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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옥수수 배낭 가져올 걸 그랬나?” 2014년 6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40 | “옥수수 배낭 가져올 걸 그랬나?”

아주머니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씩씩대며 걸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실컷 욕을 해댔다. “세상 참 더럽게 변해 간다. 내가 강냉이 한 배낭 값밖에 안 된단 말인가?”

김아주머니가 들려준 일이다. 그날은 정말 재수가 없었고 후회도 막심한 날이었다고 한다. 글쎄 하루 종일 발바닥이 닳도록 걸었음에도 낟알 한 되 얻지 못하고 결국 어스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김 아주머니가 살던 함경북도 청진은 100여 만명의 인구가 사는 도시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요즘은 참 한 끼 식사꺼리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날 아침에 부두에 나가 장사 밑돈으로 열 댓 마리 되는 이면수를 받았다. 그걸 들고 사람이 와글와글한 시내를 벗어나 바다가 없는 고무산(古茂山) 변두리 농촌마을까지 들어갔는데 이를 어쩌나, 골목길에서 그만 괴물 같은 군대 몇 명을 만나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지켜줘야 군대지, 빼앗아 먹는 게 군대냐”

아침에 집을 떠날 때 남편이 신신당부하기를, 절대 인적 없는 골목길에 들어서지 말라고 했지만 신작로 한가운데서 어찌 생선과 쌀을 바꿀 수 있냐 이거다. 그래서 눈치를 보며 슬슬 좀 잘 살아 보이는 집을 목표로 들어가다가 그런 마적패 같은 놈들을 만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돼 먹은 건지 군복 입은 그런 놈들에게 물건을 빼앗겨 신고라도 할라치면 ‘거 뭐 군인한테 나라를 잘 지켜줍소, 하고 하사했다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우?’ 하면 전부다. 아니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지, 나라라는 게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아닌가. 그러니까 백성 것을 지켜줘야 그게 군대지, 빼앗아 먹는 게 어디 군대냔 말이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고, 혼자 하늘을 원망하며 터벅터벅 빈손으로 다시 20km 쯤 되는 거리를 걸어 시내에 들어섰는데 집이 가까워질수록 발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글쎄 이걸 어쩌면 좋누, 하루 종일 기다렸을 남편이며 애들에게 어찌 빈손을 버젓이 보여준단 말인가. 서성대다가 시장에 나간 영철이 엄마 생각이 나서 쌀되라도 좀 꿔보려고 그 집으로 다가갔다. 원래 수완과 사교성 좋은 영철 엄마여서 하루 세끼 밥은 굶지 않고 사는 집이다.

슬슬 다가가 문고리를 쥐려는데 영철 엄마가 웬 처음 보는 남자와 마루에 앉아 시시덕거리고 있어 살펴보니 망측하게도 그 사내라는 놈과 신나게 연애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놀라 얼떨떨한 마음에 그 집 대문을 도로 빠져 나왔다만 세상에 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창 꽃 같은 처녀도 아닌 나이 40이 다 된 여인이 저게 무슨 꼴이냔 말이다. 같은 또래여서인지 얼굴이 더 뜨거웠다.

이래저래 집에 못 들어가고 여기저기 서성이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철도역이 보이는 데까지 나와 있었다. 갑자기 웬 남자 하나가 앞을 막아섰다. 사내의 등에는 군대배낭을 멨는데 얼핏 보기에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다. ‘왜 이럽니까?’ 하니까 유심히 내 얼굴이며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그 사내가 덥석 내 손을 잡으며 자기하고 어디 가자고 청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김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 그 사람의 손을 뿌리쳤다. 철도역 부근엔 원래 이런 바람난 사내들이 엄청 많고, 해가 져 어둑어둑 해질 때면 떠돌아다니던 남자들이 연애상대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직접 당하고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화끈 달아오르는 모멸감에 “난 그런 여자 아니요!” 하고 쏘아붙여주고는 자리를 비켰다.

그런데 웬걸, “그런 여자 아닌 것 같아 보이기에 마음이 더 동하는 거요.” 하며 남자가 따라왔다. 손을 잡아 홱 돌리고는 등에 진 배낭을 보인다. 자기 말을 들어만 주면 배낭 안에 담긴 옥수수를 몽땅 김 아주머니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20kg 정도 될까? 적은 양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씩씩대며 걸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실컷 욕을 해댔다. “세상 참 더럽게 변해 간다. 내가 강냉이 한 배낭 값밖에 안 된단 말인가?”

TB_201406_41“내가 강냉이 한 배낭 값밖에 안 된단 말인가?”

울화가 치밀어 벌떡거리며 집에 돌아와 출입문을 열었는데 두 아이가 일제히 달려 나오며 “엄마 밥 달라.”고 칭얼거렸다. 그러면서 아주머니의 등을 쳐다본다. 빈 몸인 것을 보자 철부지 막내는 비죽비죽 하더니 이내 “우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주머니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 것들을 또 굶겨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했다.

게다가 남편은 배급도 안 주는 직장에서 금방 돌아와 정신이 없는지 맹한 눈길로 쳐다본다. 배고프다 못해 빈혈까지 오는 눈길 같았다. 그 순간 어인 일인지 금방 재수 없다며 피해 왔던 그 배낭 진 남자가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났다. ‘뭐가 어찌됐든 그 강냉이 배낭을 지고 올 것을 그랬나, 그러면 굶은 식구들에게 옥수수밥이라도 실컷 먹여줄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올해 3월에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나온 김 아주머니는 이런 말을 늘어놓으며 깔깔 웃었다. 이제는 식구들 모두와 함께 풍요로운 땅에 정착해 더 이상 삶의 곤욕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온갖 시름 놓은 웃음 같아 필자도 덩달아 껄껄 따라 웃었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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