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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 임사준, 고려청자에 시대감성 불어넣다 2014년 4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28 | 임사준, 고려청자에 시대감성 불어넣다

〈화병〉, 임사준, 1985

〈화병〉, 임사준, 1985

북한주민들도 김홍도의 작품을 안다. 박물관에 가면 우리처럼 신윤복의 그림들을 본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쉽게 잊고 사는 일상의 한 면이다. 그들도 청자의 묘한 색채에 감탄하고 백자의 단아한 백색의 미에 경의를 표한다. 남과 북은 같은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전통이라는 것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른다. 흐르고 흘러서 청자는 그릇이 만들어진 고려시대를 지나 지금 우리 앞에 와 있다. 이처럼 전통이라는 것은 박물관 수장고 안에서 박제화되어 있을 때보다, 끊임없이 흘러야 비로소 생명을 갖게 되는 생명체다.

박물관에서 전통미술 작품들을 갖고 전시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관람자와 소통할 수 있는 전통을 호출해내 전시공간 안에 세워놓는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작가의 죽음과 더불어 역사 속에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다른 시대를 만나 종국에는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시대가 다른데 그대로 따라서야…”

남북한 모두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명품은 청자와 백자이다. 사실 청자와 백자가 만들어진 시기인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그저 그릇이었다. 이름 없는 무명 장인들의 협동작업으로 만들어진 멋진 그릇들이 시대를 넘어서 이젠 예술품이라 부른다.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후 불 속에서 구워 만들어진다. 불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통해 유리질화가 일어나는 기술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청자의 비색이 만들어지고, 단아한 백색의 백자가 탄생한다. 그릇 표면에 흰색을 칠해서 흰 백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청자와 백자를 만들기 위해 ‘기술’이 있어야 했다.

16세기, 전 세계에서 백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나라는 중국과 조선 그리고 베트남 정도였다. 그릇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유럽인들의 16세기 그림을 보면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귀족들이 접시 없이 음식을 잡고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럽인들부터 시작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릇 문화에 눈을 뜨게 되자 귀족들은 백자부터 찾게 되었다. 만들 수 없으니 전량 수입이 유일한 길이었다. 이처럼 그릇은 예술이면서 국가의 경제를 부흥하게 하는 유망한 산업이었다.

청자와 백자의 예술적 가치를 깨닫고 제조 기술을 현대까지 이어오도록 하기 위해 남북한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노력해왔다. 북한에서 활동한 대표적 작가는 우치선과 임사준이다. 지난 2012년 9월호에서 살펴보았던 것 같이 우치선이 사망하자 실제 그의 신체와 같은 비율로 제작된 조소작품을 통해 우치선의 위상이 대변되고 있다. 우치선의 작품은 전통을 복원해내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도자기 위에 문양을 그리고 장식을 하는 기법과 함께 전체적인 스타일 면에서도 전통 고려청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이를 재현해내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비해 임사준은 청자를 어떻게 현대화시킬 것인가에 자신의 작업을 집중했다. ‘김일성상’(1989년)을 받은 바 있는 임사준의 이야기는 자신이 전통과 현대 창작 간의 문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잘 들려준다.

“도자기는 시대의 역사적 산물인 것만큼 거기에는 당대 인간들의 사상과 정신적 요구가 뚜렷하게 반영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과거의 것을 맹목적으로 계승한다면 도자기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오늘의 시대는 우리시대 인간들의 감정과 정서를 반영한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도자기를 요구한다. 그러자면 공예가들이 무엇보다도 시대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주도적인 사상 감정과 정서를 심장으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예술에 이를 구현해내야 한다. 형태와 색, 장식의 3대 요소에서 현대적 느낌이 표현되어야 한다. 이것을 실현한 도자기 공예가는 참다운 예술가로 될 수 있다.”

청자를 지금 이 공간에 불러내는 작가의 생각과, 그 작가를 둘러싼 시대 사상과 문화에 따라 지금 만들어지는 청자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일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우린 남한과 북한에서 다르게 계승되고 있는 전통의 모습에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엇이 정통인가를 논하기 전에 전통의 다양성을 들여다보며 왜 이렇게 다른지를 분석해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인 듯하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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