정되어야 그 종을 유지하는 순환적인 생명법칙은 존엄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수많은 생명들의 서식처가 안전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의 범위를 넘어선 인간 생존의 절대적인 가치다. 어떤 정치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생명의 순환법칙을 벗어난 행위는 인류에겐 공공의 적일 뿐이다. 지금 이곳 한강·임진강 하구는 준설의 유혹이 강한 곳이며, 소위 평화공원의 후보지로 몸값을 올리고 있다. 개리는 따오기처럼 우리 곁을 곧 떠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리 같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이미 도달해있다. 생명의 존재법칙을 거스르는 똑똑한 사람들 탓에…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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